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사단은 모두 하나님께 지음받은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명령, 가르침)에 대해 피조물(자식으)로서는 가타부타 논할 자격은 없고 오직 그의 모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하나, 사단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피조물(자식)이 전폭적으로 믿고 순종할 수 없고, 다만 저마다의 특성과 취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구별해 지킬 자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말씀을 피조물(자식)들이 절대적으로 지키고 순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피조물의 자존감을 무시하는 독재행위라고 합니다. 이런 견해 차이로 인해 예수님과 사단은 세상 끝날까지 적대 관계가 되어 투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피조물(육신)의 마음에 드는 것만 지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단의 주장과,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야 한다고 하는 예수님의 주장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단의 주장에 박수갈채하며 추종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제자라고 자처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거의 다 사단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얼마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믿고 지켜 왔으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한두 가지 무시하고 사는 것은, 마치 내 육신의 수많은 지체 중 한두 가지 지체는 병들어 불구가 되어도 살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였습니다.
사람이 만든 기계도 한두 가지 부품이 고장나면 그 영향력이 전체에 미쳐 기계가 가동될 수 없듯, 인간 육신도 한두 가지 지체가 병들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육신 전체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뜻은, 사단의 주의주장을 받아들여 괴물이 된 사람들을 원래의 형상과 기능으로 치료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처음 만든 세상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으나, 사단의 추악한 사상으로 사람들이 흉악한 괴물들로 변종되고 또 그들의 거처지가 될 지옥이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예수님만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로 배워 알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지켜야 할 말씀으로 취급한 것에 대한 속죄의 피로 오셨으며, 사람들이 그 피로 깨끗함을 받은 후부터는 자신(성령)과 동행하여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뜻이고,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지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육신에게 유익되거나 평안이 보장될 때에만 지키려고 하나, 예수님을 제대로 믿은 이 후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육신에게 손해가 되거나 위협이 가해질 때에라도 지키려 합니다.
사람의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만 하면 원래 영생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마디 말씀 중에 단 한마디라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한마디 불순종(거역)이 육신의 생명 회로에 장애를 불러 일으켜 온 몸을 마비시켜 멈추게 합니다. 이것이 육신이 마모되거나 고장나거나 병들어 죽는 일입니다. 자동차의 수만개의 부품들 중 어느 한 개라도 제작자의 뜻(명령)을 순응하길 거부하게 되면, 그것으로 인해 자동차 전체가 멈춰 서듯, 사람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거역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자기 육신의 부위들 중에 어느 하나가 작동치 않아 온 몸을 죽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신 모든 말씀들 중에 자기 마음에 드는 것들만 선택해 순종하여야 한다고 하는 사단의 주장은, 사람이 자기 육신의 수많은 지체와 부위들에게 자기가 지시하고 시키는 일들 중에 마음에 들면 따라 행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순종해 따르지 않아도 된다라는 법령을 선포하는 짓과 같습니다. 그래서 일어서야 할 때가 다가와 다리로 하여금 일어서도록 명령하였는데도 다리는 피곤을 빙자하여 그 명령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그냥 주저앉아 버립니다. 뛰어야 할 때가 닥쳐왔는데도 심장이 거부하여 가속을 내지 않게 되고, 또 간과 공팥도 제 역할을 포기하여 온 몸의 신진대사를 마비시킵니다.
