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살아나고 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교회들과 교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십자가 밑에 나와 통곡하며 자복하는 회개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한국의 위태로운 정세를 보고도 눈 하나 돌리지 않는 패악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교회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은 분노하고 계신다. 심판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신다.
한국전쟁과 휴거가 다가온다.. – 자유토론 | Daum 아고라
한국교회들은 죄악의 배가 불러 터지기 직전에 와 있다.
육신의 배와 정욕대로 왕국에 앉은 거짓 목사, 삯꾼 목사,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목사들의
배가 터지기 직전이다.
양수가 터지면 아이가 나오듯이 교회들의 심판이 눈앞에 와 있다.
해산의 고통이 아주 임박하게 실상이 되어 현실로 직면해 있다.
한국교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고 회개하지 않고 때를 분별하지 못한다면
북한 김정은이의 불몽둥이가 급하게 내려 칠 것이다.
때를 알리고 시간을 알리는 휴거의 메시지들이 전 세계를 깨웠고
때를 알리는 전 세계 종들이 외치고 나팔을 불어도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분별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이 상태로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북한 김정은이의 불몽둥이를 사용하실 수밖에 없는 작금의 시간들이다.
대한민국이 살아나고 큰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교회들과 교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십자가 밑에 나와 통곡하며 자복하는 회개가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한국의 위태로운 정세를 보고도 눈 하나 돌리지 않는 패악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교회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은 분노하고 계신다. 심판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신다.
북한은 지금 군부가 말이 아니다.
김정은이는 북한 군부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 아비 김정일의 측근들을 백여 명이 넘게 사형 하였다.
김정은이가 어찌 사람이라고 하겠느냐?
김정은이는 군부의 실세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조그마한 문제라도 잡으면 가차 없이 처형한다.
김정은이가 두려워하는 것이 전쟁이다.
그래서 무기를 만드는 일에 목숨을 건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 짐승이다.
북한 전체 주민들은 평양과 군부를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북한 군인들도 먹을 것 때문에 말이 아니다.
군인들이 영양실조로 많이 죽고 노동착취로 많이 죽는다.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도둑질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살육과 굶주림 속에서 북한 주님들은 탄식을 하고 있다.
북한 지하 성도들은 절규와 탄식으로 기도하고 있다.
북한 살인마 철권통치 아래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피눈물을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알아야 한다.
2016년 2월5일 메시지(녹취록)
성경의 올바른 해석보다 신학을 우선시 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라고 하신다.
신학을 고집하는 자들은 죄를 짓는 것이다. 이들은 현대판 바리새인 들이다.
그들은 거짓 선지자가 된다. 신학이 성경보다 앞서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제대로 안다면 신학이 얼마나 오류에 빠져 있는지를 알게 되고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이유는 하나님 말씀에 더러움을 입히기 때문이다.
거짓된 사상을 덧붙이고 잘못 해석하기 때문이다.
말씀은 생명이다. 거룩하고 정결하다. 빛이다.
(요한복음 1장 1절-2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라고 하셨다.
억지로 풀다가 수많은 사람들을 망하게 하고
자신도 망하고 죄를 짓는 어리석은 교만의 극치이다.
주님은 주님이 사용하시는 종들이 있다.
정확한 때에 준비된 종들이 나타나서 일을 하도록 계획하신다.
이 모든 계획은 주님의 섭리 안에 있는 것이다.
부족함이 없이 실행된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문제인 것이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직전에 나타나서
구약 선지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역을 감당한 위대한 선지자였다.
이 일을 예수님께서 증거하셨다. '
수십 년 동안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대제사장의 사역을 한 이들보다
가장 훌륭한 선지자임을 예수님은 증거하셨다.
세례 요한은 그 한 때를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었다. 자신의 할 일을 잘 한 자이다.
예레미야도 주님이 사용하신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눈물로 예언하고 충고한 사람이다.
주님이 전하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냐라는 사람은 선지자이지만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으셨는데
자신이 말하고 결국은 자신의 패역한 죄로 그는 죽임을 당했다. (예레미야 28장)
하나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을 했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해석하는 것은 죽을 죄이다.
주님께 먼저 붙들리는 것이 복 있는 자이다.
그러면 주님이 그릇으로 쓰실 때 합당하게 사용하신다.
주님은 주님의 사람들을 꼭 붙잡고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누가 주님의 사람인지 주님은 알고 계신다.
사용하시는 일에 실패하지 않으시고 귀하게 쓰신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시는 일을 믿어야 한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박사들과 지식 있는 자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주님 손에 붙들리면 주님은 지혜와 긍휼의 옷을 입혀 사용하신다.
미련한 자이지만 주님은 가르쳐 주시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시키시고,
광야의 학교에 집어넣어 강하게 훈련하셔서, 사단과 싸워 이기게 하시고,
낮추시고, 겸손하게 만드시어, 경건의 훈련 과정을 통과시키신다.
이러한 자를 주님이 사용하시고 귀하게 쓰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주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믿고 순종으로 따라가는 자이다.
