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터널'이 내게 던진 세 가지 고민
얼마 전에 자동차극장에서 영화'터널'을 봤다. 온 가족이 자동차 안에서 영화를 본 것이 처음이라 기분이 새롭고, 좋았다. 무엇보다 7살 된 어린 아들과 초,중학생인 딸들과 함께 보면서 이야기 나누며, 간식을 먹을 수 있으니 더 좋았다.
이제 영화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긴 터널을 지나다가 터널이 무너지는 바람에 땅 속에 갇히게 된다. 언제 구조될 지 모르는 참으로 위험한 상황이다. 처음에는 일주일이면 구조할 수 있다고 하다가 점점 길어진다. 귀중한 한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 당연히 구조해야 한다. 아니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 주인공의 가족 모두의 삶과 관련된 것이니 결코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정부가 '돈'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구조하다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며 '겨우' 한 명을 살리기 위해, 그것도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너무 많은 돈과 인명 피해를 감수할 수 없다며 구조를 포기하자고 남자 주인공의 가족을 설득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헷갈린다. 세월호 사건이 생각나기도 한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헷갈린다. 나도 한참을 생각했다.
먼저 문제의 본질이 바뀌었다. 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돈이 많이 든다고 했던가? 그러면 처음부터 터널을 원칙에 맞게 제대로 만들었어야 한다. 돈 조금 아끼려고 대충 만들어놓고 사고가 나지 않겠지 하고 방심해서 생긴 사건이 아닌가? 처음부터 원칙에 맞게 제대로 만들었다면 사고도 나지 않았을테고, 엉뚱한 사람이 죽거나 괴로움을 당하지 않아도 되었고, 구조할 필요도 구조하느라 많은 돈을 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터널을 대충 만든 기업이나 관리 책임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가 책임을 대충 회피하려는 입장에서 말하는 논리인 것이다. 힘없는 개인, 땅 속에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사람의 입장은 철저하게 무시된 것이다. 기업은 왜 터널 사업을 했는가? 국가는 왜 필요한가? 여기에 답해야 한다.
둘째로 터널 안에 갇힌 주인공을 살리려다 또 다른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고 했던가? 터널 안의 주인공을 구해야 하는 것은 터널을 만든 기업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이다. 그런데 기업과 국가는 빠지고 주인공 가족과 구조작업을 하다 다친 사람(또는 그 가족)의 관계로 몰아가고 있다. 터널 안의 주인공을 구하는 일은 터널을 만든 기업이나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가 하는 일이므로 구조작업을 하다 다치거나 죽은 사람(또는 그 가족)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기업과 국가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억울한 피해자인 주인공이나 그 가족을 끌어들여서 개인들끼리 갈등하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비겁하거나 잔인한, 무책임한 짓이다.
끝으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니 포기하자고 했던가? 그럼 터널을 만든 기업의 회장이나 회장 아들이 터널 안에 갇혔있을 때도 같은 말을 할 것인가? 대통령의 아들이 사고난 터널 안에 갇혀 있을 때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니 포기하자고 할 건가? 신문이나 방송국 사장의 아들이 터널 안에 갇혀 있을 때도 그렇게 똑같이 말할 것인가? 돈 없고, 권력없는 서민의 자식이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터널'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 경제지도자들, 언론 지도자들의 속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세종대왕과 정조대왕, 이순신장군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다시 나타날 수 있도록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 투표를 제대로 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