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과 "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면, 전남도청 분수대 앞에서 시위대와 계엄군이 마주보며 대치하다가 오후5시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서로 대치 상태를 잠시 풀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국가가 끝나자 다시 대치 상태로 복귀(?)한 두진영이 서로 마주보다가, 일렬 횡대로 늘어선 계엄군이 비무장 시위대를 향하여 '일제 사격'을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음향효과가 웅장한 제대로 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면서 영화에 한참 빠져 들던 필자는, 이 장면에서 전율이 솟구치던 경험이 있었다. 영화에 몰입해 있던 중, 바로 이 장면에서 거의 반사적으로 계엄군에 대하여 적개심을 느끼게 되면서 시위대에게는 동정심이 솟구치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완전한 허구이다. 광주사태 기간중에 도청앞 분수대 광장에서 시위대와 계엄군이 정면으로 마주보다가 일제사격을 퍼붓는 이러한 장면과 상황은 전혀 없었다. 극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 제작진이 픽션으로 설정한 장면일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의 뇌리에는 이 장면이 던져 주는 뇌쇄적인 효과때문에 광주사태 전반에 대한 정확한 팩트를 파악하는데 혼란을 갖게된다.
( 주 ) 시위대와 계엄군 사이의 총격전은, 영화에서 설정한 장면보다 며칠지나서, 계엄군의 폭력적 진압에 맞선 시위대의 거친 저항에, 다시 계엄군이 자연발생적으로 산발적으로 실탄 사격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전두환 노태우 재판 속기록에 이 부분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요즈음 '귀향'이라는 영화가 인기 상영중이라고 한다. 영화 소개글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 1943년, 천진난만한 열네 살 정민(강하나)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가족의 품을 떠난다. 정민은 함께 끌려온 영희(서미지),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제2차 세계대전, 차디찬 전장 한가운데 버려진 정민과 아이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일본군만 가득한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현장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의 아픈 이야기! "
여기서 필자의 주목을 끄는 부분 , '일본군 손에 이끌려'. 그리고 영화 예고 동영상에서 보여주는 바로 그러한 장면. 1943년이면 국가의 존망을 걸고 전쟁이 한창 치열한 시기인데, 이러한 시기에 현역 군인이 전장(戰場)에 있지 않고 후방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민간인 들을 강제로 끌고 간다는 설정.
정규재 주필님의 오늘 칼럼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 과장도 거짓말의 일종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역사로 만들어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한국인의 주특기인가요. "
박유하 님의 "제국의 위안부" 25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 사실, 몇 권의 증언집 속에서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고 말하는 위안부는 오히려 소수다. 증언자의 대다수가 이런 식의 유혹을 받고 집을 떠났다고 말한다. 물론 센다의 책에 나오는 업자처럼 ‘군’이 직접 업자에게 위안부 모집을 의뢰한 경우는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기나 유인까지 해가면서 마구잡이로 끌어오라고 지시했다는 증거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마구잡이로 모집하는 것을 금지한 자료라면 존재한다(<사진 1> 참조). 그 자료는 설령 강제로 끌어간 군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공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
횡설수설 말이 길어졌다. 각설하고, 필자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주) 박유하 님의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은,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일부가 삭제되었다. 거꾸로 얘기하면, 삭제되지 않은 부분은 대단히 높게 신뢰할 만하다고 국가기관이 공인한 내용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