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선진 기독교 국가 교회 교인들이라도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께 저지르는 각종 죄악에 대해 책망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선물이 바로 하나님의 깊은 속까지도 알 수 있는 성령을 예수 믿는 분들에게 주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속하기 이전의 선지나나 제사장들은 세상 사람들의 사사로운 죄악에 대해서는 별로 책망치 않았기 때문에 저들이 당하고 있는 각종 고통과 환난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일일이 구출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속죄 피가 있은 후부터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신 성령이 계셔서 저들에게 속한 가족과 교회와 이웃과 사회와 나라에 임하는 각종 고통과 재앙의 원인인 죄악을 알게 해 주어 그 죄악에서 떠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한복음16:8~11) 하심 같이,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 같은 성향의 말씀들로 세상 사람들을 책망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성령의 기능은 없고, 다만 세상 학문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으로 성경말씀을 배워 익힌 신학자(목사)들의 설교(성경말씀의 뜻품이)에 의해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성령의 뜻에 맞는 신앙인들보다 저들 목사들의 뜻에 맞는 교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저들 속에 만연하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 사상에 대해서는 서로가 책망치 않고, 다만 학문지식으로 습득한 신학 지식으로 교인들의 직책을 결정하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믿음은 무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육적 간음과 세상과 짝하는 영적 간음이 세상에 팽배하게 되어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구해 준 사건만 아름답게 미화(극화)시켜 자신들의 각종 간음 행위를 두둔해 자위합니다.
그래서 세상과 짝한 오늘날의 교회 교인들이 "예수님도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감히 우리들의 간음 행위를 정죄할 수 있느냐?" 하면서 콧대를 높이 세우고 되레 자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변호해 살린 것은, 간음죄 자체를 두둔해 보호한 것이 아니라, 본남편 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유혹자 사단과 간음 상태에 놓인 저들의 추악한 정의로는 간음한 여인의 생사를 결정(심판)할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 그 앞에 점도 흠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 그런 결정(심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일 뿐, 결코 세상에 보편화된 간음죄를 두둔해 묵인하려는 뜻에서 그 여인을 정죄(책망)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세상(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려 오신 의로운 예수님 앞에서, 죄인 된 그들이 자신들에게 적발된 간음한 여인을 데려와 예수님이 보는 앞에서 사형을 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마치 교만한 자식들이 부모와 뭇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버릇 없는 자식을 붙잡아도 놓고 따귀를 때리고 매질하는 짓과 같으며, 또 경찰 앞에서 악한 군중들이 범법자를 붙잡아도 놓고 마구 짓밟는 것과도 같은 만행입니다. 부모(경찰) 앞에서 범죄한 형제(이웃)들의 죄를 심판(응징)하는 자식(군중)들은 범죄한 자식들보다 더욱 교만무례한 범죄 행위입니다. 그러나 부모님(경찰)이 부재한 상황하에서 형제(이웃)들의 잘못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부모님과 같은 심령으로 꾸짖고 책망하는 일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선악(옳고 그름)을 잣대 삼아 남의 언행을 판단(비판, 정죄, 단죄, 교정)하는 짓은 죄악이지만, 모두의 부모 되신 하나님의 말씀(옳고 그름, 심령)을 근거로해 남들의 언행을 판단하는 것은 진리이고 정의입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심령을 대변해 이웃 된 사람(형제)들을 꾸짖고 책망해 바른 길을 가도록 권면(경고)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고유독특한 권한, 곧 만물의 생성소멸과 사람들의 생사화복을 임의로 좌우할 권한(자격)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 길로 행하면 하나님께 매맞는다 하여 꾸짖고 책망해 경고(판단)할 권한(자격)은 있어도, 그 길로 행한 자는 죽어 마땅하다 하여 하나님 대신 응징(형벌)할 권한(자격)은 없습니다.
점과 흠이 없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간음한 여인을 즉결심판할 권한(자격)은 있었어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우선적인 계명이 뭇 사람들의 죄악을 대신해 죽으려 오셨기 때문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11)는 뜻의 경고만 발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죗값을 대신 지고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이 같은 경고의 뜻이 담긴 판단(정죄)조차도 이웃들에게 말해 주지 않습니다. 즉 간음한 여인더러 "그 같은 짓의 종점은 참혹한 지옥형벌에 이르게 되니 다시는 그 같은 죄를 범치 말라"는 경고(심판, 비판, 정죄)를 일체 말하지 않습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누가복음 6:37~38) 하신 말씀과 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누가복음 6:42) 하신 말씀을 사단의 뜻으로 해석해 이웃(다윗)이 저지른 간음(살인)죄에 대해 나단 선지자처럼 꾸짖어 책망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통칭(通稱)해 '죄인'이라고 단죄하고 정죄하고 비판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회개하라!'는 경고의 말씀은 죄악의 길로 행하고 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 말씀이 비판이며 정죄이며 남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는 뜻의 교만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까? 오죽 하면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마태복음 5:13~14) 하셨겠습니까? 세상이 캄캄하다고 단죄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세상이 부패타락한 소돔·고모라와 같다고 정죄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인이 예수님의 뜻을 신실하게 좇게 되면 반드시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죄악 투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 목사님들이 유대인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처럼 예수님의 뜻과 성품에 어긋나도록 성경말씀을 교인들에게 가르칠 땐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고 책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경건에 입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당리당략과 철학과 술수로 국정에 임할 때에는 그것이 나라를 망치는 짓이라고 지적하고 비판하게 됩니다. 세상의 재물을 탐하는 부자들과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육(경제)적인 부강만을 제일로 취급해 가르치고 정직과 의와 경건을 무시할 땐 그 일을 단죄하게 됩니다.
