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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이 남북통일할 기회, 두번 있었지만 놓쳐버렸었다. 나는 대표 브랜드 트럼프카지노 베가스카지노 게츠비카지노를 추천드립니다 ◑☞ 2017-11-04 05: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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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할 기회가 1.21 무장공비 침투사태가 만약에 성공했을때, 그리고 1980년의 5.18광주 민주항거때의 나라 혼란상태등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반대로 한국으로서도 남북통일을 할 기회가 지금까지 딱 두번 있었다.  1993년 영변 핵발전소 폭격예정 상황때와 1998년부터 2002년여 사이,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수백만 여명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하였던 때이다.  


1993년 7월에는 김영삼대통령과 죽은 북한 김일성의 남북 정상회담약속이 실현 되었었다.  안스럽게도 정상회담이 열리기 일주일전인 7월8일에 김일성이 갑자기 죽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북한은 영변핵시설에서 핵무기를 제조하고 있거나 혹은 핵무기를 만들 재료를 거의 추출 완료했다는 보도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그것을 폭격하겠다고 선언까지 하였더랬다.  실제로 부산에 미국의 항공모함까지 들어왔었다.  


이때에 북한은 어떠한 처지였는가하면 정말로 공황상태였다.  1989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연이어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군(群), 즉 불가리아,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동독등의 공산권이 일거에 무너져 내렸다.  1992년 무렵에는 북한의 경제가 거의 붕괴직전으로 몰렸다.  또한 1992년에는 모택동이 한국과의 공식적 외교관계수립을 결정하였다.  이에 크게 충격받은 김일성은 자신의 주체사상으로 독재자의 자리를 굳힌 북한의 현재모습과 6.25때 한국과 싸운 중국공산당이 한국과 직접적 외교관계를 수립한다면 북한주민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 외교관계 수립을 늦춰달라고 특사까지 보냈었으나 거절당하였다.


그리고 한국과 중공당은 공식적 외교관계수립을 하였고 동시에 한국은 대만과 단교하였으며 중국을 하나의 중국으로 공식인정하였다.  김일성은 크게 화를 내었고 북한의 관영언론인 노동신문에서는 대국주의, 수정주의 운운 하면서 중국공산당에게 반 욕설적 사설까지 게재하였다. 이에 상당히 분노했던 중국공산당은 북한에 수개월에서 일년가까히 원유공급을 끊어버렸었다.  북한은 비행기

띄울 원유도 없었다.  


또한 이미 망한 챠우세스쿠 공산독재정권, 루마니아로 부터는 북한의 부족한 쌀 생산량을 넘는 알곡, 쌀을 거의 무상에 가깝게 들여다가 먹었었다. 그리고 구 소련및 기타의 동구 공산권 국가들로 부터는 경제적 차관과 각종의 무기및 일반 공업부품등을 들여오기도 했었다.  북한이 그들로 부터 얻는 각종의 이득이 사실상 모두 끓긴 것이었다.  게다가 미국믜 클린턴 대통령은 영변의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이때에 "김일성은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었다는 것이 여러증언과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때에 김일성은 그의 친족과 가족, 그리고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의 아들, 즉 손자들은 스위스로 유학보내고 당의 중요간부들은 중국대륙으로 보냈다.  자신은 망명의 준비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북한의 3대 세습독재자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런 동기가 있었다.         

 

그러나 클린턴은 영변핵시설 폭격을 공언했지만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동시에 전직 대통령 지미 카터씨가 북한에 평화적 대화 특사로 가서 김일성과 마주앉아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UN의 사찰을 받아들인다는 것등의 합의를 이끌어 내고 북한이 대화의 자세를 보이자, 미국은 이에 속았다.  


뭐, 다른 대책이 없이 북미간의 대화를 지켜보는 입장이기만 했던 한국은 마찬가지로 속은 셈이었다. 무엇보다 만약에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고 북한과 전면전이 발생하면 미군 이십여만명 이상이 죽고, 한국은 최소한 순식간에 4백여만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는 전쟁시뮬레이션에 겁먹은 클린턴이 그것을 포기해 버렸던 것이다.   이때에 북한의 군인들과 기득권세력들은 만약에 미국이 공격하고 한국군이 뒤를 받쳐주어 북한이 공격당하면 북한 기득권세력들은 미군과 한국군에 의하여 모두 사형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사생결단으로 싸울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고 귀순하면 모두 용서하고 목숨과 앞으로의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대대적인 삐라를 살포하고 공격을 감행했더라면,  즉 실제로 휴전선 인근에 특공대를 보내 미리 북한군이나 혹은 장교를 잡아 전향시킨후 실질적으로 그런 모습을 쵤영한 삐라를 대대적으로 살포하고 (미국이) 공격을 감행하는 쪽으로 나아갔더라면 북한군의 반응공격으로 인한 인명피해도 거의 줄일수 있었을 것이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였지만, 미국에 기대하고 있는 한국의 국방개념상으로는 사실상 이 기회를 살릴 처지도 못되었겠지 싶다.   선제공격은 할 수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 준비를 막는 것을 명분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때에 미국이 북한에 선제공격을 감행하더라도 중국공산당은 또 다시 한반도의 전쟁에 개입할 여력이 사실상은 거의, 거의 없었다.  실질적으로 사실상 제로였다.  중국경제도 바닥이었고 중국인민도 상당수가 초근목피 상태였다.  개입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던 것이다.    


