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지지세력들이 나누어져 대선에 임하는 대한민국 선거가 다양성을 가지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네거티브가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누가 시작하면 당하고 있을수 없는 당연한 일처럼 만연해져 있는 지금
병적 민주주의가 횡횡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길 없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민주적 자세 그것이 통합의 열쇠라는 것을 누구나 알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와 공동체에서도 지나친 비판과 편파적이고 일방적 행동은 주변사람의 눈쌀을 지푸리게하고 극명한 감정으로 선을 긋는 것은 분열의 상징이 되고 있다.
본인은 맹자의 성선설이 예전에는 옳다 생각했으나 많은 시간이 흘러 순자의 성악설에 확실한 의견을 두었다. 맹자의 이름이 더 비중이 컸던 교과서 시절도 있지만 편협해 보이는 순자의 대응책이 고작 법치인가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상을 잘 판단하고 정리한 것은 순자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태어나 법없이 살겠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모아놓으면 그중에 욕심이 상대적으로 강한자가 이익을 분배하는 시점에서 상대악을 행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반대로 교도소의 흉악범들 중에도 대화하는 것을 보면 너무도 순수한 인간이 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불완전해서 우리는 사회적 공동체의 합의가 이를 보완하고 비교적 완성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호 양심을 넘어서 제지할 수 없고 그것을 일부 다스려야만 하는 사안에 우리는 법을 만들고 그것을 준수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나라를 그런 통제적 이념으로 만들어 권력을 부여한 것이 법치국가라는 것을 잘 안다.
법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면 인간은 악하지 않을 것이고 법 역시 이용당하는 도구로 전락하면 악법으로 인용되어 법의 정의성을 잃게된다. 가령 부자가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변호인을 고용해서 해당하는 죄값을 덜 받으려는 행동은 과연 공정함을 떠나 정의로운가?
결국 우리는 뉘우치는 것도 올바른 발전의 문제도 개인의 선한 양심과 공동체의 선한 가치의 확립이 얼마나 되어 있느냐라는 교육적 문제에 맞닥드리게 된다.
교육실패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과욕과 분별없는 성공주의에서 기인했으며 그러한 교육실패로 수많은 비인격에 학습된 무분별한 양심이 사회에 병폐가된지 오래 우리는 물질만능과 쾌락지향을 위한 제어할 수 없는 시대에 자유라는 명분하에 한번 살고 끝날 일 처럼 책임없이 자신을 방조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가치관이 상대적 정의에 따라 의가 되기도 하며 악이 되기도 하는 시대에 자신을 포장하거나 자신의 공동체를 포장해서 과장 또는 허위광고를 해야 먹고사는 사기적 동물이 되고 말았다.
나와 함께하면 착한 것이고 저쪽으로 가면 악한 것이다라는 기준이 자신과 공동체의 가치를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다. 그러나 학문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적어도 그것을 평가하고 오랜시간 검증해볼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을 배움에도 그것을 거부하는 행동을 하는데 이것을 정의거부현상이라고 해야 한다.
니꺼 내꺼 하는 정의가 정의의 참다운 기준을 상실해가는 과정에 있어 과연 정의가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망각해버리는 현실에 안착되었다.
결국 나와 다른 생각은 없어져야 하고 내생각 내 공동체의 생각이 전체를 위한 것인것 처럼 되어 버렸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둔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생각의 재고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오는 날 매출이 좋은 것은 우산장수, 덥고 해가 짱짱한 날 매출이 좋은 것은 부채장수 그런데 양면적 반대매출성향을 보이는 두 아들이 다 잘될 수 없는 탓에 날마다 근심해야 하는 부모는 날씨를 다스릴 수 없으니 하늘이 원망스럽다.
우리는 어쩌면 우산도 부채도 아닌 날씨에 주목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절대 변경 불가한 자연현상을 주도할 수 없지만, 어려울 때 형제가 나누기를 희망하는 방법으로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그것이다.
