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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통님 11~15△ 2018-01-25 2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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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     추천:2


11.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중심제로 적용시키고 거기에 내각제적 요소를 혼합시킴



- 1948년 5월 10일에 5.10 선거를 통해 국회가 구성되었는데,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은 제헌 작업이었다. 그런데 이 제헌 작업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유진오인데, 그는 한민당의 의견을 반영하여 애초에 헌법의 권력구조를 내각책임제로 만들었다. 원래 다수의석을 차지한 한민당으로서는 내각책임제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각책임제가 된다면 대통령은 허울뿐인 대통령이 될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건국을 하고 또 부국을 하려면 영국과 프랑스와 같이 자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 중심제가 있어야 건국의 틀을 잡는 과정에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데, 내각책임제로 갈 경우 강력한 정책은 의회에서 흐지부지가 되어 추진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은 개인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개인의 권한이 위축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러한 이유로 그는 내각책임제에 반대했다. 그는 대통령 중심제를 원했는데, 한민당은 이승만이 없으면 자신들이 권력을 유지하기도 힘들 뿐더러 자신들이 밀어준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승만의 뜻대로 했다.

이로 인해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제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한민당의 요구를 전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제로 채택을 하되, 내각제적 요소가 다분히 섞인 대통령제 헌법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지금까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12. 장관의 각료내각을 편중되지 않고 통합적으로 구성(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초당파적)

 

-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초대 내각을 구성하면서 어느 당에도 편중이 되지 않는, 통합적이고도 거국적인 내각을 조직했다. 예컨대 그는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회주의자로 논란이 있었던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에 파격적으로 기용했는데, 이러한 면모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내각을 미루어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무총리로 북한에서 월남한 지역적, 당파적 기반이 없는 이윤영 목사를 추천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윤영 목사는 결과적으로 국회의 인준거부로 국무총리직을 맡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이승만 대통령은 이범석을 추천하여 이범석이 국무총리를 맡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을 추대해준 한민당 소속의 장관은 2명밖에 기용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한민당이 돌아서버리고 야당이 됨으로써 최초의 여야 정치제도가 확립되었다. 

13. 소작제도를 철폐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농민들의 자주성을 부여하고 생산력을 증가

 

- 이승만 대통령의 토지개혁은 건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아주 중요했다. 예전에 우리나라보다 잘 살았던 국가로 인식되는 필리핀의 경우, 토지개혁이 실행되지 못해서 지주층이 사회상류층으로 그대로 존속하게 되어 지금과 같은 가난한 국가가 되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파키스탄 또한 아직 봉건적 잔재가 많아서 제대로 발전이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과 같이 선진국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 기틀을 마련한 것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고 그의 토지개혁 때문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토지개혁은 농민과 자본주의를 살리는 개혁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토지개혁은 농민과 사업가를 구해 신생 대한민국 경제 건설의 토대를 이룬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화를 막으려면 토지개혁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관계 장관들에게 입버릇처럼 채근하곤 했다.

실제로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까지 간발의 차이로 거의 토지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 덕분에 농민들이 6.25전쟁 도중 북한이 점령한 우리나라 땅에서 토지개혁 선전에 농민들은 현혹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농민들이 대한민국에서 대거 이탈하지 않았고, 또 당시에는 농민의 국가로 알려진 공산주의 국가 북한으로 넘어가지 않고 대한민국을 지킨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시행된 '농지개혁에 대한 임시조치법'은 그야말로 민주적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임시조치법은 지주의 삶을 보장하면서도 농민에겐 자신의 토지를, 사업가에게는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해 경제건설 기회를 준 일거삼득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만약, 한민당에 포진한 대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을 견제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는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14. 6.25전쟁이 일어난 뒤에 군최고통수권자로서 뛰어난 리더십을 보임 

  

-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이승만 대통령은 전적으로 지원을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주고 있는 미국에게 오히려 큰소리를 치면서 전쟁의 주도권을 행사했다. 또한 그는 유엔군의 원활한 지휘를 위해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위임하였으면서도, 반공포로 석방 등 그때그때의 전황에 따라 전쟁지도를 융통성 있게 실시했다.

그는 친미로만 일관을 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이익을 위해 처신하고 행동했다. 또한 그의 위기시 전쟁지도력이 매우 뛰어나 밴 플리트의 후임으로 미 8군사령관이었던 맥스웰 D. 테일러는 "한국의 이승만 같은 지도자가 베트남에도 있었다면, 베트남은 공산군에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승만 대통령을 칭찬했다.

실제로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당시에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했다. 예컨대 그는 80세를 바라보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매주 전선시찰을 통해 장병들을 격려하여 사기를 진작시켰다. 실제로 당시 미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는 자신이 재임했던 2년에서 평균 1주일에 1번씩은 꼭 함께 전방과 훈련지역을 빠지지 않고 시찰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는 폭염이나 혹서 등 계절이나 기후와 관계없이 전선지역을 방문하고 격려했다. 한 번은 낙동강전선의 최대 위기인 영천 전투가 끝날 무렵에 이승만 대통령이 영천의 국군8사단을 격려했는데, 주변에는 적의 박격포가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또 그는 1952년 10월에 중부전선 철원지역에서 백마고지를 두고 중공군과 혈전을 벌이던 국군9사단을 방문하여 격려했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 9월에 중동부전선의 최대 격전지인 단장의 능선 전투를 앞둔 장병들을 격려하고자 부산에서 강원 양구지역의 펀치볼까지 쌍발기와 연락기를 번갈아 타고 최전선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노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바로 이러한 모습 때문에 그는 국군과 미국 장성들의 절대적인 충성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

15. 6.25전쟁 중에 일본이 야욕을 드러내자 독도를 지키는 평화선인 '이승만 라인' 선포

 

- 6.25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1952년 1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을 선포하여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경계선을 표시하여 미국을 포함한 연합국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불법으로 점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화선은 해안에서부터 평균 60마일에 달하며, 이 수역에 포함된 광물과 수산자원을 보존하기 위하여 설정한 것이었다.

어업기술이 월등한 일본과의 어업분쟁의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고 공산세력의 연안침투방지는 물론, 세계각국의 영해확장과 주권적 전관화 추세에 대처하기 위한 정책적인 배려에서 선언되었다. 평화선이 선포되자 처음에는 일본어선의 침범조업이 적었으나, 몇 개월 후 다시 급증함으로써 이승만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18일 선포수역에서 조업하는 외국어선은 국적을 불문하고 나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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