사람이 남들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뜻)에 근거하지 않거나 또 국법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어느 개인이나 정당이나 사설(종교) 단체의 뜻과 야욕에서 비롯된 말과 행동일 때에는 그것이 바로 사단의 뜻에서 발생된 악한 비판(정죄, 단죄)이며 또 자기 눈의 들보는 뽑지 않고 남의 눈에 티만 뽑으려는 악한 눈입니다. 비판이 자신(사람들)의 악한 뜻에서 나오면 죄가 되지만, 하나님의 선한 뜻에서 나오면 의가 됩니다. 예수님이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한복음 5:30) 하심 같이, 법에 근거하지 않고 제 임의대로 판결하는 말은 모두 불의하지만, 예수님처럼 법에 기록된 판결문을 대독(代讀)하는 뜻의 말은 모두 의롭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요한복음 8:14~18) 하심 같이, 사람이 자기 뜻으로 판단하는 말(주장)에 대해 가장 올바른 증거(지지자)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증거 뿐입니다.
오늘날의 목사님들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정당한 공법(公法)인 성경 말씀을 교인들에게 전하면서도 자신들만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지키고 실행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처럼 지키고 실행하는 자들에게만 하나님이 그 지킨 말씀에 대한 참된 증거자가 되어 무슨 형태로든 증거해 주십니다. 즉 자신이 국법을 지키고 실행할 때에만 국법이 그의 참된 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나 그 나라 그 사회의 주인공들인 목사들이 성경 말씀을 믿음으로 실행해 지키지 않고 다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헌법 학자들처럼 국법을 임의로 해석하기만 하면, 반드시 그들의 성경 해석 속에는 흉악한 마귀들이 득실거리게 되어 온 나라와 사회가 진리(법)적 근거를 잃고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게 됩니다.
목사님들이 예수님의 언행을 지켜 세상의 빛과 소금 노릇을 하게 되면, 가장 먼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저들의 증거자와 증인이 되어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증거(증명)해 주십니다. 그러나 저들이 오늘날의 헌법 학자들처럼 성경말씀(헌법)을 정직히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임의로 해석하는 신학질에 빠지게 되면, 이들의 행습을 본받은 교인(국민, 정치인)들 또한 국법과 사회법을 종북 판사들처럼 거짓되고 해석해 의인을 악하다 하고 악인을 의롭다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이것은 저들이 걸어가고 있는 발 앞에 함정과 올무가 있다는 것을 보고 알면서도 그것을 그들에게 직고하지 않습니다. 김일성 일가들 같은 악귀들을 즐겁게 만들고 정직한 의인들을 절망에 빠뜨립니다.
교회의 목사님들이 자신들의 성경 해석을 교인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결국 오늘날의 헌법 재판관들도 자신들의 법해석으로 사람들을 판결하게 되었습니다. 의인은 법을 지키나 악인은 법을 팔아(곡해하여) 육적 부강을 챙깁니다. 에덴동산의 풍요와 안일 속에서도 인간들은 범죄하였고, 또 낙원 같은 소돔·고모라에 사는 자들도 유황불 세례를 받았으며, 또 가나안 복지에 거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도 패망해 나라를 잃고 유리방황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저들이 한낱 신화로 취급해 무시합니다. 그래서 뭇 교인들이 사단처럼 하나님의 소유물만 가지려 하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무슨 말씀이든 순종해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망하게 되는 근본 이유는 소유물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불순종)해 거역하는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재산만 탐하는 것은 도적이라는 뜻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 지키는 것은 그의 진실한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해 지키려는 아들들이란 뜻입니다. 사단의 졸개 된 종북 세력들은 김일성 일가들의 지령을 목숨 바쳐 지키는데 반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들만은 예수님의 말씀을 목숨 바쳐 지키려 하지 않고 거짓되게 해석하는 신학자로 유명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배신자들에게 속을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볼꽃 같아서 저들을 세상 만민들 중에 뽑고 뽑아 정금 같이 점도 없고 흠도 없게 하시려고 하였건만, 저들은 하나님을 만홀(漫忽)히 여겨 이대로의 풍요로 땅에서 쾌락하기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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