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믿는 분들의 생애는 영을 위한 신앙생활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의 생애는 육을 위한 육신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매사에 하나님(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생활이고, 육신생활은 육신에 필요한 육적 부강만 좇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신앙(믿음)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항상 하나님의 성령의 책망을 즐겨 순종하여야 합니다. 자기 육신의 생각과 지혜와 능력이 사단처럼 아무리 다른 자들보다 뛰어나더라도 만물을 창조해 운행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걸음마 수준의 어린 아이보다 못하기 때문에 어떤 일에 직면하여 자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대치될 때에는 무조건 자기 육신의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들의 전형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로마서 8:5~8) 하심 같이, 신앙생활의 주적은 육신의 생각이고, 육신생활의 주적은 하나님(영)의 말씀입니다. 육신의 안일과 쾌락을 위해 육적인 부강을 도모하는 것이 육신의 생각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생각이 영의 생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생각을 공유해 갖고 싸우다 이긴 쪽의 생각을 채택해 생활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생애)입니다.
육신생활에 젖은 자들은 짐승의 습성을 배워 지금 당장 육신의 육감(肉感)으로 부강한 것들만 상전으로 취급해 존중할 뿐, 아무리 부모 같은 주인일지라도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거나 육감으로 감지되지 않을 때에는 무시해 버립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에 속한 분들은 존재 서열의 이치(理致)를 존중해 자신보다 먼저 계셨던 부모급 분들이 지금 당장 육신의 육감(肉感)으로 감지되지 않거나 또는 미약해 실권이 없을지라도 세상 만사가 그분들의 뜻(말씀)대로 진행되어 종결된다는 것을 믿고 그분들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육신생활에 젖은 짐승 같은 자들은 현실적인 부강을 최우선 순위에 두며, 신앙생활에 속한 분들은 앞서 계신 모든 부모급 분들의 뜻(말씀)을 존중해 섬깁니다.
그래서 존재적 서열을 존중하는 분들의 대다수가 보수주의 성향이며, 육적이고 현실적인 부강만을 존중하는 자들의 대다수가 지금 당장 행세하는 세력들이나 무리들이나 습성들을 좇는 진보주의 성향의 짐승 같은 자들입니다. 이 두 성향의 사람들은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세상 끝날까지 사생결단으로 싸웁니다. 왜냐하면 보수주의 지도자가 바로 보수 중의 보수인 태초에 계신 하나님이시며, 또 그를 대적해 새롭게 등장한 자가 바로 뭇 인생들을 거짓말로 속여 생체실험하는 사기꾼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존재한 분들의 말씀을 세상 끝날까지 믿고 따르는 것이 바로 참된 신앙생활이며, 최근에 등장해 유행하는 것들만 존중해 따르는 것이 바로 거짓된 그리스도인의 육신생활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요한계시록 22:13) 하셨으며, 예수님 또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5:18) 하셨습니다. 즉 처음에 존재하신 분의 말씀을 사수해 지키는 것만이 생명의 승점이 될 뿐, 중도에 등장한 자들의 그 어떤 기발난 신학과 정책과 기술과 능력과 습관과 제도로는 결코 생명의 승착이 될 수 없고 도리어 죽음의 패착이 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에 출현해 나타나 유행하는 천태만상의 신학과 습관과 유행들을 처음 기록된 진리의 말씀으로 책망치 않고 도리어 저들의 유행에 가담하여 다수가 되는 것으로 이기려 합니다.
이 일을 주도하는 게 신학으로서 이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이 사람들이 듣기에 좋도록 해석해 놓은 성경지식입니다. 오늘날 신앙인들이 성경 본문 말씀의 유일한 해석은 오직 그 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해 지킨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모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16~17) 하셨건만 저들은 기록된 성경말씀으로 자기 육신의 생각과 세상 사람들의 육신의 생각을 책망해 회개시키려 하지 않고 다만 인간 육신의 생각에 합당한 성경말씀으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디모데전서 6:11~14) 하셨건만,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 재림시 책망받을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성령이 늘 일깨워 주시는 말씀, 즉 예수님의 말씀을 수시로 생각나게 하여 지키도록 하게 하시는 성령의 책망을 한낱 양심의 자책감으로 취급해 무시하고 지금 당장 육신의 눈에 보이는 목사들의 신학만 좇습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잠언 29:1) 하심 같이,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회개를 완성시키기 위해 예수님보다 더 효율적인 선생 노릇을 할 수 있는 성령을 저들의 개인 교수로 파송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령의 권면, 곧 책망은 자신도 지켜 순종하기 어려운데 남들의 잘못마저 책망하다간 자칫 반발을 일으켜 분쟁하게 되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짓이다라고 결론 짓고 성령의 모든 권면(책망)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보냅니다. 그리고 오로지 수십년 신학 공부에 전념한 목사님들의 가르침만 좇으면 천국은 차려다 놓은 밥상으로 취급합니다.
성령의 책망을 자주 들으면서도 목이 곧아 순종치 않는 자들은 천국 백성이 아닙니다. 성령의 책망을 듣고 진로를 결정하는 신앙 자결주의에 의해 신앙인의 상벌이 규정될 뿐, 사람의 가르침으로 다수를 이룬 것이 정통신앙이고 소수에 속한 것이 이단신앙이 아닙니다. 즉 목사님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니깐 하나님은 도저히 이들을 지옥에 보낼 수 없고 반드시 천국에 들여 보내실거다라는 억측에 빠져 있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누가복음 3:8) 하심 같이, 하나님은 사람의 다수나 유명을 보시지 않고 다만 자기 자신이 되시는 성령의 책망을 듣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분들만 구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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