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이사야 45:7~10) 하심 같이,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만 사람의 이상형(理想型)을 말할 수 있을 뿐, 사람 자체는 이상형을 꿈꿀(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만들 때에는 반드시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상형(理想型)을 마음 속에서 그려 놓고 만듭니다. 즉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형질까지 만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는 오직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만 저들의 완전한 형질(이상형)이 그려져 있을 뿐, 만들어진 것 자체가 자신의 자화상(이상형)을 임의로 그려 만들 때에는 모두가 비정상적인 불구나 기형이 됩니다. 만일 만들어진 피조물 자체가 자신의 자화상(이상형)을 임의로 꿈꾸고 성형수술하게 되면,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파괴되어야 할 깨진 그릇이나 아니면 출고 당시의 원형과 기능에서 벗어난 고장난 자동차처럼 폐기처분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까닭은, 오직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기 자신, 곧 친구 같은 자녀나 아내로 만들어 저들과 영원무궁히 기뻐하고 즐기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반자로 지음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성품(기능)까지도 닮아야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이 꿈꾸고 바랄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형질을 갖춘 이상형의 사람들일 뿐, 이런 기대치에서 벗어난 그 어떤 위인, 성자, 영웅호걸, 미인, 기능자이든 간에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 파괴되어야 할 깨진 그릇들이나 또는 추악한 괴물들로 판정받아 뜨거운 용광로 불 속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흙, 물질)과 또 생기로 호흡하여 생동할 수 있는 육체 뿐인 생물들을 만들 때에는 수월하였지만, 자신의 이상형에 맞는 영과 육체를 지닌 사람, 즉 또 하나의 자기 자신인 사람들을 만들 때에는 생각하신 것만큼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죽음의 산고를 치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태어날 수 없는 자녀들이었고 아내들이었고 신부들이었고 친구들이었습니다. 그 일만큼은 전지전능한 능력으로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영 뿐인 천사들이나 육체 뿐인 생물들은 쉽게 만들 수 있으나, 영과 육이 통일(하나) 된 사람들을 만들 때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조차도 죽음과 같은 참기 어려운 산고(수모)를 치르어야만 간신히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또 하나의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물질이나 육체 뿐인 생물들처럼 손 쉽게 만들 수 있다었면,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 자기 자신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또 하나의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흙이나 생기(육체) 뿐인 짐승들처럼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 그것들과 다를 바 없는 동격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에 사람들을 만든 일을 후회할 정도로 심히 괴로워 하였으나 그 일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존귀함과 그의 자녀들이어야 할 사람들의 존귀함이 십자가의 참혹한 형벌과 같은 죽음의 산고(수모)를 거쳐야만 탄생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삼라만상을 만드실 때에는 엿새가 걸렸으나, 또 하나의 자기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만드실 때에는 이처럼 수천여 년의 세월이 필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상형에 맞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 보아야만 깨달을 수 있는 이치와 같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각기 자녀들을 낳고 키운 부모가 되어 보아야만 비로소 만물과 만민을 낳고 키운 하나님의 기초적인 마음을 간신히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즉 자녀들을 낳아 키울 때에 갖는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심정이라는 것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달픈 인생 길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어진 유일한 시간대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소중한 기회의 시간대를 "노새 노새 젊어서 노새, 늙어지면 못노나니..." 따위로 정의(定義)해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무지한 짐승들처럼 육신의 쾌락을 누리는 일로 백여 년의 세월을 헛되게 탕진할 뿐, 하나님의 뜻과 성품을 배워 그의 이상형에 맞는 자녀되는 일에 진력하지 않습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편 49:20) 하심 같이, 인간들 저마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이상형의 사람들이 되어 보려고 노력할 뿐, 하나님의 이상형에 맞는 사람이 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완전한 이상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기록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다만 버러지들보다 못한 죄악된 사람들이 그려보고 꿈꾸는 구더기들만 되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뜻)으로 동방의 등불이어야 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종북 세력들이 자기 조국을 살인마 김일성 일가들의 이상형에 맞는 기쁨조 국가로 퇴락시키려 하고, 또 기독교 목회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요조숙녀들이어야 할 교인들로 하여금 김일성 일가들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경제동물들로 퇴락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이상형에 맞는 백의민족으로 만들려 하지 않고 70여 년의 세월을 허비하였습니다. 그리하고서는 하나님이 무슨 70이라는 숫자에 맞추려고 이런 세월을 지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통당한 자들을 보면 시급히 구원하도록 하실 뿐, 몇 년 몇 월 몇 시이어야만 인간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길한 시간이라고 육갑 짚는 운수신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상형에 맞도록 자신을 꾸며(단장하여)야만 정상적인 사람이 될 뿐, 자신이나 타인의 이상형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꾸미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을 반역한 괴물(사단) 이하의 버러지나 짐승들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예수님을) 버린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이상형(뜻)에 맞지 않는 이단자가 되기 위해 예수님의 언행 따르는 일을 포기한 신학만 추종합니다. 예수님의 피공로(은혜)만 극구 강변(强辯)해 찬양하는 것으로 자위할 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는 구원론을 저마다 개발해 교주 노릇만 하려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말씀이 어떠하는 것은 귀신 같이 잘 알아도 사단처럼 그의 언행만은 결코 지키고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사단의 반역질로 길들어진 인간 육체와 심성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반복해 지켜 길들이는 길 이외에는 달리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육신의 생각으로 너무 힘들고 무익하게 보이자 마침내 하나님께 목숨 바쳐 충성하는 일을 두려워하는 타락한 신앙인들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받지 그의 언행을 좇는 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마치 바리새인 같은 '율법의 행위'로 하대하여 내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신학입니다. 하나님의 이상형에 맞는 사람 되기를 포기하고 도리어 자신들의 이상형에 맞는 괴물들이 되게 한 후 하나님마저 자신들의 이상형에 맞는 우상으로 그려 만들어 저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만든 우상에 절하도록 김일성 일가들처럼 세뇌교육시킵니다.
사람을 사람의 뜻과 생각에 맞는 이상형으로 만들고자 하는 고집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도록 고치는 일이 구원입니다. 다시 말해, 죄악에 깊이 물든 체질을 의에 순응할 수 있는 체질로 변화시키는 것이 구원입니다. 체질 개선은 단박에 이루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 끊임 없는 반복(인내)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중도에 넘어지는 일이 수천 번 발생하여도 다시 일어서 걷게 하는 것이 부모이고 그에 순응하는 것이 자식입니다. 자식이 걸음마를 익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 걷고자 할 때는 부모가 박수를 치고 응원하지만, 유괴범은 넘어지는 아이를 볼 때마다 "너는 예수님처럼 완전히 일어서 걷는 일은 불가능하니 그냥 앉은뱅이로 살아도 하나님은 구원시켜 주신다."고 안심시켜 앉은뱅이를 만든 후, 길거리에 앉아 찬송가를 부르게 하여 앵벌이를 시킵니다.
사람에게 두 다리가 있다는 것은, 반드시 일어서 걸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함일 뿐, 결단코 앉은뱅이 불구가 되어 앵벌이 하게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일어서 걷다가 넘어져 다치는 일이 두렵다하여 두 번 다시 걸으려고 하는 일을 포기하게 하다니… 이게 사람들을 낳고 만드신 하나님께로 파송된 선생(종)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려는 유혹자 사단으로부터 파생된 거짓 선지자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지키고 행하라고 주셨는데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앉은뱅이가 되어 다만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축복만 앵벌이 해 갖고 사단에게 바칩니다. 사단에게 속은 앵벌이 신앙인들이여!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하는 믿음의 전사들로 온전히 거듭 태어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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