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벌에 떨어져야 할 사람의 가장 좋은 친구는, 죄로 얼룩진 자신의 언행에 대해 공감하고 기뻐하거나 칭찬해 주는 자입니다. 반면에 영생에 들어가야 할 사람의 가장 좋은 친구는, 죄로 더렵혀진 자신의 언행을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듣고 보시기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깨끗하도록 일깨워(씻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언 27:5~6) 하심 같이 죄에 빠진 사람들의 가장 좋은 친구는, 불시에 찾아드는 죽음의 때에 영벌에 떨어지지 않도록 바른말로 일깨워(질책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질책하는 사람을 도리어 미워하고 대적하기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앓고 있는 질병 중 가장 무섭고 치료하기 어려운 난치병이 바로 지옥 형벌에 떨어질 죄악을 저지르는 일에 대해 책망을 들으면서도 회개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죄책불감증입니다. 이런 중병에 걸린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 죄악을 깨닫게 하여 하나님 앞에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이 육신의 고통과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래서 죄(때)가 죄(때)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만민들의 유일한 세척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통책(痛責)입니다. 마치 충성된 신하가 왕의 위함함을 예견하고 목숨 바쳐 충언을 하듯, 예수님도 세상 만민이 하나님께 저지른 죗값의 형벌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충언하였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 받은 사도 바울도 신앙의 대선배격에 해당되는 예수님의 수제자, 곧 베드로의 외식함을 보고 즉시 면책하였습니다.(갈라디아서 2:11~14 참고) 이런 면책은 사도 바울이 베드로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뭇 성도들 앞에 뽐내고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외식으로 하나님께 죄책을 당할까봐 걱정되어 말하는 사랑의 권고입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예수님의 수제자일지라도 옛사람의 습관을 좇아 사단이 파 놓은 함정으로 걸어갈 땐 바울은 베드로가 자신보다 사도로서의 서열이 높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곧바로 면책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뭇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그 같은 행동을 하면 그를 따르는 뭇 성도들 또한 그 같은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면책한 사도 바울도 잘한 일이지만, 열 두 사도의 반열에 들지 못한 뜨네기 사도 바울의 책망을 받고도 추호라도 자괴감(自愧感)을 느끼지 않고 겸비한 자세로 수용해 받아들인 베드로는 더 잘한 일이었습니다. 즉 바울이 베드로를 면책한 것은 자신이 베드로보다 한 수 위니깐 수제자의 직분을 내 놓으라는 뜻이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또는 사도로서의 본분에 합당한 행동을 하라는 뜻입니다. 성령의 주관하에 있는 성도들이 이 같은 사랑으로 서로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것은, 서로가 하나님 보시기에 항상 깨끗함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일 뿐, 결코 악령이 주관하는 자들의 시기심이나 약육강식의 뜻으로 이웃을 지적(비판, 비난, 비방, 판단)해 죽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빛이 주관하는 나라의 성도지간(친구지간)은 이런 지적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올바른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리하여야만 더욱 더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들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는 서로간의 이런 지적, 곧 상대방의 잘못을 일깨워 주는 일은 오직 강단권을 점령한 신학자 출신의 목사들에게만 국한시키고 성도들 간의 지적은 다만 사단의 뜻에서 나온 비판이나 비난이나 비방이나 악평으로 취급해 아무도 행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을 지닌 사람은 오직 신학자 출신의 목사나 전도사들일 뿐, 그 이외의 교인들은 성령을 받은 성도가 아니라 다만 목사들의 훈계만 들어야 할 죄인들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린도전서 2:15) 하심 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신앙적으로 무명하고 어리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잣대(영으)로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자신의 그러한 언행(판단)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그 어떠한 세상적인 기준과 상식과 잣대와 직위와 계급으로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심령에 묶인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은 세상 무엇이든지 논단할 수 있으나, 그 같은 신령한 판단을 세상적인 기준과 상식과 잣대와 계급과 직위로 재단하여 금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입을 가로막는 패역무도한 김일성 일가들의 악행과도 같습니다.
