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소년, 우리사회 진실과 거짓이 전도(顚倒)되게 하는 것인가?
늑대와 소년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다. 늘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던 소년은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심심해하던 어느 날 갑자기 소년은 “늑대야! 늑대가 나타났다!” 라며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즉각 달려 왔다. 하지만 소년의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기를 내리 3차례나 일을 벌였던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재미없고, 고독하고, 가지고 싶고, 외로우면 견디지를 못해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호기심과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일을 벌이는데 이것이 자신의 인생이 되어버리는 자들은 사회 해를 가져 오는 자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만이 아니라 정작 자신이 상처 받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만일 이에 대해 일직 철이 드는 인생이라면 결코 자신도 모두도 해치는 짓을 하지 못한다.
정작 늑대가 나타났던 것이다. 정말 다급해진 소년은 외쳤다. 하지만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다급해 진 목소리로 간절히 불렀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은 거짓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신은 그 만큼 깊어진다는 의미를 말해주는 시간적 개념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이 같은 배경으로 만들어가는 언론적인 역할이 일어나고 있다. 너무 많은 거짓과 속임수의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헌데 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해설하면서 일깨우는 잘못 된 배경들이 강화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어떤 사건들을 통해서 진실과 거짓을 전도(顚倒)시키는 여론몰이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자면 혼합적으로 몰아가면서 진실을 믿지 못하게 거짓을 미화시킨다거나 거짓 된 사회를 진실처럼 믿도록 하는 여론적인 작업들이 이루고 지고 있는 움직임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년이 재미 때문에 벌린 장난질에 비유되고, 소년은 무지에서 단지 재미 문제로 전개한 교훈과 관련 된 배경이다. 소년은 결정적 순간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불행의 순간을 맞았던 것이다. 이는 무지가 재미있는 일거리를 찾을 때 스스로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이 같은 배경으로 몰아가는 조짐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사회 안에는 사악한 자들의 인간 의지가 작심하고 벌이는 사회 몰이라는 점이다. 진실과 거짓이 전도(顚倒)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정작 사실이 보도 될 때 믿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기 위해서인 것이다.
수많은 근거 없는 소문들과 이야기를 해대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소문도 바로 이에 해당 된다. 문제는 이를 크게 부각 시키는 언론들의 문제이다. 이는 정작 우리사회를 지키려는 진실의 소리들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배경들이 될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 안에 일본 비판의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확산 되어가기 시작하니까 이 같은 움직임들을 근거 없는 거짓으로 몰아가는 작용이 가동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이를 감지 못하고 있다. 정작 일본이 행동을 개시할 때 믿지 못하게 만들어 가는 우리사회에 반하는 교활한 진실 게임의 한 형태인 것이다. 우리사회에 그 어떤 진실도 통하지 못하게 작업하는 언론 몰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우리사회 안에서 일본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 지대를 형성하여 일정하게 작용해 오고 있다면, 지금 쯤 우리사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일본 정서에 대한 확산을 막고자 하는 늑대와 소년 이야기의 방법이 적용될 시점이 된 것이다.
일본은 한국사회에 대해서 임진왜란 때부터 일본을 고민하게 만드는 예가 있었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 일본에 대한 반골 기질 확산을 막는 문제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 안에는 일본에 대한 자각 운동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과 일본을 추종하는 동조자들을 고민하게 했을 것이고, 그 결과가 지금의 거짓의 문제를 우리사회에 교묘(巧妙)하게 진실의 문제로 엮어서 일본에 대한 우리사회의 각성을 누르고자 함이 가동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