이렇게 어느 한 지체(부위)가 고장나면 사람들은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즉 자기 육신을 만들 때 완벽하게 만들 것이지 왜 이런 불량품을 만들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한합니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순종해도 되고, 자기 육신의 부위들에게는 자기의 모든 지시 사항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의를 달아 거역하거나 불순종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모순된 독재행위가 또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은 하나님과 부모님과 선생님과 국가의 법령을 선택적으로 지키는 불구자(범법자)가 될 수 있어도, 자기 육신의 지체와 부위들은 조금이라도 자기의 말을 거역하는 불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니, 이게 바로 김일성 일가들 같은 독재자(불구자)들의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가르쳐 주신 모든 말씀들 중에 사람들이 어느 한 가지라도 자신의 자존감을 훼손시키는 말이라 생각되어 거부하게 되면, 그는 스스로 자기 육신의 백체들에게 얼마든지 자기의 뜻을 거부하는 불구가 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짓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계명 중에 어느 한 가지라도 자기 마음의 식성(食性)에 맞지 않는다 하여 끝내 거부하게 되면, 그에게도 원하지 않는 편식주의 현상(질병)이 찾아들게 되어 목구멍으로 간신히 삼킬 수 있는 미음(米飮) 같은 음식들만 먹게 되고 모든 진수성찬을 거부하게 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태복음 5:17~19) 하심 같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은 어느 것 하나 필요치 않는 것이 없습니다. 사회 생활에 가장 불필요하게 보이고 또 지키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계명일수록 그것을 지키게 되면,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자기가 하게 되고 또 남들이 이길 수 없는 적을 다윗처럼 이기게 됩니다.
반대로 남들로부터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자들만큼 철부지(유약)하고 병약한 자들은 또 없습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브리서 5:13~14) 하심 같이, 갓난 아이들이나 병약한 자들만이 미음(米飮) 같이 부드러운 음식(말)을 삼킬 수 있을 뿐, 장성하고 강건한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그 무슨 말씀이든 다 삼키고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라면 죽음(사약)까지도 집어 삼키고 소화시킨 능력으로 죽음까지도 정복해 만물을 자기 발 앞에 굴종시키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해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자를 환대하였습니다.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내가 어깨에 메기도 하고 면류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며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고하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욥기 31:35~37) 하심 같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질책(말씀)을 즐거이 듣는 자들만큼 고강한 자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철부지하고 병약한 죄인들에게는 미음(米飮) 같은 듣기 좋은 아첨의 말들을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정복해 이길 수 있는 고강한 용사들, 곧 예수님 같고, 다윗 같고, 욥 같은 분들에게는 사약(賜藥) 같고 또 오장 육부를 도려내는 것과 같은 쓴 잔의 말씀들을 서슴없이 받아먹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단단한 음식(사약, 쓴 잔)들 속에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믿음(능력)의 영양소가 듬뿍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듣기(삼키기) 좋은 미음(米飮) 같은 아첨의 말들 속에는 다만 병실 같은 데서나 간신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만큼 미음(米飮)을 좋아하는 병약한 자들이 없습니다. 목사님들부터가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말을 금하게 하여 편식하는 자들이 되어 있고, 또 자기 교회의 비리와 흉허물을 비판하는 일을 반동(이단)으로 취급해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신도들의 세속적인 옷 차림에 대해서는 질책하지 않고 그들이 듣기 좋은 미음(米飮)들만 계속 먹이어 세상을 이길 수 없는 병약한 자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누가복음 12:10) 하심 같이, 예수님은 성령만 비판치 못하게 하였을 뿐, 자신까지도 비판할 수 있도록 개방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목사들은 주의 종을 거역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짓이라고 마구 말하여 자신들을 모세나 성령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도 비판받을 수 있는 피조물로 겸비하였으나, 이 땅의 목사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들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주의 종 아니라 세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라도 악하고 거짓된 말로 비판하게 되면 하나님께 죄벌을 당하지만,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면서 제 욕심(뜻)대로 교회를(교인들을) 이끌고 가르치는 일들에 대해 비판받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이 때문에 세상(죄악)을 이겨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다 병약한 자들이 되어 사경(死境)을 해메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불법불의와 부정부패와 이적매국과 음란방탕과 우상숭배로 소돔·고모라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지키는 편식주의자들의 폐해가 이토록 가정과 교회와 기업과 사회와 나라와 민족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대오각성하여 성경말씀으로 자기를 질책할 수 있는 자들을 왕족처럼 우대하고 사랑하십시오. 그리하면 이 땅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게 되고, 또 다윗 같은 믿음의 용사들이 일어나 마침내 나라와 민족을 깨끗하게 풍요롭게 부강하게 만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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