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가 가르친 팔정도와 사성제의 핵심은 결국 당신을 <지금 여기>에 존재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마음이 더이상 외면의 어느곳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상태, 거기가 깨달음과 해탈(열반)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영원하지 않고 무상하며,나타났다 사라지고, 태어나고 죽는,윤회환생과 생로병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입구, 깨어나면 꿈과 같은 삶을 넘어서는 입구가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그것이 석가모니와 모든 깨달은 스승들이 가르치는 모든 가르침들의 종착지입니다.
<지금 여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요히 앉아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상태.
마음이 더이상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는 완전한 휴식의 상태.
그곳이 깨달음의 입구이며,마음(사념,자아,에고,거짓 나,영혼)이 사라져서 불성으로 떨어지는 입구입니다.
또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불교인들중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허무주의가 아니라고 부인하며, 어떻게든 대중들의 심리에 영합하기 위해서, 삶에대한 긍정을 떠드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석가모니의 근본 가르침을 모욕하는 일이며, 어리석은 대중들의 마음에 영합하는 파렴치한 짓입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중생들에게는 허무주의로 보이는 것 맞습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삶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꿈과 같은 것, 끊임없이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괴로움(苦)의 세계라고, 석가모니는 끊임없이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고, 석가모니는 윤회환생을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으며, 이것은 분명히 삶을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대중들에게 더이상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구도자가 할 짓이 아닙니다.
단, 그것(허무주의)은 마음의 세계에서 태어났다 죽는 일반 대중(중생)들에게 그렇게 보일 뿐,
진실의 세계(불성)에 든 깨달은 존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입니다.
깨어난 존재들에게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영원불멸의 불성이 유일한 진실의 세계이며,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 세상은 마음에의해 나타났다 사라지는 허망한 세계, 꿈과 같은 세계(마야Maya,환영의 세계)라고 모든 깨달은 스승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어 왔습니다.
즉, 우리 자신들의 참모습이며, 우주를 초월한, 영원불멸의 불성의 세계가 유일한, 진정한 세계이며, 사람들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 세계는 마음에의해 돌아가는,언젠가는 사라지고 무너질 꿈과 같은 세계입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이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고, 일체의 선(禪)의 목표도, 그리고 세속의 목표도, 모두 무시하고, 무위 가운데 안착하는 것.
그것이 심리적인 차원에 한정시킨다면, 실질적으로는 당신의 전면적인 죽음이다.>
- 무묘앙 에오- <폐허의 붓다>중에서
<생각을 끊고,외면의 일들을 잊고,아무 일 없이 조용히 앉아 있으니,봄은 오고 풀은 절로 푸르다.>
- 서산대사 - <선가귀감>중에서
마음이 움직임을 멈출 때 그것은 열반으로 들어간다.
열반은 바로 텅 빈 마음이다.
이 무심(無心)을 아는 것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열반의 영원한 축복이 마음이 쉬는 데서 나온다.
삼계에 태어나는 윤회도 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은 모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마음 없음이 곧 모든 것이고, 적멸(寂滅)이 곧 마음 없음임을 알아라.
- 달마어록 중에서 -
VISION
< 이번 생 동안 많은 깨달은 스승들의 가르침들을 읽고 그 핵심을 이해했으며, 그들이 동일한 가르침과 핵심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이 가르침들의 핵심을 가능한 알기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이해시키기 위해서 많은 글을 써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있다.저서로는 <알기 쉬운 깨달음>(전자책), <소설 개벽>(전자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