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선택한 그의 제자들.(막3;13~19).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지혜로운 경륜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고전1;21).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복음을 전파 하실 때 자기에게 필요한 조역자인 제자들을
선별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을 선택하시는 기준이 우리의 기준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식한사람이나, 잘생긴 사람이나, 재벌가의 사람이나, 당대에 유명한 슈퍼스타도 아니고, 도덕군자나, 종교지도자도 아니고, 권력의 소유자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부, 천민 죄인으로 멸시를 받는 세리와, 열혈당원인 민족주의자들이며, 계산에 익숙한 유다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왜 이런 사람들을 불러서 자기의 제자를 삼았을까?
이는 뿌리가 깊이 박힌 나무는 뽑고 새 나무를 심기가 어렵지만,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쉽게 뽑고 내가 원하는 다른 나무를 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단순하고, 순수하며,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들이 꼭 필요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 안에 있는 사고와 정체성을 쉽게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복음을 쉽게 받아드리고 자기들 안에 이루고 그 복음의 사람이 되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신학교에 가서 그 교파의 신학을 배우고, 그 교파의 교리를 배워서 그 제도 안에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나, 이는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의 기준에는 한참 다르다고 봅니다.
이는 그들이 배우고 아는 것을 주님의 십자가에 죽이고 그 아는 것이 부활의 영성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들은 그 아는 것을 십자가에 죽이지 않고, 그들의 지식을 자기 주체로 삼아 그 지식을 전하고 또한 그 지식을 아는 것이 믿음이고, 구원이라고 하니, 이는 그것은 율법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한 복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천하지만 그들은 복음의 제자도 아니고, 모세의 제자도 아닌 선과 악을 제시하며 이 세상사를 비판하는 사탄의 노예에 불과하다고봅니다.
이는 우리주님께서 죽으신 십자가의 도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주님의 십자가의 도를 바로알고, 믿어서 그 십자가의 도를 이루시고 완성
하셔서 모두가 주님의 이름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카페 연옥영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