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조직론(14).. 교육에 대해서.
교육은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사실은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지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국어를 통해서는 무엇을 배우는 것인가? 그리고 수학을 통해서는 사실은 무엇을 배우는 것인가? 그리고 사회와 역사와 또 자연과 같은 과학분야를 배우면서는 사실은 무엇을 배우는 것인가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의외는 바로 '국어'라는 과목이다. '국어'를 통해서는 자국어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 '국어'라는 과목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언어를 통한' '사고의 틀'이다. 따라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와, 또 독어나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그 사용언어에 따라서 그 사고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럼 어떤 언어가 사고에 더 현명한 방법인가? 가장 먼저 검토한 것은 '과연 사고는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는 것인가?'를 검토해야만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검토한 것은 컴퓨터에서의 'op와 oper1, oper2'체제이다. 그것을 문법으로 표시하면, V-S-O의 체제라 표현할 수 있다. 프로세서 입장에서는 이것이 가장 확실한 표현방법이기는 하지만, 사고의 방법에서는 컴퓨터의 발전과정에서 보이는 stack머신 체제이다. 이것을 문법체제로 표시하면, S-O-V체제이다. 현대의 수학의 표현방식은 S-V-O로 영어권에 가깝다. 그럼 사고는 op체제 문법일까? 즉 V-S-O체제일까? 사람은 생각을 환전한 모양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즉, 사고의 방전과정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와 3을 더한 것이 5이다'란 말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식이다. 이것은 문법으로 표시하면 '(2,3,+),5,='로 표현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처리과정을 가진 것은 작은 계산기인 칼큘레이터에서 이런 처리를 한다. 단, 입력은 영어문법체계인 '2+3=5'로 처리된다. 연산이나 관계를 나타내는 '+'와 '='은 잠깐 먼저 입력되기는 하지만 실제 처리는 나중에 '2,3,+'로 처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잠시보류하는 stack으로 처리되어 거기에 '(),5,='로 추가되어 처리되어 '(2,3,+),5,='로 사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하게는 '2,3,+,),5,='로 처리된다. 여기서 ')'은 stack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가장 사고와 가장 가까운 언어는 바로 우리와 같은 우리말이 아닌가? 최소한 우리는 이렇게 사고한다. 혹, 미국인이나 독일인은 우리와 사고하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따라서 '우리가 우리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말의 사고방식을 우리의 사고의 기본틀로 받아들였다'란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어'는 단순히 '우리말'이라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수학은 그것보다는 더 쉽다. '사고의 관계'(V)를 배우는 것이다. 그래도 먼저 '사고의 틀'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 사고는 언어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사고의 틀'에 '사고의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사고의 관계'의 영역을 사회에서는 사회와 자연에서는 자연과, 그리고 역사에서는 역사의 영역을 확장할 뿐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과목은 바로 '국어'라고 하는 '사고의 틀'이다. 수학에서는 답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을 답을 찾는 방법을 추론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잘못된 설명에 대해서는 답을 찾기 이전에 먼저 그 답이 틀린 것이라는 것을 먼저 안다. 아직 계산을 해보기 전에도 이미 그것을 아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나는 '평형감각'이라고 표현한다. '평형감각'은 운동 이외에도 '논리의 평형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뺀 오직 답을 찾는 것에만 몰두하는 행위는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논리의 평형감각'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가진다. 따라서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과정과 방법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머지 과정은 '국민공통의 상식'수준이다. 그 이상은 아니다. 학과의 전공과목 점수? 그것은 '그 학과에서의 공통의 상식', 학력? '그 학력수준에서의 공통의 상식'이 정답이다.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장에서 모자라면 현장에서 더 추가하면 되는 것이다. 틀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의 가장 중요한 틀은 이미 확실하게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중요함에도 성적에는 별로 큰 도움은 안된다. 