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가 히로시마(廣島)에 던진 話頭 소운/박목철
일본 여행의 마지막 날 일정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일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일부러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은 아닌데, 우연히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날과 일정이 겹쳤다.
동행한 이은경 작가나 박소연 작가가 혹시 공원 일대를 폐쇄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본이나 미국은 선진국이니 시민을 불편하게 통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미야지마(宮島)와 히로시마 사이에는 뱃길이 이어져 있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하지만 물 위에 떠 있는 도리로 유명한 미야지마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미야지마에서 쾌속선을 타면 히로시마 도심까지 이어진 운하를
따라 도심까지 배로 이동할 수가 있다.
운하 주변에 펼쳐진 빌딩 사이로 달리는 쾌속선에서 바라본 히로시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히로시마 외에도 많은 일본의 도시에서 운하를 만나게 되는데, 우기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고 마는 우리의 기후와는 다른 자연의 혜택 때문이리라, (우리의 하천은 우기 외에는 대부분이 건천으로 바닥을
들어낸다)
* 히로시마와 미야지마 간을 운항하는 쾌속선은 도심을 가르는 운하를 따라 운항한다.

* 히로시마 선착장에서 내리면 바로 마주치는 카페 이타리아노이다.

히로시마 쾌속선에서 내리면 바로 마주치는 곳에 -caffe PONTE ITALIANO- 라는 자그마한 식당이
있다.
밖에 진열된 과일 하며,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 있는 식당이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미리 계획되어 있기에 점심으로는 늦은 시각에 이곳을 찾았다.
대기자 명단에 기록한 시간이 2시 50분쯤이었고, 점심은 3시에 마감한다고 쓰여 있었지만 아직 3시 이전이니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후, 식당 측에서는 영업이 끝났다고 해서 헛걸음을 한 것 아닌가 했지만 우리까지만 받겠다고 들어오라고 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갈 때도 주변에는 경찰이 깔려 있었다.
조금 후에 밖에 나가보니 우리가 있는 곳은 이미 접근이 통제되어 이중 삼중 저지선이 처져 있었고
폴리스 라인 주변에 많은 시민이 운집해 있는 것이 바라다보였다.
우리가 있는 식당은 운하에 붙어있고,
운하 건너가 바로 원폭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운하라 해야 물이 가득 찬 청계천 두어 배 정도랄까,
다리 하나를 건너면 바로 오바마가 들린다는 기념관이 지척인 곳이니, 아마 민간인으로는 우리가 가장 지척인 곳에 자리한 셈이 되었다. "이러다 오바마 대통령 보게 되는 것 아니야"
오바마 대통령이 다녀간 흔적이라도 보려고 많은 일본인이 평화 공원을 찾았다는 뉴스를 대하며,
같은 시각에 지척에 있었다는 것도 우연치고는 기분 좋은 우연이리라,
*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식당이고 오른쪽이 오바마가 방문하는 기념관 쪽이다. (통제가 있기 전에 찍은 사진)
왼쪽부터 (대한문인협회) 박소연 작가, 이수경 씨, (대한문인협회) 이은경 작가,

궁금해서 밖을 나가보려니 나가지 못하게 제지했다.
나마 조금 전에 사진을 찍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바마를 맞는 일본 당국의 부산함을 사진에 담았으니, 완장을 찬 히로시마 시청 직원들이 대량 동원되어 있었고, 경찰 버스는 물론 소방차까지 대량 동원되어 대기하고있었다.
완전 무장한 경찰 특공대도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어 벌집을 쑤셔 놓은 듯하다는 것이 오바마를 맞는 일본의 모습이라고 할까, 오바마가 히로시마를 찾는 것 자체가 일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 현장의 분위기에서 완연히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 주방장이 직접 만든다는 피자와 파스타를 시켜 먹으며 잘하면 오바마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마져 있었지만, 커다란 베낭을 맨 외국인이 행사장 지척에 있다는 것이 영 불안했는지 식당에서는 우리를 내보내려 했다. 이차로 나올 피자는 줄 수가 없다는 통보와 함께 계산을 해달라는
표지판을 우리 식탁에 올려 놓았다. 우리 말고도 젊은 일본인 몇명이 남아 있었지만, 커다란 베낭을 각자
지닌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들의 행위를 탓 할 수만도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옆 테이불에는 경찰 고위 지위부인듯한 사람 몇이 창문 밖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
오래 앉아있기가 불편해 계산을 끝내고 나가려니 경찰이 따라붙어 우리를 안내했다.
식당 주변은 이미 상당히 먼곳까지 통제되어 있어 우리외에는 민간인은 볼 수 없었다.
경찰은 우리를 통제선 밖까지 안내(나쁘게 말하면 추방) 하고는 우리가 나가는 것을 다른 경찰에게 인계까지 했다.
의미야 어찌 되었건 귀빈 대접의 에스코트를 받은 셈이다. 나중에 보니 일대의 쓰레기 통도 모두 봉인되어 있었다.
* 도로를 봉쇄하기 시작한 시점, 이때 까지는 사진 찍는 것이 자유로웠다. (통제선 안쪽에서 찍었다)

