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그랬다 한국 성씨중에 이런 족보를 가진분이 몇분이나 있냐고 어머니는 전주이씨중에서도 왕손중에서 제일 상위권에
그리고 외삼촌이 4명에 어머니 막내로 아버지는 나주 아씨에 경남 남해 만석군의 외동아들 그래서 할아버지는 며느리 찾는다고 깔신이 3컬레나 닳을 정도였다고
당시 할아버지들은 마무리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고 아이당도 그 이름을 딴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맘에 안든다 넌 외국에 나가서 왔다 갔다 하라 그래야 너가 산다 그랬고 그랬는데 이성계할아버지 공부하시던 도봉산에도 할아버지 자주 가서 뵈어라 넌 특별한 아이다
땅에 놓이지도 않을 것인데 그래서 대구갓바위 심지어 충북등 안간곳이 거의 없을정도로 가자고 하면 갔다 부산서 서울로 비행기로 출퇴근때 주간조선에 점짐들이 많아 자주 갔다
밥은 호텔에서 먹고 친교가 많고 외국에 자주 드나들면서 살것이다 그랬는데 당시 동자부장관을 만났는데 선박을 하지말고 육상을 계약해서 하라고 계속 직원들을 보내어서 말했는데
바로 주유소 보다 큰 대형 육상저유소를 즉 도매를 말하는 것이다 땅을 상당수 가지고 해야 하는 그랬는데도 해상을 고집하여 드나들고 난 바다가 좋았다
부산은 큰 길이 하나이다 그런데다 난 운전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렇고 골프도 못하여 겨우 수영이고 요가이고 운전을 못하게 하여 사실상 도로사정을 잘 모른다
그리고 지리를 잘모른다 태워다 주면 가고 오고 당하고 집에 있으니 차가 없어서 그런줄 알고 기사가 오고 그것보다 너무 힘들어 항상 쉬고 싶었는데도 쉬지를 못하였으니
가면 특별관리대상이다 외국에 자주 나가고 맘에 들지 않아 힘들어도 그래고 오고 해야 한다고 그래야 맘에 찬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효부상을 몇개나 탔다 홀시아버지를 극진하게 묘셔서 할아버지 목뒤에 난 상처를 자신의 입으로 빨아서 낳게 하였고 지극정성으로
어릴때 항상 어머니 손잡고 상받으러 가고 자랄때 한번도 하지 말라 소릴 못듣고 누구든지 오년 업고 나가고 그래서 난 안업힌다고 해도 힘이 없으니 그렇게 자랐다 통영 남망산 바로 앞에 있는 아주 마담이 넓은집에서 태어났는데 큰오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집을 물었다
지금 여관이 들어선 집이라고 아버지는 지금으로 치면 나무배도 100톤 이상되는 아주 큰 배로 당시는 기름이 없어서 나무가 땔감으로 아버지는 거제에 산을 사서 그것을 베어서 그러니까 많은 사람을 섰고 대부분 머슴을 한 조상을 둔 후손들이 많이 왔고
남해에 엄청난 재산을 찾지 않아 작은 오빠도 남해에 지서장으로 가도 찾지 않았고 내가 갔을때는 이미 다 친척들이 다 가지고 난 후로 오빠 언니등 3명이 공직으로 난 재벌은 아니라도 하고 싶은데로 다 하면서 자랐다
공부를 못하여 초급대학이라도 옷을 항상 및춤형으로 그래서 재벌집 딸이라고 소분이 나서 친구들이 통영 우리집에 안간 아이들이 없엇고 작은 오빠 전투경찰 훈련때고 갔을 정도인데 그래서 당시 초급교사자격증을 받지 않고 야간중에 나갔을정도로 자존심인지 졸업하고도 서울에 편입하라고 하는 돈을 받아서 사무실을 내어서 망했고 집에 말을들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자랐기에 겁이 없고 그냥 싫으면 싫고 고집이 세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외국체질에는 맞지 한국의 후진성에는 안된다고 자신의 의사가 분명하고 그래서 엄청나게 바꾸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냐고
대학가기전 철학박사가 넌 서울로 가야돼 꼭 큰곳에서 넌 있어야 해 알았지 명심하라고 그런데 공부를 못했으니 부산으로
어머니를 왜 공동묘지에 했냐고 하니 당시 그런것을많이 따졌다고 하였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서 가서 그렇게 할수밖에없었다고 난 모습도 할아버지 그대로 닮았다고
밥을 안먹고 사탕만 먹어서 그래서 치아가 안나고 힘들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면 공부하라고 한집에 자란 의장이는 서울법대를 갔는데 난 부산초급대학을 갔다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 내 하고 싶은데로 두어서 그런것이라고 여상이라도 진학반인데 아버지는 서울은 못가게 하고 자주 못본다고
공부가 싫어서 초급대학 가니 친구들은 경여고 부여고 진주여고 마산여고 부산진여상 부여상등 그래도 나에게 붙어서 내가 얼마나힘들엇는데 토요일에 집에도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넌 우리힘이라고 하여
초급대학인데 친구들은 버스를 타도 너 가서 물어봐라 어디로 가냐고 그러면 우리가 그곳앞에 가서 서서 가야지 하고 친구들은 너가 우리르 도와주어야지 하고 뭘 보려도 엄두가 안나니 그렇다
이곳도 우리가 하자고 동창회도 내가 나서야 하고 당시 부산대학 상대교수님들이 우리과에 100% 출강으로 사실상 같은 대학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로 주임도 서울대 상대출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