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사과한다"는 말을 한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적어도 대통령 당선 후에는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월호, 메르스 등 국민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대해서도 절대 사과하지 않았고, 문건 유출과 문고리 3인방 등 청와대 내부의 국기문란에 대해서도 절대 사과하지 않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과 요구마저 묵살했었죠. 그런 양반이 처음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애당초 사과를 녹화방송으로 내보낸다는 자체가 코미디이고지가 한류스타 아이돌이야?, jtbc의 후속보도로 사과문조차 거짓말인게 몇시간만에 들통나고 말았지만, 아무튼 그 입으로 "사과한다"는 말을 한 자체가 대단한 사건이라는 겁니다. 저는 보나마나 아랫사람 누구의 개인적 일탈이라 꼬리를 자르든지, 증거가 날조됐다고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한다 협박을 하든지, 반박할 가치도 없다면서 해명을 피하고 잠수 탈 줄 알았습니다. 늘 그래왔으니까요.
게다가 사과문의 내용도 쇼킹합니다. 주절주절 변명하고 의혹을 축소하느라 노력했지만, 어쨌든 자기 자신의 위법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건 탄핵사유입니다. 게다가 여소야대 상황, 여당 의원 중에서도 비박이 칼을 갈고 있는 상황, 막말로 자기 탄핵해달라는 메시지나 다름없는 사과문입니다.
그러면 이토록 "쇼킹한" 사과문의 행간을 보아야겠지요. 이례적인 일을 벌일 때에는 반드시 그 목적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사과문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최순실은 죄가 없다" 정도로 풀이됩니다. 사과문대로라면 최순실은 박근혜가 연설문을 보내줘서 자기 의견을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연설문을 보낸 박근혜는 위법이지만, 의견을 말해달라 해서 의견을 말해준 최순실은 위법이 아닙니다.
즉, 사과문을 작성한 사람은 "최순실은 죄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대통령 탄핵을 그 대가로 지불하더라도 최순실은 지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사과문입니다. (그렇다면 사과문은 누가 작성했을까요? 당연히 박근혜가 작성했겠죠. 최순실이 작성했을리는 없지.)
만약 최순실이 진짜 상왕으로 군림하며 자기가 박근혜에게 명령하며 대통령놀음을 했다칩시다. 이 자체만 놓고보면 최순실을 처벌할 규정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박근혜는 처벌받겠지만요. 아무튼 이미 다 까발려진 것, 최순실이 상왕 노릇을 했노라 들통나도 최순실은 한 몫 챙겨 도망가면 그만입니다.
최순실이 처벌받으려면 미르,K와 관련해 대기업에게 강제로 모금을 뜯어낸 것이 입증되든지, 그게 아니면 미르,K의 자금을 자기가 착복,횡령한 것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강제로 모금한 것을 입증하기는 힘들 겁니다. 정황이 확실하고 증언이 있어도 녹취나 증거가 없을 테니까요. 결국 재단의 자금을 횡령했는지가 중요한 것인데, 최순실이 독일에 만든 회사가 자금 세탁의 통로일 것이라는 의혹 보도가 수차례 있었고, 지금은 그 법인을 청산하는 중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만약 유수의 언론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최순실에게 필요한 것은 독일에서 법인을 청산하고 증거를 은폐할 "시간"입니다.
한국에서 탄핵이 공개적으로 거론된다칩시다. 모든 이슈를 덮어버리겠지요. 지금 대통령을 탄핵하느니 마느니 하는데 독일에서 빈 집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뉴스가 사람들 눈에 들어올리 없습니다. 최순실은 도망갈 수 있습니다. 박근혜는 죽겠죠. 그러든지 말든지.
사과를 모르는 양반의 이례적인 사과문에 담긴 행간을 명심합시다. 최순실은 죄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최순실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위의 상왕이 최순실이 맞다면, 이 모든 시나리오는 상왕의 안위를 위한 자연스러운 진행이겠고, 상왕 같은 것은 없다면, 박근혜가 최순실을 위해 스스로 독박을 썼다는 결론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됐든, 최순실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진실은 파묻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