구쏘려역시 붕괴되어 러시아 경제도 말이 아닌 상태로 러시아 또한 전쟁에

개입할 능력은 사실상 제로였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점으로 제기될 부분은 이때에 김영삼대통령 역시 한반도에 또 다시 전면전쟁이 일어날 수 있고 많은 인명피해가 날 수 있음을 염려하여 클린턴의 영변 핵시설 폭격선언을 반대한다고 한국 의사를 공식적채널로 미국에 전달했었다.  그러니 여러모로 보아서 클린턴은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어질 밖에 없었다.   


역시 국가의 운명도 미리 준비되지 않은 국가는 통일의 길도 열어 나가기 어렵구나 하는 것을 교훈으로 배울수가 있다.  이때의 한국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용기도 없었다.  한반도 분단상황을 뒤바꿔볼 용기 말이다.  이때에 미국에 의한 공격이 감행되고 한국군은 그 뒤치닥거리를 잘만 해 주는 쪽으로 큰 용기를 내었다면 한반도 통일의 길이 열릴 가능성은 상당히 있었다. 


미국이 그 인명피해를 감수하겠다는 독한 의지만 있었다면 그 공격이 성공했을 가능성은 80~90% 이상이었다.  위에 기록한 대로 삐라살포등을 동시에 활용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못했던 것 역시, 하늘이 김일성의 북한을 아직은 도왔던 모양이다.  아직도 북한 김씨왕조는 3대를 걸쳐 세습되고 있으니 말씀이다.  그리고 북한은 이제 핵무기를 완성하여 미국에게 맞서려고 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천하의 못된 독재 세습정권을 하늘이 도왔다고 보아야만 되는 것이 한민족의 안타까운 처지라 하겠다.


그리고 두번째는 좀 이른 1995년경 부터 2002년여 사이에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북한 주민의 먹을 쌀이 없어서 외부에 알려지기로는 대체적으로 3백여만명 이상이 굶어죽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것은 바로 직전의 위에 기록한 것 처럼, 북한이 직면했던 여러가지 상황으로 부터 연이어 발생한 사태였다.  


1991~2년의 사이부터 북한 경제는 밑바탕의 나락으로 빠지면서 쌀 생산량도 태부족하고 북한의 기층민중의 생활은 초근목피 상태로 전락 하여갔다.  그러나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외국에 대한 경제개방정책을 실시할 용기를 못 가졌던 김정일은 북한주민이 굶어 죽어나가는 것을 끝끝내 방치하였고, 죽은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의 북한 내부 경제정책은 대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독재정권하에서의 경제정책이 제대로 될리도 없었고 개방정책마저 끝끝내 거부했던 연유로 북한주민의 생활은 세계최하위로 떨어지고 북한 내부 사정은 실제로 급박하게 위기로 몰려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에 남한의 김대중( 1998년경의 고 김대중 ) 대통령은 북한의 이런 상황을 한반도통일의 기회로 삼아야 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의 쓰러져 가던 북한독재정권을 도와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거들어 준 역할을 하고 말았다.  


이때에 남한은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 IMF식민지 경제사태때로 그 상황을 극복하는데에 주력하느라고 한반도 통일대업이라는 국가목표에 진력하기 어려운 상황 이었을 수 있다고 백배 양보한다 손 치더라도 이때의 2대 세습독재정권, 김정일의 북한을 한국의 페이스로 잘 이끌어서 북한을 개방화 시키면 한국으로서도 오히려 북한을 활용, 경제활성화로 역이용할 수 있고 서로 상생할 수 있으며, 한국도, 북한도 부흥하는 계기로 만들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놓쳤다.  


