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와 눈이 먼 사람.(요9;35~41).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지식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살다보니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전문분야에서 자기는 누구보다 유식하고 똑똑하며 지극히 합리적이고 지혜롭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은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 버리고 똑똑하다는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 하셨으며,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감추시고 오히려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 하셨으니,
그러니 하느님께서 인정하시는 본다는 자들은 누구이며, 보지 못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유식한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지식만큼 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기의 그 한계를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지식에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그 지식을 죽이고 그 지식의 성품인 투명한 지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과 계명들 그리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들은 영적입니다. 그러나 그 영적인 지식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영적 지식은 나도 죽이고 남도 죽이는 눈이
먼 자들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단강에서 법궤가 먼저 들어가 죽고 이스라엘백성이 건너가게 된 것처럼 우리에게 온 영적 지식은 십자가에 죽여야만 하느님을 보는 영성의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시겠다는 그 기준에 예수님과 주님의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오로사도는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전하려고 할 때에 십자가에 다리신 예수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희망을 보게 하는 능력이고, 하느님의 뜻을
밝고 맑고 투명하게 볼 수 있는 은총의 샘인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십자가를 떠나서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잘 본다고 하는 맹인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사람들은 바보 같으나 지혜로운 자들이고, 무식한 자들 같으나 유식하고, 보지 못하는 것 같으나 잘 보는 눈이 열린 사람들 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살아 있다고 하나 실상이 죽은 자들이 이 세대 말에 너무도 많다는 것이 주님의 증거이며,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가 된다고 하셨는데, 주님께서 오실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으니, 과연 나는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참된 눈을 뜬 자인지?
카페 연옥영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