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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조 사마의◐◐ 2018-02-02 05:51:27
작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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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6     추천:2

 

조조

 

삼국시대 위나라의 시조

 

[曹操, cáo cāo ]

 

요약 삼국시대의 정치가이자 군사가

 

 

 

 

 

 

 

 

 

 

시대

동한(東漢, 후한) ~삼국시대

 

 

출생 - 사망

155~ 220

 

 

이칭

위 무제(魏武帝)

 

 

목차

1. 조위 정권의 창시자

2. 동한 헌제를 끼고 사방을 호령하다

3. 위왕에 오르며 정치적 실권을 잡다

4. 건안문학의 흥성을 주도한 문학가

5. 관련 유적

 

1. 조위 정권의 창시자

 

 

조조의 초상화

 

 

조조의 초상화

 

 

패국(沛國) 초현1) 사람으로 자는 맹덕(孟德)이고, 다른 이름은 길리(吉利), 아이 때 이름은 아만(阿瞞)이다. 본성은 하후(夏侯)씨로 동한(후한) 환제 때 태위2)를 지낸 조숭의 아들이다.

 

동한 헌제(獻帝, 재위 189~220) 때에 승상(丞相)을 지냈으며, 황제를 끼고 사방을 호령하면서 원소와 원술, 여포, 유표, 한수 등을 제거했다. 대외적으로 흉노, 오환(烏桓, 내몽골 동쪽의 북방민족), 선비(鮮卑, 몽골의 유목민) 등을 토벌하여 중국 북방을 통일했다. 더불어 경제생산을 증진시키고, 사회질서를 안정시켜 위3)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권모술수와 임기응변, 적재적소에 인재를 쓸 줄 아는 인용술에 능한 인물로 평가된다.

 

2. 동한 헌제를 끼고 사방을 호령하다

 

스무 살인 174년 효렴4)으로 천거되어 낭관이 되었다가 허난(河南)성 뤄양(洛陽) 북부위(北部尉), 돈구5) 현령, 의랑(議郎) 등을 지냈다.

 

184,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기도위(騎都尉, 황제 호위직)가 되어 난을 진압했다. 이 공으로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의 재상으로 승진하지만 그는 병을 핑계로 동군(東郡, 허난성푸양 서남쪽) 태수(太守) 직을 사양하고 귀향한다.

 

189년 영제가 죽자 뒤 이어 황제에 오른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세운 동탁이 조조를 효기교위(驍騎校尉, 경호장교)에 임명하였으나 사임했다.

 

190년 조조는 원술, 손견 등과 연합하여 동탁 토벌을 주창하며 거병했으며, 발해6) 태수로 있던 원소가 맹주가 된 반동탁 연합군에서 분무장군(奮武將軍)의 직위를 맡았다.

 

헌제 초평(初平) 3(192) 동탁이 살해된 뒤 연주7) (, 지방장관)이 되어 황건군의 투항군을 청주(靑州, 지금의 산둥성 칭저우) 병영으로 편입시켰다.

 

195년 헌제가 장안(長安, 지금의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을 탈출하였을 때, 순욱의 건의에 따라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이 일로 조조는 건덕장군(建德將軍), 진동장군(鎭東將軍) 등에 임명되었고, 양조부 조등과 마찬가지로 비정후(費亭侯)로 봉해졌다.

 

196년에는 자신의 근거지인 허현(許縣, 지금의 허난성 쉬창(許昌))에 궁을 지어 헌제를 그곳으로 옮겼다. 그 뒤 조조는 대장군(大將軍), 사예교위(司隸校尉), 녹상서사(錄尚書事)로 임명되었으며, 무평후(武平侯)로 봉해졌다.

 

그해 겨울 쉬창으로 도읍을 옮기고 헌제를 자신의 보호 아래 둠으로써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이로써 새로운 정국이 될 위나라 건국의 기틀을 마련해나가는데 장수 한호의 건의를 받아들여 둔전제를 실시하여 군량미를 확충하고 여러 제도를 정비해나갔다.

 

 

 

 

 

3. 위왕에 오르며 정치적 실권을 잡다

 

건안 5(200)에 관도 전투에서 당시 10만군에 달하던 원소의 군대를 불과 1만 명의 군사로 물리쳤다. 원소는 다시 전투를 벌였으나 창정(倉亭, 지금의 산둥성 양구(陽谷))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듬해 병사하였다. 그 후 원씨 가문에서 장자 원담과 막내 원상이 후계를 놓고 내분이 일자 조조는 원소의 근거지인 허베이(河北) 지방 공략에 나서 207년 중국 대부분의 북부를 통일하게 되었다.

 

건안 13(208)에 조조가 승상의 직위를 갖게 되자 중원 통일의 의지를 표명했다. 이듬해 여름 본격적으로 남진을 개시하였다가 적벽(赤壁, 지금의 후베이성 가어(嘉魚))에서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에 대패했다. 이후 세력이 강남(江南)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적벽대전의 패배 이후 조조는 내정에 힘을 썼다. 능력 있는 인재를 구한다는 <구현령(求賢令)>을 내려 출신 성분에 관계없이 유능한 자를 요직에 임명하게 하였다.

 

건안 18(213) 조조는 손권을 상대로 40만의 군사를 일으켰으나 수세에 몰려 철수하였다. 같은 해 5월 헌제는 조조를 위공(魏公)에 봉하고 216년 위왕(魏王)에 임명하였다. 이로써 조조는 사실상 정치상의 실권은 잡게 되었지만 스스로 제위에 오르지는 않았다.

 

220년 마침내 아들 조비가 헌제로부터 황위를 물려받게 되자 동한(후한)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위나라의 역사가 시작된다.

 

조조는 그해 1월 허난성 뤄양에서 죽은 뒤 시호가 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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