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넘은 국정문란과 무능한 대통령의 민낯은 춥고 눈 내리는 주말에도 200만 가까운 촛불이 광장에 등장하도록 했다. 200만 국민이 토요일에 나왔으니, 각 개인의 하루들을 더해 햇수로 계산하면 5000년 넘는 시간이 대통령 퇴진 요구에 사용된 셈이다. 200만, 5000년의 힘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회 결정에 따라 퇴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도록 했고, 국회의 탄핵안 통과를 이끌어 냈다.
국정문란을 자행한 대통령과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새로운 대통령 선출로 우리 사회가 상식이 통하고, 허망한 지도자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건강한 사회가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수 있다.
2014년 봄, 300여명의 어린 학생들이 사실상 타살돼 수장되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으나, 지금처럼 많은 이들이 분노하며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조롱하던 이들마저 있어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과거 쌍용차나 한진중공업 사태에서도 그랬지만, 공권력 물대포에 사람이 죽어가도, 국정 역사교과서가 비공개로 만들어져도, 한반도 전쟁 위험을 높이는 사드 배치가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개성공단이 문을 닫아도 많은 이들이 남의 일 보듯 무심했다. 그랬던 이들을 포함해 강철처럼 견고하게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던 특정 지역 사람들도 이번에는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의 여러 상황은 공공성과 민주질서의 문제였지만 그들에겐 그저 이웃의 고통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권력 실세의 딸이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입학해 특혜를 받고, 마사지센터 원장이 몇 백억원 규모의 재단 이사장에 취임을 하는가 하면, 정치와 경제 기득권자들이 야합을 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썩은 냄새가 진동케 했다. 꼭두각시 대통령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은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불러일으켰다. 무한경쟁 사회체제에서 정상적이고 성실한 노력은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허탈감은 각자에게 절절한 고통을 안겼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낙하산 인사 문제나 정치권과 재벌 유착에 의한 부정부패, 편법 등은 이미 국민 모두에게 알려진 내용이다. 그리고 독재자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 세월호 참사 때 가짜 눈물을 흘리던 박근혜, 사이비 종교인의 비서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 탄핵의 대상이 된 박근혜는 동일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그동안 ‘과묵한 정치인’이라는 권위를 부여하며 굴종해 온 것은 우리 자신이었고, 기득권자에 의해 사회 공공성과 민주절차가 유린되어도 이웃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방관해온 것도 우리 자신이다.
돌이켜보면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 조직, 단체에서 우리의 착각 내지 방관 속에 부당한 권위를 내세우며 왜곡된 권력을 행사한 ‘박근혜 분신’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든 5000년의 촛불은 대통령 경질이나 관련 부역자 처벌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사회 하부 구조 곳곳에 박혀 있는 박근혜의 분신들을 우리 일상에서 걷어내는 힘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듯이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단체의 권력을 부당하게 사유화 내지 남용하는 자들을 향해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럴 때 사회는 밑바닥 뿌리로부터 건강해지며, 200만 촛불은 비로소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아름다운 촛불의 열매야말로 그동안 외면했던 이웃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생각하는 성찰의 열매이다. 이는 공공성의 문화를 우리 사회에 안착시켜 성숙한 사회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된다. 이번에 초등학생까지 추운 광장에 나와 분명히 보여준, 공적 권위와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깨어있는 시민의식은 여러 집단, 단체, 조직 속에 기생하며 부당한 권위와 권력을 행사하는 ‘박근혜 분신들’을 몰아내는 운동으로 실천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은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내려온 제왕적 대통령과 부패·비리 구조를 넘어서는 건강한 민주사회가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이것이 200만 촛불이 우리에게 남긴 짐이자 숙제이다. 사회의 뿌리를 이루는 일상의 다양한 작은 단체와 조직에서부터 건강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윗부분을 아무리 다듬어도 사회 전체의 건강함은 얻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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