정치는 바로 나눔의 미학을 슬기롭게 유도하는 정무적 행위이다. 분배의 영역을 너무 확대해석한 것 아니냐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주제에 대한 강조적 해당범위인 것을 미리 밝혀둔다.
두 형제가 서로 도우려면 형제가 형제로써 우애가 있어야 하고 부모에 대한 효심을 바탕으로 화목하는 공동체의 이념을 확립해야 한다.
우리정치는 이념으로 갈라져 국민의 표심이 바뀌기만을 바라므로 그 이익을 편취하는 것을 기쁘게 여겨 통합에 반대되어 장사한번 잘 해보려는 욕심많은 아들을 내세웠다. 그들을 지지하는 지지자들은 유사한 욕심과 공동체적 이익을 위해 그것을 대변하고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과 관련없는 상대의 욕심이 죄악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통합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어렵게 되어져 왔다. 독재가 자유와 대항하던 그 때를 생각해봐라 민주적 가치에서 반드시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면 독재가 반민주적 요소이므로 정당성과 목적성을 공유했기에 오늘날 이만큼의 발전이 있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재가 사라지고 그 잔존하는 불합리와 사회적 병폐들이 남아서 갈등의 요소로 자리잡았다.
독재라는 대항세력이 없어지므로 상대적으로 수구적 가치를 대변하는 보수가 적대적 상대로 되게 되었고 실제 독재의 개념이 아닌 지역색과 세습적 이념 학습으로 이념을 탈바꿈하였다. 편가르기를 잘하는 동물들은 모두 정치권에 있으니 그들을 동물원에 두고 우리가 투표로 먹이를 주어야 하는 국민적 민주주의 시대에 우리는 우리가 선호하는 동물에게만 먹이를 주려고 하는 반 사육적 태도로 다른 동물들을 굶어 죽게 하고 있다.
많은 이념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내제한 민주주의이다. 통합은 다른 이념이지만 서로가 같은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더 나은 가치로 나가도록 하는 길이며 양보할 것에 대한 확실한 자기 댓가를 치르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지나친 비난과 양심을 넘어선 언어폭력은 이를 저해하는 가장 큰 새로운 독재이다. 언로를 막고 자유로운 의사를 저해하는 문제가 아니라 언로를 강제로 통일시키고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이지 못하고 야합하고 음해하는 이른바 가치확장주의를 가르켜 이시대가 비극의 위기에 놓였다 말하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기준해서 문후보가 1위를 달리는 가운데 많은 유권자들이 저마다 지지하는 후보를 투표하고 있다.
그런데, 당선후를 생각해보자 통합은 제대로 이루어질까?
자신과 공동체를 정의로 생각하고 네거티브로 받은 상처와 갈등을 내제된 상태에서 기쁘게 손을 맞잡고 동력을 실어줄 상대진영은 과연 있을까?
단언컨데 금새 맞잡을 인격이라면 네거티브도 대응하지 않을 성인군자일테니 그럴 경우 우리는 잘못 선택했구나 하는 것이다.
성인군자는 없다. 요순시대에 임금들이 정치를 잘한다해도 개인생활이 바른지 아닌지 알까닭이 없다.
그러나 통치행위를 볼때 통합적 기준을 가지고 성의있게 노력하느냐의 문제는 앞뒤가 같아야 되는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싸울때 싸우고 뭉칠때 뭉치는 것이 뭐 그럴듯 하지만, 사실 뭉치더라도 갈라질때가 발생하므로 비극을 내제하는 드라마적 분노를 내제하는 것이다. 오월동주도 비극이 끝나지 않은 느와르 합주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성인군자도 없는 통치 행위 속에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이 옳아서 다른 사람에게 강한 언어적 폭력과 이념의 상처를 극대화해서 이념적 선명성을 확보하여 투표를 이루려하고 있다. 국민들이 호갱이되는 아찔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
투표가 아름답다 포장되지만 이런 선거와 투표가 과연 이상적인 아름다움일까?
