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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책이 필요 없다는 무용론 자가 아니다↔ 2018-01-19 23: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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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4     추천:2

=나는 책이 필요 없다는 무용론 자가 아니다.=

 

내가 평생에 읽은 책은 몇 권이나 될까?

내가 평생에 읽은 시와 소설과 수필 등등은 몇 편이나 될까?

내가 읽었던 수많은 시와 소설과 수필들 가운데, 지금 줄거리와 주인공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소설은 몇 편이고, 즐겨 외우고 있는 시는 몇 편이나 될까?

 

내가 평생에 사서 읽은 책들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내가 사서 읽은 책들 가운데, 일부러 하루 품을 팔아 책을 사러가고, 시간을 내어 날밤을 새며 책을 읽고,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하여 공감했든 못했든 기타 등등, 그 한 권의 책을 위해서 내가 소비한 시간과 책을 구입한 돈의 가치를 따져보았을 때, 나를 위기에서 구하며 내 마음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생각되는 책들은 과연 몇 권이나 있을까?

 

내가 나를 생각하여 보면, 안타깝게도 내 관심 사항인 역사문화 연구에 필요한 전문서적을 제외한 일반 서적들 가운데, 특별하게 생각나는 책들이 없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자라나 돈을 버는 나이가 되어서는, 돈이 생기면 생기는 족족 책들을 사서 읽었다.

 

젊은 날 길거리에서 헤매며 살던 때는, 길을 걸을 때나 버스를 탈 때나, 항상 어떤 책이든 책을 들고 다니며 읽었고, 심지어는 애인을 만날 때도 책을 들고 나갔었고, 만일 들고 나간 책이 없으면, 길거리에서 파는 신문을 사서 읽을 정도로 책 읽기를 즐기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독서의 방법을 권장했었다.

 

산골짜기 숲에서 살 때도, 봄이면 시인들이 쓴 시집을 들고, 꽃이 피는 오솔길을 걸으며 시를 읽었고, 여름에는 물소리 시원한 계곡 나무그늘에서 소설책을 읽었고, 엄동설한에는 문풍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아래서, 긴 밤을 책을 읽으며 보냈었다.

 

그런 내가 어느 날 방안에 가득한 책들을 모두 불살라버렸는데. 이유는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책이란 마음의 양식으로 읽어야 하는 것인데, 지식의 습득이라는 허영과 마음을 사치하는 도구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랑스럽게 사서 읽은 뉴스를 장식한 베스트셀러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책이라는 것들이,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전혀 다른 것으로, 애써 돈과 시간을 허비하며, 굳이 내가 읽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일갈하면, 나의 독서라는 것은 지적 허영과 사치였을 뿐, 진실로 내가 나를 위함이 아니었다.

 

둘째는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깨달고 행하는 사람의 일들이, 사람인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책속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깨달고 행함은, 먼저 배우고 나중에 행하라는, 선후가 본래부터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깨달고 행함은 사람들 저마다 마음속의 일들이라, 깨달은 사람은 행하고, 행하는 사람은 이미 깨달은 것이니, 깨달고 행함이 선후가 따로 있고, 책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깨달고 행함이, 많이 배워 학문과 지식이 해박한 유식(有識)이라 하여 특별하고, 글을 읽을 줄을 몰라 아는 것이 없는 무식(無識)이라 하여, 다르고 차이가 있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손에 들고 읽고 있던 책을 던져버리고, 방안 가득 쌓아두었던 모든 책들을 불살라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랜 세월 내 스스로 내 마음이라는 거울위에 켜켜이 쌓아놓은 쓰레기들을 치워버리고, 밝고 환한 거울을 찾아 벽에 걸어놓고 나를 보듯이, 책들을 불살라버리고 내가 온전한 나를 보며 살고 있다는 말이다.

 

오해하지 마라, 나는 책이 필요 없다는 무용론(無用論) 자가 아니다.

부연하면 책들을 불살라버린 후, 다시 저잣거리에 나와서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권장하며 야학을 이끌어, 전국에 공부방의 붐이 일어나는 불씨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 촌부다.

 

촌부의 말인즉슨, 어두운 밤 모닥불을 향하여 무조건 날아드는 어리석은 불나방들처럼, 베스트셀러와 유명작가들만을 무조건 선호하는 책읽기, 즉 자신의 지적인 허영과 마음의 사치로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책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롭고 필요한 것이 아니며, 강을 건너야 하는 사람과 험한 산을 넘어가야 하는 사람이 읽어야 하는 책이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저마다 아픈 사람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약을 구하여 먹듯이, 책이란 사람에 따라 달라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한 권의 책보다는 잠깐이라도 가져보는 마음의 여유, 사색의 시간이 훨씬 더 유익하고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기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색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때와 장소를 찾으며, 명상이라는 허울과 어떠한 무형의 틀에 갇힌다면, 이 또한 흉내를 낼 뿐인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이다.

 

끝으로 게재한 사진은 바람꽃이 된 섬진강 강변의 억새꽃들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추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가을날의 낭만과 여유를 즐기고 있는 억새꽃들처럼, 모든 이들이 마음의 여유를 갖고 가을을 즐기기를 바라며 여기에 놓는다.

 

부정부패 없는 참 맑은 세상을 위하여

2017117일 섬진강에서 무초(無草) 박혜범(朴慧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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