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수 있다는 것은 용기이다.
조국을 위하여 종교를 위하여 신념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정신이다.
또한 그것은 교육과 시대정신이 요청된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죽을 수 있는 기회는 군대생활 뿐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군인으로서 국가와 가족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 가지고 그런 숭고한 기회를 포기 하게 만든 인간들이
정치 일선에 있다.
이회창이 그랬고, 박원순이 그랬다.
이들은 국가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숭고한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국가의 운명을 맡긴다는 것은 아주 한심한 일이다.
죽을 수 있는 용기 조차 없는 자들에게서~~
스파르타는 아주 강한 정신을 가졌다.
스타르타의 정신은 싸우다가 도망가면 비겁한게 아니다.
싸우다가 장렬히 전우들과 함께 죽지 못한 것이 비겁한 것었다.
함께 죽기 위해서 죽어라고 싸워서 전쟁에서 이겼던 것이다.
일제 군국주의는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며 가미가제로 장렬한 죽음을
택한다.
이슬람교도들은 알라를 외치며 죽어간다.
이들의 죽음은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지도 모르나
국가를 위하여 신념과 종교를 위하여 죽었다.
그렇다면 한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자들은
아니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자들은 최소한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식들을 군대 조차 보내지 않아 조국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정신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대통령을 해보겠다고 하니
이런 자들에게서 무엇을 기대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리사욕에 빠진 자들이다.
세상을 속이는 자들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주 관대한 바보 같은 생각을 가졌다.
이런 용기 없는 자들에게 표를 던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