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갈팡질팡하며 누군가와 한바탕 싸울 기회만 찾고 있는 이 때에 이 나라의 내로라하는 논객들은 저마다 한 목소리식 내뱉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과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로 일컬음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께 대한 회개 뿐입니다. 옛부터 나라가 위경에 처하면 그 나라의 통치자인 임금이 베 옷을 입고 하늘의 하나님께 사죄하는 것으로 해결받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의 임금은 세상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바로 세상의 빛과 소금 노릇을 하여야 할 만민의 제사장들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자신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오로지 믿고 순종하여야 할 본분을 버리고 다만 육신의 기호와 흥미와 의욕을 철두철미하게 좇는 반역자 사단의 유혹을 받아 그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맡겨진 땅과 생물들 모두가 저주를 받아 사망(썩음)의 종이 되어 소망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그 어떤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보다도 이 시대의 주인공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불신해 불순종하게 되면, 그 여파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파급되어 저들도 큰 재앙과 혼란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선택받아 예수의 이름을 시인해 믿음으로 지나간 죗값을 용서함 받은 것까지는 잘한 일이지만, 그 다음 단계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으로서 살아가는 일, 곧 예수님의 언행을 세상 어느 누구의 언행보다 존중해 믿고 따라야 할 본분에 대해서는 또다시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신앙인들이 또다시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 같이 육신의 기호와 흥미와 의욕을 제일로 취급해 추구하는 사단의 학문 지식으로 예수님의 언행을 헤아려 보는 신학만 의뢰해 믿고, 사도들과 성도들처럼 예수님의 발자취를 친히 믿음으로 지키고 따르려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카톨릭교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 곧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신 말씀을 순수하게 믿지 않고,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을 때의 하든 버릇인 우상숭배 정신으로 성경 말씀을 풀이하고 해석해 인간화된 예수를 믿고 그것을 뭇 사람들에게 가르쳐 지옥자식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개신교들도 저들의 습성을 본받아 배워 성경말씀을 예수님과 사도들과 성도들처럼 믿음으로 지키고 따르지 않고 학문지식을 취득할 때 사용한 인간 혈육의 지식으로 성경말씀을 풀이하고 해석하기만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은 그 말씀을 내신 하나님만이 참되게 풀이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지 않고 다만 자기 뜻으로 풀이하고 해석하게 되면 곧장 하나님의 영이 그 말씀에서 떠나게 됩니다. 즉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성경말씀은 저들의 얄팍한 도덕적 수준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된 말씀 속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지 않고 그 말을 해석하게 한 자의 영만 존재하여 아무 사람도 하나님의 영(성품)을 접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사람이 먼저 믿음으로 지키고 실행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이 그 말씀과 함께 하여 그 사람이 주었던(심었던) 일에 대한 결실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이런 결실(경험)을 맛본 사람들이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성경말씀을 전해 가르칠 때에는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정감을 친히 접하게 되고 또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성경말씀은 그 말씀을 내신 하나님만이 참되게 풀이하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실행하지 않고 아담과 하와(사단)처럼 자기 혈육의 지식으로 그 말씀을 일방적으로 풀이하고 해석하게 되면, 그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꾸미고 그리고 해석한 자기(우상)의 말이 되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정감은 추호라도 접할 수 없고 오직 말한 그 사람의 감정만 단순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경말씀을 참되게 전하려면, 예수님처럼 사도들처럼 성도들처럼 자신들이 먼저 길과 진리되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친히 따르고 지켜야만 비로소 그 전하는 말씀 속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거하여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안위를 받게 합니다. 이것이 참된 전도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말씀을 듣게 되면 하나님이 우주만물과 온갖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운행하시고 다스리실 때에 가졌던 생기의 생명력의 흥미와 의욕을 듣는 사람들이 느끼고 갖게 되고, 또 그러한 흥미와 의욕을 자신들도 느끼고 갖게 되면, 하나님이 지시하신 말씀이 무엇이든 간에 예수님처럼 흥미와 의욕을 갖고 지키고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자기 육신의 뜻과 기호에 맞으면 즐겨 순종하고 그에 반하면 무시해 거역하게 되면, 이 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잘 듣는 아들이 못되고 도리어 하나님을 자신의 말잘 듣는 종과 도구로 취급하게 됩니다. 