우리 정치가 세계를 놀라게할 만큼 아름답고 선진적 정치를 이루려면 내제된 이기심을 누르고 평화와 통합을 갈망하는 형제애를 보이는 정치를 스스로 이행해야 한다. 싸움에 능하고 비난에 능한 정치가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것은 우산장수와 부채장수의 싸움이 어머니의 근심을 깊게하는 원인과 같은 이치이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가 통합해서 서로의 이윤을 공유하고 어머니와 함께 이웃의 갈등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진하게 있는 상황. 우리는 방관하기는 이제 어렵지 않나 생각해야 할 때이다.
어찌 하루아침에 다 바뀌고 첫술에 배부르겠냐 하겠지만, 시작도 하지 않은 개혁에 핀잔부터 주는 것이라면 이미 개혁적 가치를 잃은 정치의 구태적 발상이라는 것을 경고한다.
정경유착 언정유착 등의 고리가 아직도 돈이라는 것과 함께 비선실세와 같이 엮인 이나라의 추함이 한순간에 끊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강력한 개혁진보가 있다하더라도 사회적 합의 없는 권력실행이 불러올 반대급부의 분노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능이 다다익선과 같이 이익에 대한 이기심이 많이 얻기를 갈구하는 끝없는 욕망과 같으므로 우리는 이를 통제하고 합의하는 민주적 참된 가치에 자신을 바꾸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각 선거 캠프는 공약에 대한 디테일과 예산의 허술함을 사실 모두 가지고 있다. 짧은 선거기간이니 준비가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사회적 합의와 실제 계산치를 모의실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약을 국민을 상대로 실험하기도 버거운 당선전 상황이 의견에 대립일 뿐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게 대두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통합에 대한 것의 의지와 실천방안은 있는가?
미안하지만 각 캠프가 선거과정에서 발포한 네거티브와 언어폭력은 이미 통합의지보다 당선되고보자의 의지가 강해서 포기한 정책이 되었다.
누가 당선되어도 법안하나 제대로 통과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미움의 싹은 서로가 심었다. 특히 문후보의 강력한 댓글부대가 다른 지지자들에게 심은 씨앗은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인정해야 한다.다른후보는 세력이 작을 뿐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큰자가 작은자를 섬기고 본을 보여야 할 것은 의로운 행위를 스스로 보이면서 상대진영을 설득하고 통합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우세했던 보수의 꼴통스러운 행위에 분노했다면 우리는 꼴통이 되어서는 안되는 데 이기려고 다들 꼴통이 되어서 이를 올바르게 말한 반성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자격이 없어서 일까 용기가 없어서 일까.
결국 민주당과 자유한국당과 군소3당이 의견을 정무적으로 교환할텐데 결국 대립하게 될 것이다 . 심은 씨앗이 이기심에 물을 받아 자랐고 그것은 표를 준 국민을 신경쓰지 않고 기싸움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쟁이 심화되거나 국민이 원하지 않은 지연적 발의가 지속되면 우리는 국민투표로 국회의원들과 행정부를 심판해야 하는 4자 견제구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헌법의 수정도 그런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통합적 헌법, 제왕적 권력을 저지하는 헌법 그것은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 국회의원들이 꿈꾸는 헌법수정에는 독소요건들이 있다. 반통합적 그릇챙기기 요인들이 있다. 의석수와 할당분도등이다.
국민이 일하기 바쁘고 뉴스만 봐서 인터넷만 봐서 이런 깊이 있는 판단을 하기엔 언론도 모르게 하는 이면적 합의와 비 민주적 갈등이 있다. 통합이 안되는 저해적 적폐가 바로 이것이다. 주적은 반통합적 정치습관이다.
주적이라는 개념이 유효한 지금은 아니지만 용어상으로 굳이 허용한다면 김정은도 국제적 주적이겠지만, 내부적으로 백범선생께서 가장 우려한 분열은 바로 이 나라의 암덩어리인 것이다.