주님을 죽도록 사랑하고 주인으로 믿고 의지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주님은 귀히 쓸 그릇이 있고, 천하게 쓰는 그릇이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스스로 말하고는 있지만
자칭 선지자가 되어서 주님의 손에서 벗어난다면, 그는 주인의 손에서 벗어난 자이며,
땅으로 내동댕이쳐 떨어져 깨져버리는 그릇이 된다.
주님이 쓰시는 자에게 먼저 성령충만과 기름을 부어주신다.
주님 안에만 거할 수 있는 능력을 입혀 주신다.
구원과 성령충만으로 세워 주신다.
(요한복음 15장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셨다.
자신 스스로 선지자라고 자칭하는 자들은,
구원받은 자가 영적인 어린아이로서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주변의 신앙 환경에 따라서 성령충만을 올바로 받지도 못하고,
추구하여도 성공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믿음의 차원을 높이지 못한다.
성령충만은 열매 맺는 것이 삶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노력일 뿐이다.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가져가도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것이다.
버림받은 이유가 바로 인간의 노력으로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므로 직시해야 한다.
(요한복음 15장 3절4절)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 하리라.” 하셨다.
이 말씀은 자신이 구원받은 이후 곧 바로 성령충만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귀한 조건이다.
가인의 실패는 원인이 있다.
그 이유인즉 제사를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것이 잘 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가인은 죄를 씻음 없이 나아갔다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씻음과 성령충만을 받고, 열매를 맺는 것은 직접 생명과 연결된다.
이것이 구원이다.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구원받은 자가 있고, 구원받지 못하는 자가 있는 것이다.
다른 길로 가는 자들은 노력은 하나 열매가 없고, 상급이 없으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자가 되어 가인의 실패한 모습대로 된 자이다.
이러한 두 부류 사람들은 비슷한 것 같지만 열매가 풍성한 부류가 있고,
열매가 없는 부류가 있다.
구원은 받았지만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자신이 노력하여 산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입은 주여!를 부르지만 실상은 아닌 자들이다.
그래서 구원도 희미하고 열매가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영적 전쟁에서 패한 실패자이다.
이런 자들은 광야 훈련을 싫어한다. 편안하게 종교 생활로 살아가길 원한다.
구원받은 자들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영적 전쟁에 들어간다.
그 훈련을 거부하기 때문에 실패자가 된다.
훈련에 들어간 자들은 세상을 이기고,
사단을 이기는 광야의 메마르고 고통스러운 훈련을 통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드온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을 통과하고 나면 세상을 초월하고 사단을 이겼기 때문에
의의 옷이 준비되고, 주님 손에 붙들려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으로 절대적인 힘을 주시어 살아가게 하시고
그러한 사람으로 안위하시고 눈동자 같이 보호하신다.
하나님의 보호하심 없이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하면
언젠가는 사단의 세력에 노출되어 공격을 받고 상처를 받고 살게 된다.
성령충만은 자신의 죄를 처리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그래서 십자가 밑에 자신의 죄를 내려놓고 눈물로 통곡하며 회개하는 것이다.
깊은 회개가 없는 자는 성령충만 하지 못한 자이다.
자신 안에 있는 죄를 알고, 허물을 아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고 성령충만이다.
그러므로 성령충만 받은 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령을 받은 것을 소멸하는 자들은 죄로 인한 것과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자들이다.
성령과 육신은 서로 거스르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18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그러므로 육신을 제어하지 않는 사람과 육신대로 죄를 짓는 사람은
결국은 성령충만에 도달하지 못한다.
여기서 율법주의와 성령충만의 차이가 극과 극으로 갈라진다.
율법주의는 사람을 억지로 통제한다.
그러나 성령충만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성령충만을 위해 육신을 제어한다.
율법주의는 스프링을 누르는 것이어서 때가 되면 튀어 올라온다.
결코 의를 이룰 수 없고 누르는 만큼 튀어 올라온다.
성령충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육신을 제어하면서 그것이 성령충만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 육신을 제어하면 결국 실패한다.
회개도 제대로 못한다. 그래서 실패한다는 것이다.
십자가 보혈 앞에서 죽어야 한다.
성령 충만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자신부터 죄를 회개하며 자신을 제어한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옛 자아가 죽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자신의 자아가 죽을 때 동시에 나타난다.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데 성공해야 하는데
자신을 죽이는 능력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인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자신에게 성령의 능력이 드러나야 한다.
성령의 능력이 기름 부으심이다.
주님과 올바른 관계가 성공하면 주님이 임재하시는 자가 되어 기름 부으심이 계속된다.
먼저 자신을 제물로 드려야 한다.
(에스겔 4장 6절-13절)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오른쪽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하루가 일 년이니라.” 하였다.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여라.
예수 보혈의 피로 회개하고 하루의 삶을 시작하여라.
성경의 5분의 1이 예언이다.
예언 중에 3분의 1은 재림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333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