교육이란 훌륭한 차를 만드는 일이다. 성적은 주행거리에 불과하다. 주행거리는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좋은 차라면 언제든 필요한 주행거리를 낼 속도는 언제나 낼 수 있는 것이다. 억지로 성적만 내어서는 차는 아무런 준비도 없고, 차는 아무런 성능도 발휘할 수 없고, 그저 억지로 일정한 거리에 먼저 도달한 우마없는 수레에 불과하다. 더이상 달릴 수 없다. 더이상 속도낼 수 없다. 더이상 그에게는 남보다 먼저 이미 거기까지는 왔지만 이제는 아무런 미래도 없는 것이다. 참 암담한 일이다. 학교? 좋은 학교? 나쁜 학교?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학교단계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6년 동안의 초등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고, 3년의 중학교와 또 고등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며, 또 대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는 것인가? 각 단계마다 배우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어린단계에서의 교육과정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가장 늦게 나오는 자신의 대학교나 대학원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자신의 취업이나 취직을 위한 직업학교일 뿐이다. 직업학교는 고등학교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독일의 교육체계가 가장 합리적이다. 좀 욕심을 부리면 프랑스 정도? 독일은 고등학교까지의 기본교육과, 또 대학이상의 학문을 위한 과정이 있다. 프랑스? 프랑스는 고급 학문과정을 위한 개인 교육과정이 포함된다. 영국이나 미국은 일부의 엘리트교육이 추가된 대학과정이 있고 독일이나 프랑스보다 별로 가치가 없는 교육을 하고, 그러나 우리의 대학과정은 학문의 가치가 전혀 없다. 프랑스와 독일같은 개념도 없고 철학도 없고 영미와 같은 엘리트교육도 없는데, 일본의 학벌중심의 엘리트의식만 있다. 다들 대학이란 허울만 거창한 직업학교일 뿐이다. 6년의 초등학교? 실제로는 자신의 인성을 스스로 결정한다. 인성은 교육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지 부모와 그리고 가족, 형제, 학교 선생, 학교 학우, 친구, 그리고 다양한 이웃을 참조한다. 자신의 인성의 90%는 여기서 결정된다. 중학교? 서서히 자신의 관심은 자신의 부모나 형제에서 벗어나 학교 선생을 판단하고 조금씩 자신의 학우를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게 실제로 중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고등학교? 그 과정이 더 확대된다. 이제는 선생을 넘어 자신의 학우를 좀더 분석적으로 분석하게 된다. 그래서 이때의 친구가 가장 중요하다. 대학교? 좀더 현실적으로 된다. 그리고 약간의 실험도 이뤄진다. 그러나 교육으로 더 극한의 실험과 관찰은 지옥같은 군대생활을 통해서이다. 군대는 인간군상을 경험하고 분석할 최고의 학교이다. 근세전까지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일한 교육기간은 줄루족 또는 마사이족과 같이 군대가 유일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게 원래의 학교의 의미이기도 했고. 여학생은 군대생활을 면제해도 좋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훨씬 똑똑하다. 따라서 군대라는 극한의 교육기간이 없어도 그 GAP이 별로 없다. 아니 정확하게는 군대를 간 남학생보다는 그래도 군대도 안간 여학생이 생각도 많고 더 똑똑하다. 여자는 타고난 것이 있지만은 남자는 대부분 여자보다는 어리석어서 군대라는 극한의 교육이 이뤄져야 좀 사람이 된다. 좀 욕심을 부리면 아주 지랄같은 군대이거나 훈련이 쎈 해병대도 좋고, 군대나 해병대교육을 통해서는 인간관계와 또 자신의 한계를 배운다. 그게 남는 교육이다. 그게 교육의 진짜 목적이다. 내가 '자신만의 조직론'을 대학에서는 충돌하고 번민만 하다가 군대에 들어와서 풀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군대가 극한의 인간경험을 해주기 때문이다. 군대와 사회에서의 조직은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아니 극단적으로 아주 다르다. 그러나 그 극단적으로 다른 조직상으로도 조직이라는 공통의 특징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요소가 바로 '숫자'라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나만의 숫자조직론'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군대라는 아주 극단적인 경험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군대의 경험없이 정치나 사회적 공적활동, 자기사업이나 기업의 경영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여자보다는 좀 멍청한 남자에게는 군대란 최고의 보충학교가 있는 셈이다. 그 예로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이 있다. 그가 군대에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 둘이 군대에 갔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했다. 이건희가 이재용에게 한 것은, 가장 미워하는 쫄병에게 '니가 어떠한 집안 출신인지는 모르지만 니 대에서 다 말아 먹으라'고 할 때나 할 일을 이재용에게 했다. 그가 만약 군대에 안갔다면은 그것을 가장 후회할 일이다. 지금의 위기는 그 필연이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이건희였다면 이재용을 키우기 위해서 그를 억지로 해병대에 입대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않은 일은 결정적으로 그를 망하게 하는 일이었다. 아주 치명적으로... 스펙? 일본의 학벌 중심에 출세주의의 억지로 짊어진 무거운 짐, 그러나 별로 효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