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큰 틀은 대개 같습니다. 여당은 자신들이 잘했으니 정권을 연장해달라(또는 반성하니 기회를 달라)고 주문하고, 야당은 정권의 실정을 고발하고 정권을 교체해달라고 주문합니다. 그러면 유권자는 정권을 연장할지 교체할지 결정하고, 교체한다면 누구로 교체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이게 지극히 간단한 그리고 타당한 선거의 기본 알고리즘입니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매우 이상합니다. 여당이 없어요. 표면적으로는 집권당(에서 이름만 바꾼) 자유당이 여당인데, 스스로 정권연장을 말하지 않고, 반성하니 기회를 달라는 말도 안 합니다. 그리고 집권당에서 막판에 갈라진, 그래서 사실상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는 바른당도 여당이라 해야 되는데, 이들 또한 정권연장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야당은 여당을 심판해달라고 말해야 되는데, 민주당도 국민의당도 정의당도 그런 말을 대놓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모두가 문재인만 깝니다. 1등이라서 모두의 표적이 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최소한 정권연장이든 정권교체든 뭔가 선거의 알고리즘 하에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마치 문재인이 여당이고 나머지가 야당인 것처럼 모두가 문재인만 검증하고 문재인만 심판하려 듭니다.
혹자는 박근혜가 탄핵 및 구속기소로 심판을 받았으니 정권은 심판받은 것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당연히 가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박근혜가 심판받은 것은 개인의 부정부패와 비리에 국한됩니다. 아직 박근혜와 새누리 정권이 경제를 말아먹고 민생을 파탄지경에 이르고 평화를 개박살낸 것은 심판받지 않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적어도 야당은 그것을 이야기해야 마땅합니다.
실업률은 IMF 시대에 맞먹습니다. 개인 부채는 역대 최다 규모, 출산율은 역대 최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박근혜 정권의 고의 또는 무능으로 인해 다수의 국민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고,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사라져 결혼 출산도 포기하는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쉬운 해고를 가능케 하고 파견을 확대하고 비정규직을 연장하는 짓을 밀어붙인 게 여당 아니었습니까?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는 위안부 합의와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여 역사를 우롱한 것이 여당 아니었습니까? 개성공단을 폐쇄해 평화를 파탄내고 수많은 중소기업을 도산시킨 게 여당 아니었습니까?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교통사고"라는 식의 망언이나 지껄이며 진실규명을 방해한 게 여당 아니었습니까? 이 모든 게 박근혜와 최순실만의 작품입니까? 국회에서 여당이 함께 한 짓입니다.
지금 자유당과 바른당의 의원들이 그 장본인입니다. 심지어 바른당의 유승민과 김무성은 여당의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한 양반들이지요. 새누리당이 노동개혁을 밀어붙일 때 유승민은 반대했었나요? 김무성과 바른당 의원들도 모두 반대했는데 박근혜와 친박들이 밀어붙인 건가요? 그렇다고 말 못하겠지요. 박근혜 정권의 이러한 총체적인 난국에 자유당과 바른당 모두 공동책임을 가지고 있고, 심판당해야 할 대상입니다.
유승민은 제1공약으로 보육을 내세웠습니다. 출산율을 높이려고 보육 공약을 내세우기 이전에, 출산율을 사상 최악으로 만든 박근혜 정권의 일부로서 본인들의 책임은 없는 겁니까? 2012년 대선토론회에서 야당 후보가 이명박의 공약 미이행을 지적하자 박근혜가 "그래서 제가 대통령하려는 것 아닙니까"라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는데, 지금 유승민도 같은 심정입니까? 박근혜 정권이 망친 보육과 출산의 현실을책임지는 게 아니라 "그래서 제가 대통령하려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싶나요?
2007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은 참여정부가 경제를 죽였다고 공격해대며 정권심판을 외쳤습니다. 경제가 죽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경제지표가 "경제가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대기업만 살고 나머지는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객관적인 경제지표를 이야기하면 박근혜 정권이 대체 얼마나 나라를 망가트리고 민생을 파괴했는지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그런데 야당이 이런 걸 안 해요. 문재인은 1:4로 공격당하느라 질문에 답변하느라 시간 다 갑니다. 그러면 국민의당은 뭐합니까? 국민의당은 야당 아니에요? 국민의당은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싶지 않아요? 왜 여당을 향해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맨날 "문모닝"만 해대고 있을까요? 하다못해 지난 총선처럼 1당도 2당도 심판하자면서 여당도 함께 공격해도 되는데 왜 그토록 여당에게는 관대하고 오로지 문재인만 "가짜 뉴스"까지 동원해 씹어댈까요?
뭐, 국민의당은 애당초 그런 집단이니까 그러려니 합니다. 겉으로는 야당이지만 여당과 다를바 없는 DNA를 가지고 있으니 그러려니 합니다. 결국 문제는 민주당입니다. 왜 자꾸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기만 합니까? 2~5등은 1등만 까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다고 끌려다니면 1등이 꼬꾸라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촛불의 명령은 단지 박근혜 한 명 처벌하고 끌어내리라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해서 "헬조선"에서 탈출하고 이제 희망 품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처절한 외침입니다. 적폐를 청산하려면 먼저 "누가" "왜" 적폐인지를 알려야 합니다. 지금 문재인은 그걸 안 하고 있어요. 남이 깔아둔 판 위에서 휘둘리니 이제 색깔론까지 나오는 지경입니다.
명심하세요. 문재인의 상대 중 거의 대부분은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집단이 아닙니다. 당연히 문재인 후보는 공정하고 정직해야 됩니다. 하지만 반칙이 난무하는 판에서 홀로 정직해봤자 결과가 어떠한지 2012년에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요? 반칙이 난무하는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판을 바꿔야 됩니다. 적폐 청산이라는 말이 너무 살벌하면 정권 심판, 여당 심판, 그런 거 좋잖아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만든 헬조선의 현실을 줄줄이 이야기하고 뜯어고칠 비전을 제시해주세요. 최소한 이 선거판에서 홍준표 유승민만큼은 부끄럽게 만들어야 문재인에게 승산이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