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란 헌 문짝 차는 것처럼 쉬운 일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의 저자 갈브레이스 교수가 했던 말로 기억한다. 왜 그런가? 이미 새로운 생각이나 질서가 받아들여진 세상에서 옛것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낡은 체제는 폐기를 확인하는 것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 정치에서 일어난 일은 혁명적이긴 하나 혁명이라 부르기엔 좀 부족하다.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켰지만, 어디까지나 헌법 절차에 의해 본래 있어야 했던 헌법 질서를 온전하게 한 것이지, 새로운 질서가 등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자의 정치론, "이름을 바로잡겠다!"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과 새로운 체제를 세우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새것이 등장하면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새것이 등장하지 못해 그저 낡은 체제가 동요하기를 거듭하기도 한다. 과거의 낡은 체제가 무너지고도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지 못한 채 또다른 한계나 난관에 빠졌던 경험이 우리 역사에 몇 차례 있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그런 역사의 후퇴를 상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탄핵과 함께 낡은 정치 질서가 가고, 조기 대선을 통해 새로운 정치 질서가 올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거창한 혁명이 아니더라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질서 있게 도모한다면 그 또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언론이 제 구실을 하고, 국민이 광장에서 질서 있게 의사표현을 하고,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제 구실을 하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한 대통령을 파면했듯이 말이다.
공자가 정자정야(政者正也), 곧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라 했다. 또한 위나라에서 정치를 맡게 되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질문에, 공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고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름이 어지러워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우리는 이미 보았다. 사슴과 말의 이름을 어지럽혔던 진나라는 조정의 권력이 농단되고 천하가 혼란에 빠졌다. 그 ‘지록위마’의 고사를 떠올리게 했던 정권의 운명도 우리는 보았다.
지난 4년 동안의 이슈들을 보자. 국정원 대선 개입, 경제민주화 공약의 실종,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건 때 보여준 정부의 태도, 피해자와 국민 여론을 외면한 위안부 합의, 거센 국민적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관계자의 이해와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는 노력 없이 돌연 이뤄진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결정, 비선 국정개입 등. 숨 가쁘게 이슈로 이슈를 덥고 넘어갔던 이런 것들은 이름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다.
국민의 보호임무를 방기하면서 안보를 말하고, 사사로운 집단 이익을 추구하면서 국가기관이라 말할 수 없다. 동맹이란 이름이 종속이나 맹종일 수 없다. 국정원 댓글 공작은 이름과 말을 어지럽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민주, 법치, 경제민주화, 안보, 공권력 등등의 이름이 바로잡히면 나라가 나라다워질 것이다. 이름에 대한 질문, "이게 나라냐?" 정치권에선 저마다 보수와 진보를 말하지만, 명백한 헌법 가치를 무시한다면 사이비 보수일 뿐이다. ‘좌측 깜박이에 우회전’이란, 입으로는 진보를 말하지만 의지나 실력이 없어 이름값을 하지 못한 경우이다. 이런 사이비 이름 사이에 갇혀 있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정치인이 표를 쫓아 대중 영합에 급급하다 보면, 어느새 분열과 분쟁을 야기하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으려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종북이란 이름은 자의적이고 폭력적이다. 적폐세력이란 말도 아전인수 식으로 남용되면 언어적 폭력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름을 바로잡는 것이 어찌 정치가들만의 일이겠는가. 시민들은 분열적이고 적대적인 이름뿐만 아니라 정책과 관련한 분식적인 이름도 경계해야 한다. 민영화, 규제철폐, 테러리즘과의 전쟁, 신자유주의 등의 이름은 곧잘 다른 동기를 은폐하곤 했다. 이름에 맞게 제 구실을 하는 것도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다. 언론이 언론답고, 공공기관이 공공기관답고, 기업이 기업답다면 나라는 나라다워질 것이다.
“이게 나라냐”는 질문은 여러 이름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다. 역사엔 비약이 없다지만, 중요한 계기는 있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크게 바뀔까마는, 많은 사람이 바뀌고 서로 마음이 통하면 변화는 온다. 막연한 요행을 바라기보다 기본에 충실할 때다. 그 기본이 바로 이름을 바로잡는 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