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설 명절. 미국에서 맞는 설이야 어디 설 같겠습니까만, 아마 그 분위기는 성당에나 가야 느낄 수 있겠지요. 설 명절 미사가 있을 것이고, 신부님께선 아이들의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실 것이고. 대부분은 이게 음력 정월 초하루라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갈 겁니다. 삶에 쫓겨서, 그리고 이 날은 휴일이 아니니까. 다행히 토요일에 걸려서 설을 쇠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긴 하군요.
차이나타운은 좀 한산할 듯 합니다. 요즘 침 맞느라 집 근처에 있는 한의원 한 군데와,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의원엘 가는데, 설 분위기가 더 나는 건 그쪽입니다. 시애틀의 오래된 화인촌華人村은 축제분위기가 한참이고, 아마 오늘 밤이나 내일 밤엔 용의 탈을 쓰고 폭죽을 터뜨리는 그들만의 오랜 악귀 몰아내기 풍습도 그 타운을 더욱 축제의 분위기로 몰아갈 겁니다.
원숭이의 해, 병신년이 가고 닭의 해, 정유년이 왔습니다. 제 해이기도 합니다. 제가 기유년생이니 한 갑자가 지나려면 아직 12년이 더 돌아야 하지만, 그래도 어느새 육갑을 짚을 필요 없이 햇수를 세어낼 수 있는 나이가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닭의 해지만, 닭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해입니다. 기승을 부리던 조류독감은 이 불쌍한 새를 수천만 단위로 생목숨을 땅에 몰아 넣게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인간입니다.
닭을 조금 더 빨리, 크게 키워서 시장에 내 놓아야 한다는, 그리고 더 많은 달걀을 낳게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닭들은 병아리 때부터, 아니, 심지어는 닭과 병아리 모두 포란의 기회마저도 박탈당한 채 인간이 만들어 낸 기계를 통해 태어나고, 어느 정도에서는 움직일 자유조차 뺏겨버리는 케이지에 갇혀 산란과 비육을 강요당해야 하지요.
인간의 잔인함은 이윤이라는 목적에서 여과없이 발휘되니, 닭을 닭다운 환경에서 키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자연 속에서는 충분히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닭의 면역력은 케이지 안에서 떨어지고, 항생제를 아무리 맞아도 조류독감이라는 항원을 이겨낼 수 있을 정도가 되지 못하는 것이지요.
닭을 머리가 나쁜 동물이라고 해서 우리는 심지어는 지금 이 타락한 권력자마저도 닭에 비유하지만, 닭이 머리가 나빠진 것은 닭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한 탓입니다. 횃대에 올라 새벽을 알리는 장닭의 고고함은 많은 문인들의 칭송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동화 브레멘 음악대에서의 닭은 심판관의 의젓함을 보입니다. 닭의 벼슬은 말 그대로 벼슬을 의미하는 관모에 비교돼 왔습니다. 하물며 올해는 붉은 닭의 해, 닭의 총명함을 상징하는 해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명민한 닭이라는 동물을 바보로 만들었고, 프라이드 치킨은 한국에서는 많은 은퇴자를 파산시키는 나쁜 새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습니다. 이 닭을 다시 상서롭고 명민한 동물의 상징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닭의 이름을 얻고 있는 한 정치가만 제대로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려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닭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게 된 것은 다 그 인간 닭 한 마리 때문 아니었습니까. 우리의 역사 속에서, 또 인류의 삶 속에서 사람들의 풍성한 저녁을 빛나게 해 주고, 또 아침이면 일터로 나가게 해 주고, 심지어는 자기의 알마저도 모두 바친 그 새가 인간 때문에 오명을 뒤집어써서야 되겠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