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 이야기
금관가야의 시조 왕비인 허황옥이 인도의 야유타국에서 동남아시아 , 중국 파족의 집단 거주지인 보주국을 거쳐 한반도 남단 김해에 도착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한반도 남쪽 지방의 무덤에서 서양인의 특징을 가진 유골이 발견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와 발굴 결과로 인도의 갠지스 강 유역에서 벼농사를 하고 있던 인도 아리안들과 드라비다 족 등의 토착민들이 벼농사 기술을 가지고 동남아시아, 중국 그리고 한반도로 이주하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벼농사는 인도, 타이를 (원래 타이족은 중국의 양자강 중, 상류에 거주하였는데 몽고의 세력에 밀려 크메르족의 땅으로 남진하여 타이와 라오스를 세웠음)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중국, 윈난 및 아삼 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한반도에 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벼농사가 전래되었겠지만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에서 벼농사가 주로 전래되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벼농사가 먼저 시작된 지역으로 윈난 성, 화남 지방, 양자강 하류 지역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양지강 하류에 위치한 저장 성의 나가각과 하모도에서 발굴된 유적이 크게 주목을 끌었다. 하모도 유적에서 농사와 직접 관련되는 나무나 뼈로 만든 농기구, 갈아 만든 석기, 농사 시기 직후에 이루어진 무늬 있는 토기가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나가각 유적에서도 비슷한 여러 가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어 우리나라와 가까운 산둥 성 등지에서 쌀 재배의 북상과정을 알려주는 탄화미가 발견되었다.
지금까지는 한반도에서 벼를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를 청동기 시대 초기인 3천여 년 전부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시기를 앞당길 새로운 유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다. 일산 기와지, 김포 가현리, 강화 우도, 나주 가흥리 등지에서 볍씨, 볍씨 자국, 벼과의 꽃가루가 발견되었다. 또 1995년에는 광주광역시 신창동 유적지에서 최대 80cm에 달하는 두꺼운 벼 껍질 층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미 발굴된 평양, 부여, 김해의 벼 유물은 모두 청동기 시대의 것이었지만 최근에 발굴된 유물들은 모두 신석기 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김포 가현리에서 발굴된 쌀을 방사선 탄소 측정법으로 조사해보니 4천 년 전의 유물로 밝혀졌다.
벼농사가 시작된 초기에는 볍씨를 밭에 심는 방법이 사용되었고 지금처럼 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 이후로 추정되며 모내기는 훨씬 후기에 와서야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