사람이 죄인의 뜻과 정으로 이웃들과 아무리 잘 사귀어 인기를 얻더라도 그런 죄인의 뜻과 정으로는 이웃들과 참된 친구가 되어 즐길 수 있는 낙원은 우주공간 그 어디에도 없고, 오직 김일성 일가들 같은 자들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들과 자연재해에 늘 뒤쫓기며 순간의 쾌락들만 즐길 뿐입니다. 사람은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이웃들과 참된 친구가 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만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도록 하는 사랑의 책망(권면)입니다. 이런 일의 선구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는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상 만민을 진리로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책망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피조물의 대표가 된 사람들과 하나(친구)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태어나 하나님과의 견해 차이를 이르킬 수 있는 육신의 생각, 곧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육신의 생각이 낫다고 주장하는 육신의 모든 교만한 생각들을 정복해 다스렸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영으로만 하나님과 동행할 때에는 하나님과의 견해 차이가 없었으나, 사람들처럼 영과 육이 하나 된 상태에서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는 이처럼 자기 육신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육신의 생각마저 하나님의 말씀에 굴종시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1:10) 하신 하나님의 뜻을 마침내 이룩하셨고, 또 자기를 믿는 사람들도 그 같은 삶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셨습니다.
천국(낙원)이란, 사단의 악습을 갖고도 즐길 수 있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견해 차이가 전혀 없는, 다시 말해 투쟁할 요인이 전무한 상태에서 온전한 하나가 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상황이 최초로 하늘에서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 땅에 속한 육신을 입은 예수님 사이에는 투쟁의 근원이 되는 견해 차이는 전혀 없고, 오직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할 수 있는 상태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0~21) 하셨습니다.
무지한 인간들이 흉악한 마귀의 뜻과 정으로도 마냥 즐길 수 있는 장소, 곧 무릉도원을 천국으로 취급해 진시황처럼 돈과 권력을 갖고 찾아 헤맬 뿐,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같은 관계상황, 곧 만난 사람들 간에 투쟁할 요인이 전무한, 다시 말해 서로 간에 견해 차이가 전혀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관계상황에 이르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자신을 낳고 키우신 부모님과 형제자매들 사이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 상황처럼 견해 차이가 없고 다투지 않는 사이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의 악습을 좇아 만나는 자들마다 약육강식 사상으로 마냥 싸울 수 있는 무릉도원(아방궁)은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마음 속에서 예수님(성령)과 자기 육신의 생각 사이에 추호라도 견해 차이가 없는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그릇된 복음 해석, 곧 육적인 부강으로 무릉도원만 찾아 구하려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발생될 수 있는 견해 차이를 없에기 위해 자기 육신의 간곡한 하소연을 모두 뿌리쳤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또한 예수님과 하나 되기 위해 자기 육신이 추구하는 허황된 천국관을 모두 깨뜨리고 예수님(말씀)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그 때부터 그 사람의 육신은 물론이거니와 그에게 속한 부모·형제 처자들과도 견해 차이가 없는 온전한 하나가 되어 천국 같은 가정과 교회와 사회와 나라가 건설되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감싸고 돌보게 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이 하나님(예수님)과의 견해 차이가 없는 온전한 하나가 되려 하지 않고, 다만 어느 종파의 교리나 목회자들의 사사로운 야욕의 신앙관과 견해 차이가 없는 하나가 되려 합니다. 이런 거짓된 신앙인들을 자기 수하에 두려고 북한의 김일성 일가들이 반세기 이상 북쪽에서 칼을 갈았습니다. 김일성 일가들의 뿌리(조상)도 신앙인이고 대한민국 기독인들의 뿌리도 신앙인이지만, 이들 모두가 예수님과는 하나(친구)되지 못한 채, 각기 사사로운 야욕의 신앙관을 갖고 이웃들과 하나(통일) 되려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불치병으로써 저마다 영적인 김일성이들이 되어 자신의 뜻이 가득한 신앙관에 위배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이단(반동)으로 몰아 세워 교회에서 내쫓고, 오직 자신의 신앙관에 아첨하는 자들만 교회에 가득 채워 교주 노릇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의 머리는 예수님이 아니라 사단의 악령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도 바울은 주의 뜻에 어긋난 자이면 그 지위고하나 선후배를 상관하지 않고 면책하였건만,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의 그 같은 행동만은 어느 누구도 본받지 못하게 합니다. 진정 하나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길 소망한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질책하여야 합니다. 교회 교인들이 이런 질책을 서로 간에 하지 않고 오직 목사들의 사사로운 성경 해석만 교육받았기 때문에 결국 그 폐해가 사회와 국가에 그대로 전이되어 온 나라에 반국가적인 교육자와 간첩들이 날뛰어도 국민들은 입 다물고 잠잠하고 다만 교회 목사 수준의 공직자들에게 그들의 악행을 다스려 주도록 맡겨 버렸습니다.