* 통제선 안쪽에 대기 시켜놓은 소방차,

* 삼중 통제선 밖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는 모습, (사진 찍는 위치가 통제선 안쪽)
* 방탄복으로 완전 무장한 경찰 특공대가 창 밖을 지나고 있다. (이은경 작가가 운좋게 찍었다)

* 평화공원 인근의 휴지통은 완전 폐쇄되어 있다.

오바마의 방문을 현지 신문은 대문 만하게 머리기사로 다루고 있었다.
원폭 피해자를 포옹한 것이 일본인의 감성을 자극했다고 감격도 했다고 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2kt 원자탄으로 히로시마에서13만 오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장기 사망 20만 명 이상 사망) 세계에서 원자탄을 맞은 유일한 국가가 일본이다.
원폭 기념관을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원폭의 피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원폭을 맞은 원인에 대한
반성은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이 기자의 느낌이었다. 많은 일본인이 평화공원을 찾지만, 얻을 교훈이
없다.
이런 엄청난 참상을 맞이한 원인이 일본의 군국주의에 있고, 세계 평화를 깨뜨린 일본에 책임이 있다는
반성은 없고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 전사되어 있으니, 이곳을 찾은 일본인은 반성보다는 복수심이 싹트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히로시마를 찾았다.
히로시마를 찾은 것 자체가 원폭과 상관이 있는 방문이라는 의미이지만,
일본인은 원폭을 투하한 미국의 대통령이 피해지를 찾아 사과한다는 쪽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던진 화두는 그럴 리 없다고 확신한다.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변신을 꾀하는 아베 정부에 히로시마의 참상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 전달의 의미도 있다고 믿고 싶고, 핵 공갈을 일삼는 김정은에게도 히로시마의 교훈을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도 있다고 해석하고 싶다.
오바마가 히로시마에서 던진 화두는 의미가 무엇이든, 평화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 원폭 기념관 안에 전시된 사진, 원폭을 맞은 시가지의 모습이 처절하다. (작년에 찍은 사진임)

* 원폭에 피폭된 시민의 처절한 모습,

오바마가 다녀간 이후 저녁 시간에 원폭 돔을 찾았다.
많은 일본인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고, 외국인을 상대로 방송사에서 인터뷰도 하고 있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쁜 기억도 잊게 되어있다. 평화공원을 찾은 일본인이나, 우리 일행이나
그저 지나간 일이고 구경거리일 뿐이다.
저녁에 히로시마의 유명하다는 핫쇼(八昌)라는 오코노미야키 집에서 줄을 서 기다린 끝에 음식을 맛보았다. 귀국해서 신문을 보고, -한국인 희생자가 2만이 넘고 위령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성했다. 오바마가 던진 화두는 일본인만이 새길 화두가 아니라는 사실을,
* 평화 공원에 한국인 위령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히로시마의 유명한 오코노미야키 집, 줄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히로시마,
일억 결사대
천황폐하 만세!
사케 한잔 마시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비의 날개짓,
그들은 玉碎라 했던가?
조금 죽여야
많이 살리는 비정함에
미국도 많이 아파했단다.
왜,
죽어야 했는지
오바마의 방문에
히로시마는 깨달음을 얻었을까?
*히로시마 원폭으로 한국인 2만을 포함해 20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아마 원폭 투하가 없었다면, 수 백만이 희생했을 것이다.
죽창에 날 세운 일억 결사대가 일본왕 수호를 외치고 있었으니,
-군국주의의 압제하에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에게 위로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