원초적 외로움……
차강석
난 장애인으로서는 삶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 왔다고 자부(自負)한다. 장애가 지금보다 훨씬 가벼웠던 때에는 비장애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것이 셈나서 헌 교과서와 전과 등으로 독학했고, 20살이 넘어서는 직업을 갖기 위해 컴퓨터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혼자 공부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다른 직업을 찾다 내 장애에 맞는 컴퓨터 통신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으로 내가 돈을 벌었다고 부모님께 속옷을 사 드렸다.
그리고 30살이 넘어서 처음으로 한 사랑이 짝사랑이여서 그 가슴 서늘한 괴로움을 잊기 위해 독학으로 검정고시 공부에 매달린 결과 초등 과정부터 고등과정까지를 1년 8개월 만에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대학 입학 자격을 얻었지만, 난 여전히 넓고 넓은 바다에 먼지만한 섬처럼 혼자였다. 그래서 대학을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2001년 당시에 사이버대학교가 개교했다. 난 사이버대학교도 나중에 혼자 하는 직업을 갖기 위해 문예창작과(이하, 문창과)와 NGO를 복수전공으로 선택하여 입학했고, 내 생각은 어느 정도 맞아 재학 중에 4~5번 수상했다.
그러나 내 전성기는 검정고시 볼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기 까지었을까? 2004년부터 다리에서 힘이 서서히 빠지더니, 2005년 2월에 대학교 졸업 무렵에는 다리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가 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면 낫는다고 해서 수술을 받았지만, 낫기는커녕 전신마비가 되는 의료사고로 난 완전히 시체처럼 되어 그대로 누워있다 하데스를 만날 뻔 했다.
그렇게 1~2년을 낙심해서 누워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행히 왼발은 조금 움직일 수 있어 “롤러트랙볼2”가 장애인용으로 원래 손으로 조작하는 트랙볼인데, 그것을 난 왼발로 조작하여 인터넷으로 살길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클리키”라는 화상키보드를 찾았다.
그리고 “장애인문화공간”이라는 곳에서 주최한 “장애인기자학교”란 교육을 찾아내어 그 교육을 내가 가자고 하여 활동보조인이 데려다 줘서 6개월 동안 교육을 받고 인터넷신문 기자를 6개월쯤 하고 신문사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만두었다.
그래서 난 또다시 무가치 하게 살다 죽을 위기에 처했다. 다시 살길을 찾아서 인터넷을 헤맨 끝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를 찾아냈고 ‘내가 공부하기에는 적합한가?’ 등을 알아보았더니 “전자교재”를 제공해 주어 컴퓨터로 읽고 공부하면 될 것 같아서 2009년 3월에 국어국문학과(이하, 국문과)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방송대 국문과의 공부가 만만치 않아, 난 틈나는 대로 공부를 했지만 학점을 6~15점밖에 못 얻어서 2년 만에 졸업을 못하고 4년이 걸려 졸업했다.
그래도 방송대에 입학하여, 수필로 2번 수상했고, 2010년에는 내가 염원하던 시로 “제20회 대한민국 장애인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므로 써 등단을 했다.
그리고 2014년 8월부터 11월까지 “(사)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에서 주최한 “뇌병변과 언어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 인권강사양성교육”을 받았고 그 교육에서 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AAC)라는 것을 익혔다 AAC란 원하는 것을 글로 쓰거나 그림을 고르면 소리를 내 주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진소리와 위드톡 그리고 마이토키 등이 있다. AAC가 글자를 모르는 장애 아동과 지적장애인에 맞도록 그림 위주로 되어 있으나 나 같은 장애인들은 글자 위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다행히 대학에서 문창과와 NGO과와 국문학과를 전공했고 장애인 단체에서 인권 강좌를 여러 차례 수강했던 것이 바탕이 되어 AAC로 2015년의 7월부터 수회 강의 경험이 있다. 2015년에는 세계사이버대 사회복지과에 또 입학했고, 장애인인권강사교육은 “(사)라이프라인자립진흥회”의 “라이프라인 아카데미”에서 개최한 “장애발생예방 및 장애인식개선 강사과정”을 7개월 동안 수료했고 시험에 합격하여 “장애인권교육상담사 자격 2급”을 획득했다.
가끔 삶을 낭비할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내가 너무 힘들거나 내 장애로 인해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을 때 포기를 했다. 이렇게 삶을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 왔는데, 무슨 놈의 삶이 뼈저리게 괴롭고 외로운 것일까?
전신마비 장애와 아픔은 글로는 다 표현이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다. 양쪽 손과 발은 감각을 90% 정도를 잃었고, 아픔은 꽃꽂이할 때 쓰는 수많은 날카로운 못이 꽂혀 있는 넓적한 침반으로 찌르는 것처럼 항상 매우 고통스럽다. 제일 아픈 것이 10이라면, 내 아픔은 8 정도는 될 것이다.
아픔은 그렇다 쳐도, 인간 아니 모든 생물들이면 적정한 시기에 암수로 제 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짝은 이미 적정한 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없다는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그래도 다 채우지는 못했었어도 푸근함 속에서 살아서 정말 뼈저린 외로움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독립을 하고 몇 달이 지나자 진짜 외로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공부에 열중해 보고, 인터넷 서핑을 정신없이 해 보기도 하며, 심지어 야동을 아무리 많이 봐도 원초적인 외로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이 그리워서 외롭구나.……’하고 뒤늦게 깨닫고 “애인을 구 한다”라는 글에 전신마비와 언어 장애가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써서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에 올렸다. 내가 너무 솔직하게 올려서 그런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최후로 “조건만남녀”라도 사귀려고 성인 사이트에 들어가 그녀들의 메신저 ID를 알아 채팅을 시도해 봤다. 그러나 그녀들은 만남에는 돈을 요구했고, 그 외에는 채팅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돈이라도 주며 사귀고 싶을 만큼 난 너무 외롭다.
전신마비와 언어 장애로 살아가려면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괴물은 내 능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포기를 한다고 해서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외로움과 이별을 하기 위해서 온각 노력을 다하면 할수록, 자기도 내게서 못 떨어진다며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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