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을 훑거나 특정 신체부위 응시문제, 여성의 노출본능 존부문제 등과 관련,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한다.
요즘 남녀 갈등과 대립이 위태롭다. 그 주요 문제를 들어보면 취직 경쟁, 군 복무문제, 데이트 비용, 데이트 폭력, 집 장만 비용, 성 폭력 등 다양하다.
여기서는 다음 세 가지 문제를 생각한다.
1. 성 관련 법적 문제
2. 특정인 내지 그 신체 부위를 훑는 문제 등과 관련, ‘볼 권리’ 문제, 권리 개념 등 정리
3. 여성에게 노출 본능이 있는가?
바쁜 분들을 위해, 위 문제에 답변부터 하고 세부 사항으로 넘어간다.
1.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음탕한 시선과 여성의 수치심 주장만으로 처벌되는 경우는 없다. 만약 그런 내용의 입법이 된다 해도 위헌선언 될 것.
일명 성희롱법은 ‘직장내 성희롱’ 개념을 정의해 놓고는 있으나, 그 입법 취지는 남녀고용평등과 직장내 업무 효율을 기하자는 것. 동법과 시행규칙에서는 ‘시선’ 자체를 행위 유형으로 예시하지 않고, 설령 성희롱에 해당된다 해도, 사업주에게만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할 뿐인 것으로, 형사특례법이 아니며, 기타 근로자에 대해서는 그나마 과태료 규정조차 없다.
이 문제와 관련, 성희롱•성폭력•성매매 등을 관통하는 관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적 자기결정권 또는 사적 영역의 비밀과 관련, 그 영역 속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대자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 그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중요한 법적 의미가 있는 행위 하나하나마다이다. 일반론으로서는 이 법리가 상대자가 남성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동의나 합의 내지 계약 관념은 우리 동양인들에게는, 특히 신분적 행위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어색하다. 그러나 서양의 계약 관념은 신분행위에서도 그대로 관철되는 강력한 것이다. 어차피 우리 사회가 서양을 모델로 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면, 그들처럼 계약 관념에 충실한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 단적으로 말해서 특별한 합의 내지 동의 없이는, 헌법상 기본권을 원용해도 타인 내지 그 특정 신체부위를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권리 행사가 아닌, 자유 향유일 따름이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이 타인 혹은 그 특정부위에 대해, ‘볼 권리’를 주장한다. 물론 그 주장은 그릇된 것으로 그 원인을 살펴보건대,
첫째, 사적영역에 있어 권리 개념을 모르거나 둘째, 자유와 권리를 동일시하거나 셋째, 헌법상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일환인 볼 권리의 사적 영역에 무제한으로 원용하는 것으로 헌법이론의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사인간 관계에 있어 ‘보는 행위’는 ‘권리 행사’가 아닌 ‘자유 향유’라는 점을 증명하고자 하는데 그 개요를 말하면 첫째, 권리로 본다면 어떤 부당한 일이 발생하는지 보여줄 것이고,
둘째로 헌법상 자유권을 원용하더라도 결론은 동일한데, 자유권은 사적관계에서 주장할 수 있는 권리발생근거가 아닐뿐더러(자유권적 기본권자가 타 자유권적 기본권자에게 자유권리성 주장 불가), 간접적용대상이 되는 기본권도 아니며, 설령 간접적용대상이 되는 기본권이라고 하더라도 간접적용설의 본질은 사적관계에서 일방이 타방에게 직접 권리 자체로서 주장하는 것을 불허하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간접적용설은 사법상의 신의칙(민2), 사회질서칙(민103), 불법원인급여(민746) 등 일반조항을 통로로 해서만 사적영역으로 진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반조항에 구체적 내용을 주는 것은 법원의 전속적 해석권한에 속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인간 법적분쟁이 발생하면 訴제기를 통해 계쟁사건이 되는데, 헌법상 기본권이 주장•항변사유로 제출되면 재판관은 그 일반조항을 해석할 때 헌법의 기본권적 가치를 고려하여 쟁송물을 판단하여야 한다는 의미일 따름이다. 그런데 재판관이 헌법적 가치를 고려해야 하는 것은 기본적 의무이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본질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권리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바로 그렇다. 간접적용설은 사법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헌법상 기본권도 참작하겠다는 발상인데, 결과적으로는 권리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각종 비판적 견해의 요점은 이것이다. 즉 김철수는 법관에게 지나치게 많은 재량권을 인정하게 된다고 하고, 최대권은 노동법 등의 경우 결국 실제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난점이 있다고 하고, 문홍주는 간접적용설은 효력부인설과 내용상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 문제에 결론을 제시하면, ‘보는 행위’에 있어 권리 주장을 허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假使 헌법상 자유권을 원용하더라도 사인간에는 적용될 성질의 것이 아니며, 假使 간접적용된다고 하더라도 효력부인설과 대차 없는 고로, 권리 주장 云云은 위에 말한 것처럼 각종 오해에 기인하는 것인 바, 주장 자체로 근거 없다.
