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거대 정파의 하나로 치부되는 친노라는 명칭은 고 노무현대통령을 상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본인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아직도 남아있어 그의 가치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합니다.
그가 민주화의 상징처럼 인식되지만 사실 그또래의 김근태 유인태 등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민주화투쟁으로 투옥 고문등 온갖 고초를 겪을때 그는 고교졸업후 입신양명을 위한 고시공부에만 전념했었고 법관 생활을 거쳐 변호사 개업후에는 많은 돈을 벌어 일본에서 요트를 즐기는등 안락한 생활을 하다가 삼십대 중반을 넘긴후에야 비로소 박종철씨 사건등으로 시국문제에 관심을 갖고 몇번 변론한것 밖에는 없습니다. 흔히 고졸학력에 관심을 갖는데 그의 열등의식은 결코 학력이 아니라 보잘것 없는 민주화 운동 경력이었고 그것을 도덕성으로 극복하려다 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져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일관되게 보수야당 정치인의 길을 걸어온 YS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였는데 3당합당이 보수정당간 합치는 것이기는 하나 군사정권이라는 이질적인 면에 야합이라 반기를 들어 소신있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유신본당과의 DJP연합을 지지하였고 이념이 다른 재벌2세 정몽준과 연대하였으며 재임시 한나라당과 연정제의 등 철저하게 권력지향적인 능란한 처신을 함으로써 사생활이 문란한 여성이 요조숙녀 흉내를 낸 것으로 판명나지만 바보 캐릭터의 성공으로 희석시켜 버립니다.
지역간의 벽을 허물고 동서화합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캐스팅보트를 가진 충청권의 지역이기주의를 자극시키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공약도 내세웠습니다. 자원의 중복투자와 행정의 비능률 등 국토개발의 최대 재앙인 세종시의 탄생은 그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후 이명박 박근혜 등 후임자들도 어쩔수 없이 수용했다고는 하나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분적 과오은 있었으나 전체적 방향은 옳았던 4대강 사업은 비판하면서 여야 모두 아직까지는 세종시라는 괴물에 대해 솔직한 평가를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튼 선거에 재미좀 보기위해 영호남도 모자라 충청지역 지역감정까지 촉발시키면서 지역감정 극복을 내세웠던 위선적인 면이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소탈한 면을 강조했으나 부정을 저지른 전직 세무공무원인 형의 전횡을 방치하였고 음참마속의 심정으로 대처해야할 대우건설 남사장건에 대해 극단적인 가족이기주의를 내세워 형제의 범죄를 두둔하고 남의 인격을 짓밟음으로써 일국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너무도 작은 그릇임을 스스로 입증합니다. 또한 재임중 부동산가 폭등 대학등록금 인상 NNL발언 등 많은 실책으로 지지율이 5%까지 추락하고 결국 이명박 대선 압승의 일등공신이 됩니다.
이상 노전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나열한 것은 콘텐츠가 부실한 정치인이 이미지 연출만으로 국가의 운영을 맡게 되는 역사적 불행의 반복을 우려해서 입니다. 그래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었고 비운의 최후를 마친 고인에 대한 사감이나 폄하의 목적이 결코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