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말씀을 직접 믿는 분들의 크나 큰 이익.
◎ 질문(성경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절 아주 잘 아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저의 믿음 없음도 아시기에 말씀으로 많이 채우라고 권하시는 데 전 왜 이리 부담스러운지... 정말 은혜스러운 곳이고 날카롭고 따뜻한 곳이지만 결단이 안 서네요. 하나님 사랑을 확실히 모르고, 말씀은 율법으로 들어서 맘에 부담이 되고, 깨지고 낮아지고 비우라는 것도 넘 어렵고 휴... 항상 하나님보단 사람들 앞에 서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인데, 휴...
분명히 지금 정상적인 신앙생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더 많이 힘들어 질때까지 견뎌보자 이런 생각도 들고... 가끔은 그래도 구원받았다는 것 하나로 다 된거지... 이 정도면 되었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겠지... 이런 생각들이 드네요, 휴... 기도하고 응답받는 대로 행하는 거 정말 좋겠지만... 지금은 기도하기가 넘 어렵네요. 이런 상황인 데 일주일에 3번씩 말씀 공부하라는 말씀, 순종해야 될까요? 아님 그냥 접어야 되나요? 조언 부탁드려요.
◈ 답변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상대방이 너무 자세히 아는 분이란, 때로는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될 수 있습니다. 장점은, 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상대방이 선한 사람이면 하나님처럼 나의 고장난 부분을 정확히 알고 올바로 진단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단점은, 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상대방이 사단처럼 악하고 거짓되면, 나의 약점을 잡고 자기의 노예로 삼아 마음대로 부려 먹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전하고 가르친다 하여서 다 선한 사람으로 보면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전하고 가르치느냐, 아니면 자신들의 뜻이 가미된 성경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배우는 사람들의 생사화복이 결정(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에는 자기 자신이 직접 성경본문 말씀을 읽으십시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사람의 뜻이 가미되어 있지 않는 성경지식으로 자기를 찾는 사람입니다. 성경 해석이 한 사람, 두 사람 거치면 거칠수록 성경본문의 참뜻이 변질되거나 왜곡되어 나중에는 하나님의 참뜻보다 전하는 사람들에게 숨어있는 죄된 습성이 가미된 성경말씀만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글을 읽고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지식에 있는 분들은 친히 성경말씀 본문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원산지 식품이 사람들의 손 떼를 거치며 이동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질을 막고, 생산지 현장에서 신선도를 그대로 지닌 식품을 직접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성경말씀을 직접 읽는 자들의 크나큰 이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다른 사람이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듯,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 자신과 직접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진솔한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본인이 직접 성경말씀을 보고 듣고 읽는 일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읽는다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분들과 대화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보려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으면 되고, 베드로의 믿음을 보려면 베드로의 언행을 읽으면 되고, 다윗을 만나려면 다윗에 관한 글들을, 모세를 만나려면 모세가 쓴 글들을 읽으면 되고, 그 외 수많은 믿음의 용사들과 선지자들을 만나려면, 그들의 일거일동이 기록된 글들을 찾아 읽으면 됩니다.
악인에 관한 얘기들을 오래동안 읽게 되면 그의 악습이 자기 영혼에 스며들게 되고, 의인에 관한 얘기들을 오래동안 읽게 되면 그의 선하고 의로운 성품이 자기 영혼에 젖어 들게 됩니다. 하나님이 성경말씀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분들만이 참으로 선하고 의로운 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선생들은 그들의 선하고 의로운 언행은 따르지 않고 대부분 자신들의 생각으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분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그려보고 꾸며보고 해석된 하나님과 그 종들을 아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그분들을 만나보고 아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남의 소개로 하나님과 예수님을 만나 아는 것보다 자신이 친히 성령을 통해 그 모든 분들을 만나 알도록 힘쓰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 하심 같이,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적으로 많이 방황하고 있는 까닭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었기 때문에 저들도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신앙생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지만, 지금 이 시대의 믿음은 세상을 이긴 믿음이 아니라 세상에 지배당하는 믿음이기 때문에 심히 괴롭고 피곤하고 위축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1서 5:4) 하셨고 또 세상을 이긴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가르치는 믿음, 즉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자식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려면 오직 예수님의 말씀(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하셨는데, 여기에서 '들음'이란, 단순히 귀로 듣는 청각적인 소리의 '들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하였을 때의 '들음'입니다.
아버지가 어느 한 아들에게 “얘야! 음료수 한 병 사오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순종치 않게 되자 아버지는 다른 아들에게 똑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해 음료수를 사 갖고 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첫 번째 부탁한 아들에게는 “넌 왜 내말 안 들었느냐?"며 엄한 매질을 하였으나, 두 번째 부탁한 아들에게는 “넌 내 말을 잘 들었으니 이걸 가져!”하시면서 심부름 값을 주었습니다. 두 아들이 똑 같이 아버지의 말씀을 청각적으로 들었으나 말씀을 순종한 아들에겐 “말 잘 듣는 자식"으로 판정하며, 불순종한 아들에겐 “말 안 듣는 자식"으로 판정하였습니다.
이 같이 ‘들음'이란 말은 결코 교회에 나와서 설교자들의 말씀을 청각적으로 듣고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보고 읽고 들은 것을 곧바로 실행하는 것만이 참된 ‘들음'이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성경 말씀을 녹음기처럼 줄줄이 외울 줄은 알되 그 말씀대로 사는 믿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 하라, 철야기도 하라, 금식기도 하라는 목사님들의 말잘 듣는 교인들은 많아도, 예수님의 본 말씀을 지키고 실행하는, 즉 예수 믿는 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계명과 규례를 좇는 사람의 종들은 많되 예수님의 본 말씀을 믿고 따르는(순종하는) 예수의 종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긴 예수님의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본 말씀을 가감 없이 실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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