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를 열 새로운 인물”로 안철수 의원을 한껏 치켜세웠던 한겨례, 경향 신문,
지금은 안철수 의원을 “야당의 분열자”로 낙인찍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한겨례, 경향 신문은 친문 세력, 운동권, 재야 그리고 정치를 지향하는 시민, 노동 단체들을
후원하는 매체일 뿐이고, 안철수 의원을 자신들 후원 세력들의 “확대와 견고화”에
활용할 “일회용 도우미 또는 불쏘시기”로 인식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므로 한겨례, 경향신문은 “한국진보”를 대변하는 매체도 아니고, “진보 정당의 출현”을
고대하는 언론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보수를 지향한다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중앙일보는 또 어떤가요? 재벌, 대기업과 사돈의 팔촌관계로 거미줄처럼 얽힌 언론사
사주들의 이익을 위하여 “보수라는 이념”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는 언론매체는 아닌가요?
4.19 학생 혁명은 학생들의 “정치 개입”이란 부작용을 낳았고, 제5공화국 이후 기자직은
“정치 입문의 디딤돌” 또는 “유명인이 되는 도구”로 전락하였습니다. 또한 손석희 씨의
등장은 기자의 자질 요건으로 “취재와 기사 작성의 능력”이 아닌, “겉모양과 반항아적인
자세”에 방점을 두는 경향을 낳았고, 이러한 시류가 극명하게 투영된 종편 방송사는 “제2의
손석희 선발 대회” 출전을 열망하는 참가자들을 위한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탁류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과 자부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인물도 있더군요. 연합뉴스 tv “담담타파”의
고성국 씨는 차분하지만 힘이 있는 “언사와 어조”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들을 하면서
자질을 의심케 하는 출연자들의 횡설수설을 매섭게 컨트롤하는 진행 방식으로
“격조 있는” 정치, 시사 프로그램의 모델을 만들려 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동아일보 회장 부인의 자살 기억합니까? 이러한 언론이 5년에 한 번씩 꼭 치르는 행사는
“언론의 자유”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견제도, 절제도 없는 “제4의 권력, 언론”이라는 자격
으로 새로운 정부와 “힘겨루기”를 하지만, 결국에는 “상부상조”로 끝을 맺곤 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민생 정책들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개혁 또는 쇄신 방식”에 대한 비판이 아닌, ①60 평생 몸에 익은 “대통령 개인의
삶의 방식”을 트집 잡고 ②“대통령의 인사권”까지 개입하려하고 ③한국 경제 불황에 대한
궤변과 폭력에 가까운 비난을 대통령에게만 쏟아 부으면서 힘을 과시하려 했던 한국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에서만 가능한 무대응에 자포자기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차에 새누리당의 총선 실패의 원인을 김무성 전대표의 “황당하고
황망한 공천 개입 작태”가 아닌, 대통령의 성품과 외국 언론의 한국 언론 기사 인용인,
황당한 “경제 실패론”으로 대통령에게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미국, 일본 국회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정권 8년차에도 경제의 불확실성을 걷어내지 못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리고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높은 실패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일본의 아베 수상에게
공격을 자제하는 미국, 일본 언론이 한국 언론과 무척 대조적이지 않나요?
“기자들에게는 산해진미, 보좌관에게는 라면을”, “기자들 전화에는 반듯이 응대”, “기자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주례”등 이런 관행들은 한국에서 정치부 기자와 정치인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와 같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