즉 입에 달면 삼키고 입에 쓰면 버리는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천하 인생들이 예수를 믿게 되면 만사형통하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하게 된다는 단맛만 삼키려 하되, 죗값을 탕감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보답하고자 할 때에 주어지는 쓴잔은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이같은 주관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건만, 저들은 선악과 속에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는 특효 성분이 있을 줄 착각하고 그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하셨건만,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지키고 실행하기 어려운 말이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취급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은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시키는 일과도 같이 쉽고 편하고 육익합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들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노예 같은 일을 시키겠습니까? 가장 쉽고 편하고 유익한 일들만 찾아 골라 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사람들이 믿음으로 순종하도록 하게 하셨을 뿐, 무지한 인간 혈육의 지식으로 임의로 해석해 그들의 말(야욕)이 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즉 성경말씀은 그 말씀을 내신 하나님만이 참되게 풀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였을 뿐, 사람이 그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지 않고 다만 자기 뜻으로 풀이하고 해석하게 되면 곧장 하나님의 영이 그 말씀에서 떠나 버리십니다. 즉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은 사람들의 얄팍한 도덕적 수준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해석(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석된 말 속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계시지 않고 그 말을 해석한 사람의 영만 나타나 아무 사람도 하나님의 영(성품)을 접할 수 없게 됩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자신이 먼저 믿음으로 지키고 실행할 때에는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함께 하여 그 사람이 준 것에 대한 참뜻을 풀어 헤쳐 보여주심과 동시에 또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자신의 염감(정감)을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먼저 지키고 실행하였다는 것은, 남이 전해 주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그 음식 맛을 친히 경험하였다는 뜻입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실행치 않고 오로지 풀이하고 해석하게 되면, 그는 남이 전해 주는 음식은 먹어보지도 않고 다만 전단지에 그 맛을 적어 전하는 짓과도 같습니다. 음식 맛을 경험한 사람의 억양과 경험할 수 없는 전단지의 글은 마치 실제 꿀과 말로 하는 꿀과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는 설교자나 신자들은, 마치 자식들이 부모님의 말씀을 가장 지키고 어렵고 힘든 말로 취급해 거역하는 불효 자식들이며, 또 그 나라의 국민된 자로서 국법을 지키고 실행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범법자와도 같습니다. 오늘날 이 땅에 이적행위자들과 동성애자들과 범법자들이 만연하게 된 까닭은, 사람으로서 가장 지키기 쉽고 편하고 유익이 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자녀된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불가능한 말씀으로 취급해 가르치는 불효불충한 자들의 만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으로서는 가장 지키기 어렵고 힘든 일로 취급해 가르치는 자들과 또 그들의 가르침에 동조하여 예수님의 말씀 따르는 일을 포기해 버린 자들은 모두다 김일성 치하의 북한 주민들처럼 죄악의 노예 짓만 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신학자들이 연구 개발한 믿음이란, 예수님의 언행을 따르고 지키는 율법적인 행위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들의 죗값을 짊어지고 죽어 주신 일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믿음으로 죄인의 대열에서 떠나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에 이를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 그 일 또한 거역과 반역과 배신이 되어 지옥형벌에 던져집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합니다. 예수님의 언행 따르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사람의 말을 따르는 일보다 쉽고 편하고 유익합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까닭은,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의 악령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가장 흥미롭지 못하고 재미가 없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 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자녀들에게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으로 살아가게 하는 아버지이십니다. 이를 대적하는 사단은 생명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이 개발해 만든 철학, 곧 불법불의와 거짓된 음모와 술수와 부도덕과 음란방탕으로 살아가게 하는 괴물입니다.
예수님의 언행(멍에와 짐)이 가장 쉽고 편하고 유익하건만 사단이 개발한 신학은 신앙인들에게 그 일에 대한 흥미와 의욕을 잃어 버리게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말씀이신 십자가 지는 일을 저주로 취급해 금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은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는 일들입니다. 십자가는 부모급에 속한 분들이 하여야 할 마땅한 본분이고 의무이고 사명입니다. 누구든지 부모급에 속한 분들의 일을 자기 기호에 맞지 않고 또 흥미와 의욕이 없다하여 팽개치는 자들은 모두다 김일성 일가들 같은 악습만이 자신의 기호와 습성에 맞는 일이라 하여 좇는 악의 졸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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