합리적 독재를 꿈꾸는 보수들의 야욕도 어쩌면 혼자 다해먹는 강한 발전을 야망처럼 바라는 이기적 가치관에 매달린 까닭이다. 독재와 함께 싸우다 보니 싸움의 기술만 늘어난 야당의 스피커는 이제 그들만의 리그 속에 확성기를 양쪽으로 다 들었다.
통합을 반대하는 정책을 쓰면서 까지 당선만 하려는 더러운 야욕이 국민을 위한 약속일까? 왜 다들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더 나은 정치는 이순신이 모함을 받는 속에서 자신의 결의와 능력을 보여준 것에 열광하는 국민이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구태에서 막혔는가?
정신 차려야 한다.
중국은 이미 시진핑의 명령으로 북한을 복속하기 위한 절차를 마쳤다. 물리적 분쟁이 시작되면 동북공정을 근거로 북한이 중국영토임을 유엔에 올릴텐데 이미 점거해버리면 올리고 안올리고가 중요하지 않다. 독도처럼.
러시아는 에너지 공급 채무관계를 이용해 이해 푸틴이 함경2도를 가지려고 계획을 마련했다.
미국이 개입해서 무력을 사용하려 해도 이 거대한 두덩어리가 북의 영토를 노리기에 일본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일본의 생각은 미국을 돕되 두 덩어리가 상처입은 틈을 타서 북한을 일본영토로 명문화하는데 있다.
통합을 이루는데 많은 이념적 차이와 진영충성에 의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남아 있다.
어떻게 극복해서 이 국제적 위기를 탈피하겠는가?
세력의 양보와 합리적 연합동맹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지금 투표하기 전에 각당은 누가 당선되던지 합리적 대안을 도울 준비가 된 것을 국민에게 약속하고 당선되는 그 당은 다른 정당에게 주요사안에 대해 양보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안보에 관해서는 카드적 발상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방어는 우리가 이루는 것이다. 비싸면 사지 않고 싸고 훌륭한 다른 것을 사서 오더라도 우리는 우리를 외세의 의존없이 우리의지 대로 방패를 사야 한다. 각당 선거비용으로도 경쟁력있는 방패 사고도 남는다.
국회의원들 돈으로 사서라도 뭉쳐서 좀 해결을 보기 바란다. 협상적 저자세로 당연히 할 수 있는 것도 미국과 중국 일본의 눈치만 살핀다면 그것은 실리에 대한 외교를 핑계로 이루지 못한 현안에 대한 보류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방패를 마련하고 당위성을 확보한뒤 카드를 새롭게 만들어서 정치해야 하는 것이다.
서희가 강동6주를 되돌려 받아 올때 일을 생각해보라 무엇을 카드로 써서 반환받지 않았다. 상대 책임자가 좀 아둔해서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간교해진 국제적 관계의 상대책임자들은 우리의 분열을 통해 그러한 제 2의 서희가 나올 기회를 막고 있다.
축구를 통해 하나된 때를 생각해보라 . 거기에 이념과 세대가 있었나? 어디 출신 선수라고 해서 잘하니 못하니 하는 잡소리가 있었을찌 몰라도 적어도 공하나에 웃고 울었다. 우리는 하나이며 누구도 통일과 통합을 방해하는 세력은 주적이다.
그것을 위해 각 캠프와 정당들은 서로 선거 전후 만나서 확실히 국민에게 약속하는 전문을 성문화해라
누가 당선되든 양보하고 협의해서 국민들의 마음에 멍들지 않게 할 것이고 당선되지 못한 입장에서 받은 상처 조금은 위로하고 안고가라.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여유도 보일 것을 합의해라.
국민은 또 다시 분열의 장단에 나라 걱정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통합 그것은 시작부터 잘해야하며 네거티브로 얼룩진 분열의 씨앗을 제거하는 데서 부터 자신을 내려놓는 절대 지지세력의 참회로 부터 이어지는 것이다. 독재가 없어 졌다지만, 세력의 균형이 틈이 벌어져 많이 벌어져 있는 지금 통합의 리더쉽을 위한 약속은 지금 해야 하는 것임을 다시한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