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 사하구에서 만14세의 여중생들이 중2 여학생을 집단으로 폭행해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단순한 폭행이 아니고 피해 여학생이 뇌출혈이나 내부 장기 손상으로 자칫 생명이 위독할 수도 있을 정도로 철근과 목재 등으로 폭력을 행사해 소년법을 폐지하라는 청와대 청원에 수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에서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낍니다.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직 15세도 안된 어린 학생들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것이 어떻게 저런 폭력을 저지르고 저 어린 피해자는 무자비한 폭력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하는 것과 아직 어리기때문에 선처를 해야 한다는 두 입장이 감정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어리다고 선처를 해주기때문에 오히려 처벌이 약한 것을 이용하여 죄의식없이 더욱 무차별적 폭력을 저지르기도 한다고 하니 이런 경우 아포리아에 봉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난관에서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선악의 논리나 맹목적인 용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A라는 사람이 어떤 부당한 행위를 했을 때 과연 다른 환경이었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했었을까? 하는 환경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이것은 보편자의 입장이고 유물론적인 판단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에 있다고하여 다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개별자의 입장에서 주체적 자유의지를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A가 자신의 일이나 가정 등 환경이 힘들고 타인들에게 상처받아서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공격적이고 이기적인 자아로 변했다면 물론 A의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그의 입장에서 판단하면 그를 이해하고 관계가 더욱 발전적으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그보다 심각한 상황, 타자의 인간성, 즉 타자의 주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A가 타인들의 주체성을 해하는 일까지도 무조건 용인할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심지어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행위를 모두 '그래 그런 처지에 있다보면 누구나 그런 짓을 저지를 수도 있지'라고 모든 것을 용인한다면 안그래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이 사회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에서 가해 여학생들은 만14세로 아직 외부에 대해 자신의 주체성이 온전히 형성되지 않고 여전히 그 자아를 만들어가고 있는 나이입니다. 아마도 청소년 보호법이나 소년법이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그런데 성관계에 있어 만 13세 이상에서 자발적이면 성인이 그 어린이와 성관계를 맺어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대단히 모순적인 면이 있습니다). 이들은 중2 후배를 자칫 사망할 수도 있을 정도로 철근과 몽둥이로 머리를 온몸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장면이 CCTV에 찍혀서 전국에 방송됐습니다. 학교 폭력은 법적인 처벌때문에 억제가 되는 성인들의 폭력보다 억제력이 약하고 어리기때문에 타인에 대한 폭력을 쉽게 못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타자에 대한 배려심이 약해 더욱 쉽게 폭력을 저지르고 그 형태가 심한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 성인 범죄와 달리 아이들의 위계적 서열때문에 폭력이 쉽사리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피해학생이 극단으로 몰리는 상황이 실제로 자주 생깁니다. 최근에도 8월25일엔 대전에서, 8월27엔 전주 S중학교 여중생이 학폭으로 자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주의 여중생이 자살하고 난 후 장례식장에서는 가해학생들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나'며 웃고 떠들고 갔고 당연히 학교는 방관하고 사실을 은폐했다고 자살한 여학생 친구들이 밝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애들이 이렇게 됐을까요? 이들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중의 큰 한가지 원인은 현대 자본주의의 물신절대주의 경향때문일 것입니다. 타자를 인간성을 지닌 존재로 여기지 않고 그저 교환적 가치로만 판단하는 현대의 저열한 자본만능주의에서 인간성의 파멸은 가속화되어 왔습니다. 직접적으로 교환적 가치가 실행되는 물건구입이나 보험가입같은 경우 외에 어떤 모임에 나간다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심지어 밴드에 가입할때마저도 내가 그 모임에 가서 이익이 있을까? 그냥 시간낭비 돈낭비만 될까? 그 친구를 만나면 돈만 쓰고 전혀 얻는 것이 없다면 굳이 그 친구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이 밴드에 가입하면 내 직업상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렇게 현대 사회에서 거의 모든 행위에 교환적 가치판단을 합니다. 결혼이든 사회생활이든 말이죠. 물론 인간에 대한 이러한 교환적 사회관이 인간성을 소외시키고 절벽으로 몰아왔습니다. 조금만 더 밀리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상황인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회가 아니고 우리 사회가 인간성이 충분히 존중받는 사회라면, 그러한 사회에서 교육을 받아왔더라도 저 여학생들이 저러한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오직 환경적 측면으로만 원인을 돌려버리는 것은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재에 실제로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피해자의 억울함과 재발의 위험성 때문입니다. 이러함때문에 아무리 환경적 측면이 고려되더라도 타자의 주체성을 파괴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해 학생의 주체성 존중과 마찬가지로 피해로 인한 피해 학생의 후유증을 조금이라도 적게 하기 위해 피해 학생의 주체성을 확보를 더욱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도 인간성을 돈벌이를 위한 교환적 수단으로 여기는한 이러한 비인간적인 행태는 더욱 늘어날 것임은 자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났고 자연을 바탕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간성은 그 자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뻐하고 분노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지닌 자연적 존재입니다. 공기로 숨을 쉬어야하고 물을 마셔야하고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자연의 일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자연적 본성인 인간성에 반하는 이율배반적인 교환가치의 시대, 기술 지배의 시대가 우리의 인간성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타인을 나와 같은 인간성을 지닌 인격체로 인식하기 보다는 이익을 도모하는 사물적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첫 발걸음일 것입니다.
가해 여학생들은 피해 학생이 조건 만남으로 돈을 벌어 자신들의 용돈을 벌어주는 도구나 자신들의 사악한 폭력성을 충족시켜줄 물건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피해 여학생이 어떠한 정신적 상처나 신체적 외상을 입건 말건 전혀 죄의식없이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고 자신들 또한 인간성을 지닌 존재가 아닌 사물로 취급받아왔을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에서 타인의 얼굴을 보고 타자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폭력을 제거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온전히 철저하게 타자의 입장에서 고찰하는 것이 힘들다면 최소한 나의 입장과 타인의 입장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인식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교육할 때뿐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