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폭 넓은 사고를 하고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서로 돕고 균형을 이루어 살아야 한다. 사회의 스팩트럼을 보면 0%(극우)-100%(극좌)가 있으면 모든 사람은 그 중간에 포진하게 된다.
안철수씨가 극우도 나쁘고 극좌도 나쁘다면서 극중정치를 들고 나왔다.
일번적인 국민은 좌우를 오가면서 살고 있다. 어떤 것은 우편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어떤 것은 좌편향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고 10-90%의 범위(5-95%일 수도 있고)를 오갈 것이다. 사고의 폭이 넓은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극이 들어가면 우가 되었던 좌가 되었던 중이 되었던 존재하면 안되는 것이다. 극중이란 이야기는 극좌나 극우나 같은 편협된 사고를 하는 것을 말 한다.
극우나 극좌가 나쁘다고 하니 극중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병자나 하는 생각이다. 심지어 인공지능 로봇이 바둑을 두면서 폭넓게 생각하고 다양하게 생각하는데..극중이란 단순로봇으로 한가지 프로그램된 공정만 반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책도 좋다 나쁘다고 하는 것보다는 기권하고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이 극중이다. 모든 법은 평등한 법이 없다. 누구에게 제한을 두려는 것이나 누구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 법이디 공평하게 하는 법은 없다. 어느 법을 보던지 특정 세력에 도움을 주거나 억제하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의 법이다. 모든 국민에게 중립적이 되는 법은 없다. 어느 법이든지 좌나 우에 편향이 된다. 즉 극중은 없다.
극중은 어떤 법도 만들지 못 할 것이다. 전국민에게 50%지점에 서 있는 사람만 만족시키는 법은 있을 수 없으니..
하여간 정치인이 극자를 쓰면 정치가로 자질이 없고 이런 정치인이 사회에 살아남는다는 것이 불행이다. 극단적인 사람보다는 보편타당하고 폭넓은 사회를 포용하는 폭넓은 사고를 가지는 정치인이 필요하지..극단적으로 좁은 사고를 가지는 정치인은 도태시키고 없애야지 건전한 사회가 유지될 것이다.
사회는 전체 국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정치인이어하지 극단적인 좌나 우나 중도는 있으면 많은 국민이 고통을 받게 된다.
극단적인 사고는 건전한 사회발전에 암적인 존재일 뿐이다. 극단적인 사고 보다는 유연하고 폭 넓은 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