교회 목사들이 성령 받은 교인들에게 자신(사람)의 뜻이 가득 담긴 성경 해석만 배우도록 강요하고 교인들의 심령에 계신 하나님, 곧 성령으로 하여금 어느 누구도 성경 말씀에 어긋난 짓을 하는 자들이면 그 지위고하나 성별이나 연령이나 직급에 상관 없이 질책할 수 있는 예수님의 행동과 사도 바울의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향력을 받은 이 나라의 국민들 또한 심히 유약하게 되어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1의(義)로 삼은 이 나라에 이적 대통령과 종북 정치인들과 간첩 교사들과 언론인들이 들끓어도 국민들이 분개하여 일어나 탓하지 못하게 하고 그 모든 일을 정권 실세들이 맡아서 임의로 판단하려 합니다. 목사들이 교회 교인들로 하여금 면책을 금하게 한 것이 온 국민들로 하여금 벙어리 개가 되게 하여 마침내 공산주의 사회로 적화되고 말았습니다.
"내 대적의 기록한 소송장이 내게 있었으면 내가 어깨에 메기도 하고 면류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며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고하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욥기 31:35~37) 하심 같이, 욥 같은 의인은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뜻)에 근거하여 올바로 지적(비판, 비난, 판단, 정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왕족처럼 존귀히 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지적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의 견해 차이를 없에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일을 두려워하게 되면, 그 같은 책망은 곧 자기를 음해하고 곡해하는 대적 행위로 취급해 김일성 일가들처럼 짓밟으려 합니다.
신앙인이 일평생 살아가는 동안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의 언행을 지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대적하고 금하게 되면, 그는 회개를 이루어 나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과 같은 영광만 받으려는 교주가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어 이제는 자기 대신 성령을 보내어 믿는 자들의 심령에서 세상 끝날까지 믿는 자들과 세상을 향해 온전한 회개에 이르도록 책망(권면)하십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를 물질적인 축복을 받은 일이나, 예언하고 방언하는 일이나, 이적 기사로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낫게 하거나,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의 신도들을 거느린 대형 교회 목사가 되는 일로 취급할 뿐, 세상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단으로부터 배운 흉악한 악습을 하나 둘 제거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대신 파송하신 성령의 주된 역사를 다음과 규정하였습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7~8) 하심 같이, 성령도 예수님처럼 믿는 자들의 구습과 세상의 죄악을 책망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학자들의 구원관은 사람이 단순히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것으로만 취급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실체는 그의 언행이시기 때문에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바로 그가 하신 말과 행동대로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을 참되게 믿는 신앙인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릇된 복음, 곧 단순히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것만 믿음으로 취급해 가르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옥 같은 말씀들을 지키지 않고 다만 썩을 육체를 위해 육적인 축복과 은사만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짓은 심판날에 예수님과 견해가 전혀 다른 불신 죄인들을 만듭니다. 예수님 당대에 성도들은 창검의 위협 아래 입으로 주를 시인하였으나, 오늘날의 교인들은 교회에서 뭇 신앙인들의 축복과 사랑을 받으며 평안히 입으로 주를 시인해 말씀 듣고 찬양하고 기도한 후, 세상에 나가서는 또다시 사단의 악습인 거짓과 불법불의와 음란으로 자신의 몸과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합니다. 하나님이 이찌 이런 음녀들과 하나(친구) 되어 영원무궁토록 함께 하려 하겠습니까? 회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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