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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폭동과 여수반란사건 박근혜탄핵은 좌익판검사의혁명인가???
해방 이후 6.25 전쟁까지 5년간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기억하라 (역대하20;12-30.
신명기32; 7)
(여수반란사건.) / 해방이후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5년간은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1946년10월 초하루 시작된 대구 폭동 사건은 엄청난 유혈폭동사건으로 배후에는 사회교란을 목적으로 한 공산당이 음모와 책동이 있었습니다. 당시 각계각층에 있던 공산당들은파업과 폭력사건을 유발시켜 마침내 9월 24일 천국의 철도파업을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구에서는 좌익단체가 주동이 되어 각 직장의 파업을 선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천 명의 공장 근로자들을 선동해서 경찰서를 습격,
점령하고 무기를탈취하였고, 주요 인사들의 집을 습격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잔인하게 살해
되었고, 경북 달성군수 등 여러 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이 사건은 그 여파가 거의 전국에 미쳤고, 1개월 이상 지속되었으며, 남부 지방은 거의 무법천지로 변하였습니다./
1948년 재주 4.3 사건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을 방해하기위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날때까지 계속되었으며, 3만명가량의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였습니다. 좌익 무장 대원들이 공산당이 아니면 다 죽였고, 곡괭이로 얼굴을 찍고, 머리를 톱으로 자르는 처차한 만행을 저질었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사건은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가 일으킨 반란으로 지창수, 김지희 등 7명의 좌익계 하사관들이 중심이 되어 제주4.3사태 진압을 위한출동명령을 거부하며 장교들을 죽이고 민란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14연대와 좌익세력들은 경찰서와 광공서들을장악하였고 자기들의 뜻을 거부하는 민간인이나 경찰, 우익인사들을 처참하게 학살하였습니다. 이러한 좌익세력의 제거를 목적으로 1948년 12월 1일 보안법이 재정 공포되었습니다. 1949년 6월 30일에는 미군이 철수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미군철수를 주장했고 그로 말미암아 미군 전투병력 4만 5천명이완전히 철수하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