그러면 ‘자유와 자유의 충돌 문제’가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자유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일반적으로 동의할 수 있으므로 결국, 에티켓 경범죄법상의 지켜보기 등 일반원칙에 따라 해결해 주면 된다.
3. 노출 본능 문제.
만약 ‘노출 본능’처럼 본능 개념을 광의로 쓰고자 한다면, 나는 차라리 ‘옷 입는(着衣) 본능’을 주장하겠다. 인간종의 특징 하나가 옷 입는 것이고(인간은 털을 벗는 대신 옷을 입는 것으로 진화해 왔기 때문, <양복을 입은 원시인> 참조), 옷을 벗겨 놓았을 때 인간은 쉽사리 동물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동물에 노출 본능이 있을 리 없고, 옷 입는 것이 인간종 고유 본능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노출 본능은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 만약 노출 본능이 있어 유전적 각인이 있다면, 노출 본능은 남녀 모두에게 있을 것이며, 특히 여성에게만 노출 본능이 있다면 X-염색체가 노출 본능의 발현을 막는 그 기작을 찾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이런 관련 논변을 종합하면, 노출이 특히 여성에게 본능이라는 점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학문적 의미에서 노출은 일반적으로 노출증, 즉 정신분석 쪽으로 접근한다. 당연히 노출 본능의 관점에서가 아닌, 성도착증의 관점에서이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성적 본능은 강력한 것인데, 그것을 자연스레 덧씌운 ‘옷’이란 것은 강력한 본능과 같은 것이라 해서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옷을 문명의 상징으로 본능과 갈등 관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털 벗는 것과 옷 입는 것이 거의 동시에 발생한 진화적 사건이라면, 인간에게 옷은 제2의 털이다. 바로 이 점에서, 매슬로의 말처럼, 본능과 문명은 건강한 사람에게서 서로 대립하지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말의 일단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옷을 불편한 장식품 정도 즉 스팬드럴이 아닌, 개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팡그로스적 장치로 생각한다.
상식 수준에서, 인간은 옷 입는 본능이 있고, 노출은 정신병리적 현상이며, 여성의 노출-만약 있다면-은 짝짓기 본능의 충족을 위해, 자아가 이성 기능을 통해 현실 원칙에 따라 매우 전략적으로 행위한다고 파악해야 한다. 짝짓기는 본능이되, 그 상대를 선택하는 것은 결혼경제학이 설명하듯, 전략적•경제적•합리적 선택의 영역이고, 초합리성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육체적 매력을 과시하기도 하는데 그녀들은, 자신의 탐스러운 유방이 남성의 성선택에 따른 결과이고, 때문에 자신의 유방에 쉽게 매혹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때문에 그녀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 앞에서 영악하게도 가슴골을 짐짓 살짝 노출하기도 하는 등, 매우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에게는 타나토스적 감성, 미학적 감정이 있다. 이것이 노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제출해야 한다.
남성은 보고 싶은 본능이 있다. 이건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여성에게는 보여 주고 싶은 본능이 있을 것도 같다. 이런 본능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짝짓기 본능 수준에서 설명해야 할 것이고, 상대 선택은 합리•초합리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인간종은 초기부터 일부일처제와 그에 따른 규범을 한편으로는 진화론적 측면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규범적 측면에서 공진화시켜 왔기 때문에, 노출과 순결주의는 상호 대립적 압박하는 힘으로 작용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사실 우리가 말하는 여성 노출의 정도는 매우 애매한 것이다. 사실 여성 노출이 많은가도 확답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노출증이 아닌 여성 노출은 젖가슴을 가린 브라 정도가 마지노선인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성은 여성의 젖가슴에 매혹당하고, 허벅지는 여성 성기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소위 남성의 보고 싶은 본능은 성적 본능의 일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여성의 몸을 보았다고 그 욕망이 충족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보다 강화된, 그 다음 행위를 욕망할 것이다. 소위 보고 싶은 본능은 기본적 본능은 물론, 보다 약한 욕구조차도 아닌, 성적 본능의 일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위 여성 노출이 만약 있다고 할 때, 그것은 상대 선택의 전략의 일환으로, 내지는 미학적 감정이나 개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