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도무지 믿기질 않았다. 다음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 이런 일이 21세기 우리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존심이 그야말로 진흙탕에 쳐박힌 느낌이었다. 100만 촛불시위에서 보듯, 아마 대다수 국민이 그런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정신을 추스르면서 생각해 보았다. 이 못된 대통령과 최순실의 무리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일개 필부인 내가 직접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 이 나라의 사법기관이, 야당이 어떻게 하는지 좀 지켜 보았다.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눈물로 고개 숙이고 석고대죄하며 수사에 협조해야 할 인간들이 슬금슬금 시간을 끌기 시작하더니 오리발에, 버티기 작전에, 나아가 역공 전략까지 쓰고 있는데도 이 쪽에서는 뾰족한 대책을 못 세우고 거의 지리멸렬이다. 말그대로, 힘 없는 우리 국민들은 미치고 환장하거나 울화병으로 제 명을 못 살 거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 야당이든, 시민단체든 당장 박근혜를 '내란죄 피의자'로 고발해 달라. 그래야 실질적인 수사가 이루어지고 진실이 세세히 밝혀지며, 행위에 걸맞은 처벌이 이루어질 것 아닌가.
헌법에 명시돼 있고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현직 대통령은 형사 소추의 면책 특권이 있다. 그래서 현재 별별 형사법의 죄목을 들이대도 강제 수사나 구인이 안 되고 있다. 하지만 '내란죄'와 '외환죄'는 면책에서 예외가 된다는 것도 우리는 함께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과 최순실 일당의 죄가 내란죄에 해당이 되느냐인데(일단 외환죄는 관계 없다고 보고), 나는 당연히 '된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법리 논쟁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바로 내 생각을 말해 본다.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가? 국민이 (한시적으로) 위임한 국가권력(최고 정책결정권)을, 대통령이 정당성 없는 다른 사람에게 자의로 넘기고, 정상적인 국가시스템(청와대, 내각, 여당 등)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은밀하게 또는 공공연하게 협박과 폭력이 수단으로 사용됐다. 협박과 폭력이라니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텐데, 무장하고 총칼을 들어야만 폭력이 아니다. 우월한 지위나 공권력(국가기관, 언론 등)을 이용하여 법의 한계를 넘어 자기의사를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죄다 폭력이다. 두루 알듯이 조응천, 박관천부터, 채동욱, 노태강 등의 인물들이 그것에 저항하다가 희생되었다.
우리 헌정사에서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는 적용된 바가 없다. 전두환, 노태우는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일으킨 군사반란으로 내란죄 판결을 받았다. 쿠데타로 헌법을 파괴하고 국권을 강탈했기 때문이다. 그럼 헌법에 나오는, 면책특권에서 제외되는 '현직' 대통령의 내란죄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국민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국권을 사익(또는 다른 목적)을 위해 누군가와 내통하면서, 넘겨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들은 한마디로, 박근혜와 그 일당들에게 국권을 '도둑질' 당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명이 다치고(자리에서 쫓겨나고), 국가시스템과 헌정질서가 파괴되었다. 이게 내란이 아니면 무엇인가?
나도 처음엔 이 사태의 본질과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대응이 꼬이는지, 한참 헤맸다. 그런데 알만한 이는 알고 있을 논객 이경숙 씨의 최근 글을 읽으면서 이번 사건을 단순히 측근비리, 직권남용, 국가기밀유출, 뇌물수수 따위로 한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란죄'가 바로 핵심이다. 더 자세한 논리와 근거는 다음 주소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http://www.leegyungsook.com/ 의 이경숙서실-->칼럼/논평/단상--> 207,208,210,211 글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하야나 퇴진은 다음 문제다.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는 박근혜와 그에게 부역해 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적들이 벌인 짓거리들을 낱낱이 밝혀내는 게 우선이다. 이를 위해 당장, 대통령 면책특권 뒤에 숨어 있는 내란의 수괴 박근혜를 강제 소환, 수사해야 한다. 만약 허깨비 대통령 박근혜가 끝까지 임기를 마친다면, 당장 14개월간 선장 없이 표류하는 대한민국호가 언제 좌초될 지 모를 뿐아니라, 거기 타고 앞으로 먼 항해를 해야하는 우리 후손들의 자존감도 미래도 암담할 것이다. 정말 이대로 어영부영 넘어간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이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무슨 낯으로 볼 것인가를 생각하니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서, 난생 처음으로 아고라에 글을 올린다.
P.S. 어제 일을 하면서 짬짬이, 피켓에 쓸 구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위 나가실 때 참고하시고, 더 좋은 의견들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내란수괴 박근혜를 소환하여 수사하라!
- 내란사범 처벌없이 공화국이 웬말이냐?
- 내란처벌! 민주수호!
- 국민주권 도둑맞고, 열받아서 못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