김대중 정부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거나 아예 외면해 버렸다.  북한의 김정일의 눈에는 고분고분해 보이기만 하였던 남한이 만만했던지 바로 당시에 연평도 해상에서(( 2차연평해전)) 일체의 선전포고도 없이 갑자기 총포를 쏘는 도발을 일으켜 한국의 참수리호 함정이 침몰하고 선장과 대원 수명이 전사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고 김대중대통령정부가 북한 김정일을 잘못된 페이스로 이끌어 그를 착각하게끔 만드는 빌미를 준 것으로 보기에 충분한 상태였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총액으로 따지자면 현금과 물품을 합하여 수십억달러의 돈이 북한에 건너졌고, 한국이 그 돈을 건너받을 방법은 사실상 없어졌다.  북한독재정권은 그 돈을 거져 받아도 된다는 식으로 생각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역시 준비되지 않은 정부와 용기가 없는 정부, 즉 그런 지도자는 국민과 나라의 역사를 한 차원 더 높게 발전시킬 역량도 가지지 못한다.  


故 김대중 대통령, 그는 민주투사였을뿐--그것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존재가 있었기에 부각된 민주투사였을 뿐 --한반도 통일의 길을 열 수 있는 거목은 결코 못되었던 셈이다.  그가 진정 거목이었다면 그 기회를 충분하게 살릴만 하였었다.  사실 1993년 영변 핵시설 사태이후 또 다시 직면된 두번째의 천재일우의 동기적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이전의 고 김영삼 대통령이라 한들, 거기서 거기인 존재쯤의 인물들이었다면 과언일까 ?.  아마 과언도 아닐듯 싶다.  영웅과 범인의(凡人=평범한 사람의) 차이란것도 별다를 것은 없다 하겠지만, 정치가요 대통령이었던 사람이라 한들, 어떤 경우에는 보통의 범인들에 비해서 그렇게 특별나게 다르다 할 것도 없다.   


어쨌거나 상황이 그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개성공단 하나 연것 쯤으로 하여 한국이 북한으로 부터 무언가 크게 받아낸 것 처럼 한국 국민에게 그런 여론을 만들어 놓았던 (호도성이 있는 여론을 만들어 놓았던) 그 당시의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한국의역사발전 상으로 보자면, 적지 않은 패착을 하였던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현재의 박근혜정부와 혹은 차기의 정부는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 통일과 역사발전을 위한 국가목표가 있는지 ? 즉 한반도 통일 문제에 있어서 말씀이다.  


참고로 오늘은 3.1 독립 운동 기념일 이지만, 이러한 한국이 과연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으려나 싶기만 하다.  학벌 졸업장 많이 가진자들은((이른바 스펙)) 차고 넘치지만, 그러나 진짜 똑똑하거나 꼭 필요할때 참된 결단력을 보이거나 정말 지혜롭고, 진정한 기상을 가진 영웅이 없다 !!!  정치판도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고 박정희 대통령이나 정주영씨 같은 인물이 나라의 앞날을 볼줄 아는 기상을 가졌었다고 할까 ??!!  그분네들은 김대중대통령 시기 이전의 인물이다. (( 정주영씨는 김대중씨 재임시기에도 역시 노령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자신감으로 북한에 소떼를 몰고 방북하기도 했었기는 하지만...))  


어쨌건 우리역사에서 보자면 세종대왕때 장영실은 비록 동래현 관청의 노비였었지만, 소위 오늘날 같은 스펙따위, 신분따위는 일절관계없이 세종대왕이 그를 직접 천거하여 농사에 필요한 천문기기, 해시계및 각종의 과학발명을 하여 나라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고구려 고국천왕은 을파소를 직접 등용하여 그가 지극정성으로 나라일에 전념하도록 받춰주었다.  을파소는 비록 유리왕때 재상을 했던 을소의 후손이었지만, 그때 그 순간에는 농촌에서 그저 농사짖는 농부일 뿐이었다.  당시의 고구려사회, 국학기관 (제도권기관) 에서 공부하지도 않고 그저 농사일하며 책을 읽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인물됨을 알아본 안류라는 사람의 천거로 을파소는 재상까지 올랐고, 춘궁기에 백성에게 곡물을 빌려주고 수확기의 나중에 갚게 하는 진대법등 많은 좋은 정책을 시행, 백성과 나라를 평안케 하였다.   


나라의 최고지도자에 올라서면, 그처럼 인물볼줄 아는 것도 매우 중요 !!!.  오늘날 한국땅에는 그저 스펙좋은 잘난이(???)들만 많고, 북한에는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3대독재자가 온갖 저잘난척은 다하고.((국제사회나 남들이 비웃고 비난하는줄은 모르고)(80억짜리 요트타고 다니고, 북한국내에서 바쁘지도 않은 사람이 갖쟎지도 않게 전용비행기 타고 다니고 .)).....


그러니 한국이 아무리 전자제품을 잘 만들고 한류 열풍이 일어난다 한들, 대륙의 공산정권 권력자들은 한국을 아직 소국취급하는 게고.....!!! 통일은 한참 멀었다.       


1/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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