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한 목자다.(요10;11~16).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여기서 양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양들을 물어가고 해치는 것은
사탄의 행동이다. 그리고 여기서 양들을 죽이고 위해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법을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자기 양들을 위해서 죽는 착한 목자는 그 사탄의 무기인 법을 완성하여 그 법의 위력을 없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비정한 정의를 이루어 내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모든 법을 완성하는데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하여 다 이루신 것입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
주님께서 우리를 안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주님께서 아시는 것처럼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안다는 것은, 성경을 보거나, 아니면 설교를 듣거나, 성전으로 전해지는 것들을 듣거나, 아니면 깊이 묵상하여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서 조금은 안다고 말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모든 것들로 우리 주님을 조금은 안다고 하지만 실제는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내 안에 이루어 저서 나의 모든 존재가 다 없어지고 나면 그때에 비로소 주님께서 나를 아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조금은 알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묵상 할 때 그 말씀에 십자가의 의미를 부여하면 그 말씀은 내 안에서 죽고 나 또한 그 말씀 안에서 죽어서 모두가 없어지면 그 때에 그 둘은 밝고 맑고 투명한 빛에 들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가면 우리도 주님께서 나를 아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 와야 한다.
지금 주님의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은 누구인가?
오늘날 교회는 자기들 교회에 들어 있는 사람만이 구원이 있다고 아집과 독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나 우리 주님의 뜻은 다르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떠나서 구원이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다른 종교나 특히 동양의 심성철학에서 진실한 존재의 근본인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그 진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신 그 진리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모든 법들을 모두 죽이는 우리주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에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어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데려와서 한 우리 안에 한 목자 아래에 와서 한 무리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과 그 십자가의 의미는 모든 생명체를 구원하는 구원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자랑하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이는 나와 세상은 주님의 십자가 밑에서 모두 죽고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내 안에 게신 그리스도만이 살아 게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랑하고 싶은 분이 게시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 카페 연옥영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