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지사의 멘토단장 박영선의원의 경희대학교 재학시절 감추고 싶은 학도호국단 여학생부장 경력을 밝히겠습니다. 같은대학 동문입장으로서 한때는 야당의 큰거목으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지지자로 지켜보았지만 갈수록 하는짓이 야당의 아이덴티티하고는 맞지않고, 분열의 아이콘이 되가는것 같아서 부득이 그의 과거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경력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글은 37년전 기억을 더듬어서 쓰는 글이지만 진실에 입각한 글임을 밝힘니다.
박영선은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 78년 입학하여 82년 졸업하였습니다.
글쓰는 저는 79학번으로 입학했는데, 저는 공대생이었지만 문리과 대학에 고교후배및 친구들이 있어 박영선이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를 종종 들을수가 있었습니다.
80년 서울의 봄당시 학생대모로 경희대학교 총학생회 조직이 붕괴된 상태였습니다. 4월초부터 시작된 조영식총장 사퇴를 위한 학생들의 40일이상 무기한 단식농성후 5월13일경 시국데모로 벌져 5.17 계엄령으로 전국의 대학에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7월중순경 휴교령이 해제된후 학교가 정상화되어 붕괴된 학생회조직을 다시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학생회조직은 문교부의 지시로 직접선거가 아닌 간접선거제로 학도호국단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부연 설명하면 60개학과 3학년 학회장들이 모여 투표로 학도호국단 단장을 선출하는 선거방식입니다.
학도호국단장 후보로는 전두환과 고향이 같았던 합천출신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3학년 최두영과, 김대중전대통령의 고향인 목포출신 정경대학 정외과 3학년 송병록의 2파전으로 붙었습니다. 절묘하게도 영호남 대결인점과 당시 학교바깔 시국에 비교하면 신군부세력에 대한 찬반 대결인점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문교부와 학교의 암묵적인 지지를 받는 최두영이 유리한 기우러진 운동장이었지만 때가때인지라 암울했던 시기에 숨도 제대로 못쉬었던 양심적인 학생들은 암암리에 송병록을 밀었습니다.
저는 그당시 2학년이었지만 에비역인 관계로 약간의 영향력이 있어서 문리대와 공대쪽 3학년 학회장 6~7명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송병록을 밀었습니다.학교측은 투표전에 학회장 60명들을 모아 경기도 광릉에 있는 학교 수목원에서 1박2일 엠티를 가졌는데, 이모임에서 학교측은 암암리에 최두영을 당선시키려 상대적으로 온건한 학회장들을 설득하려고 애를썼다 합니다. 선거결과 아쉽게도 송병록은 29대 31일로 패했습니다. 도저히 이길수없는 싸움이었지만, 양심세력이 숨이라도 쉴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벌였던 싸움인지라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날이후 2~3년동안 경희대학교 운동권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날반 저를 포함한 송병록의 참모들은 회한의 눈물을 뿌리면서 깡쐐주를 폭음하며 울분을 달랬습니다.
학도호국단장에 당선된 합천출신 최두영은 여학생부장에 덩치가 크고 어깨가 구부정한 박영선이를 여학생부장에 지명하였습니다. 그당시 경희대에 재학중인 여학생 비중이 대략 3000여명이었으므로 여학생대표인 여학생부장은 대단히 막강한 자리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당시 간접선거로 선출된 대학가 학도호국단 조직은 어용중에 어용이었으며, 문교부와 학교의 꼭두각시였습니다. 글구 학도호국단 간부로 졸업한자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취직자리를 선택하여 갈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학도호국단 간부들은 영향력있는 학생들이 시국데모를 주도할까 싶어 전전긍긍 학생들 동향을 파악하여 학생처에 보고하곤 하였습니다. 또한 그당시 대학가는 혹독한 암흑기였습니다. 늦게서야 광주의 진실을 접한 양심적인 학생들은 극심한 무력감에 빠져 휴학을 하거나 군대를 간 사람이 많았습니다,
박영선은 경희대 지리학과 졸업후 자기가 원했던 MBC기자로 특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MBC에서의 생활은 MBC퇴직기자 이상호기자가 부정적으로 평하였고, 국회에서의 의정활동은 심상정 의원이 평한 내용이 한동안 인터냇상에 회자된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리고 싶은것은 박영선이는 간접선거로 구성된 경희대 학도호국단 여학생부장 출신으로 음지보다는 양지, 낮은곳보다는 높은곳만 찾아다니는 해바라기성 인간의 전형이라는 것입니다. 의정활동 전반기 빅영선의 의정활동은 높이 평가해줄만한 때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턴 엑스맨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이고 정면돌파가 필요한 시점에 꼬리를 내리는 유약한 면은 대학시절 학도호국단 간부활동시 영향인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재벌들에 대한 개혁, 세월호 협상, 필리버스터 종료등
한번 어용은 영원한 어용입니다. 박영선이는 어용의 전형입니다. 그리고 살인마 전두환의 5공 부역자입니다. 네티즌님들은 향후 박영선이 출마하려 생각중인 내년 지자체장 선거 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때는 대대적인 낙선운동을 전개하여 박영선이를 조용히 은퇴시켜 집에 보냄시다. 비비케이로 이명박을 강하게 몰아붙이던 용기와, 삼성개혁을 외치던 개혁성을 잊어버린 박영선은 이젠 이빨빠진 호랑이고, 수명이 다한 고물 자동차일 뿐입니다. 박영선을 대신할 인물들은 더불어민주당에 차고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