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전 직후 서부전선 일대의 교전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된 대한민국 국군 부상병 다수는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서울시내의 여러 병원에 분산 후송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중 상당수가 심한 부상을 입은 중상자였다.
그러나 개전 3일만에 북한군이 서울까지 밀고 내려오자, 서울에 남아있던 대다수 민간인들은 아비규환에 빠져 피난길에 올랐으나[1] 환자가 있는 병원 근무자들이나 경비병들은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급하게 서울을 빼앗기는 상황이라 체계적인 후송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병원을 빠져나갈 수 없었던 부상병들과 경비병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의료진, 그리고 일반 환자들과 가족의 병수발을 위해 남아있던 민간인들이 다수 서울대 병원에 남아있었다.
2.2. 시작[편집]
6월 28일 아침, 북한군이 서울대병원까지 들이닥쳤다. 당시 병원 내부는 미처 피난하지 못한 환자들로 만원이었으며, 병원 경비를 위해 남아있던 국군 보병 1개 소대와 움직일수 있는 전상병 80여명이 소대장의 지휘하에 뒷산에서 응전하였으나 모두 전사하였다.[2]
저항하는 국군을 전멸시킨 북한군은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병력을 산개시켜 병원을 둘러쌌다. 이제 병동 안에는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상을 입은 부상병들과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비무장의 의료진과 민간인 환자들, 그리고 환자 가족들만이 남아있었다.
2.3. 진행[편집]
병원을 점령한 직후 한 북한군 중좌가 "원수놈들의 앞잡이들이 여기 누워있다!"며 선동을 시작했고, 이내 한국군 부상자를 몰살시키기 위한 학살극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병동을 순회하며 침대와 바닥에 누운 환자들에게 총을 갈기고 총을 맞고도 죽지 않은 이들은 총검으로 확인사살하였으나, 이게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는지 나중에는 환자들을 침대 밖으로 끌어내어 병실 구석으로 몰아넣고 한꺼번에 총을 쏴 죽였다. 학살의 소음이 울리자 다른 병동에 남아있던 환자들은 급히 대피 시도를 했지만 죄다 북한군 보초들에게 걸려 참혹한 꼴을 당했고, 일부는 살해당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권총을 가지고 있던 장교들은 병실에서 총격전을 벌이다가 사살되거나 자살하기도 했으며, 흥분한 북한군은 심지어 위문차 남아있던 환자의 가족들까지도 살해했다.
이 학살의 명분은 일단은 한국군 응징이었으나 사실 군인이나 일반인이나 환자복을 입은 채로는 별로 구분이 가지 않아서 일반인들도 다수 살해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나 명단은 당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남아있지 않다. 어처구니가 없는 것은 국군 부상병이 있는 곳이 아닌 정신병동까지 들이닥쳐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죽였다는 것.
세 시간 동안 부상병을 찾아내어 죽이고 나서도 아직 놓친 부상병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병원 안을 샅샅이 뒤져 부상병들을 찾아낸 다음 밖으로 끌어내어 한꺼번에 총을 쏘아 죽이고 생존자를 총검으로 확인사살했다. 이때도 일반 환자나 가족 등 민간인이 다수 살해당했다. 이렇게 죽이고 나서도 병원 내에 남아 있는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을 악착같이 잡아내서는 보일러실로 끌어가 10톤의 석탄 더미에 생매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