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십고초려해 모셔온 해외과학자중 한명이
키스트 전길남 박사다.
(박정희 말년에 모셔온 분)
전길남 박사가 귀국하자마자 박정희의 특명이 떨어진다....
" ( 미국만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 인터넷을 반드시 개발하라...."
박정희의 특명을 받들어
박정희의 무제한의 지원을 받으면서 연구에 매달린 결과
1982년,
키스트 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전길남 박사팀은
미국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인터넷 기술개발에 성공한다....
( 서울과 구미 간에 성공한 인터넷 통신은
이후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이 되는 출발점이 된다...
당시 키스트 과학자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환호하고 눈물을 펑펑 쏟는 사진들은
지금 다시 봐도 감동적이다..
전길남 박사는 모든 영광을 박정희 대통령과 팀원들에게 돌린다... )
1967 년 키스트 설립 이후로 1분 1초의 시간 낭비없이
키스트 부설 연구소인 한국전자통신연구소(초기 명칭은 전산연구소)의 진두지휘 아래
(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모든 첨단기술은 하나도 빠짐없이 삼성과 엘지 등에게 전수된다. )
반도체 , 인터넷, 무선통신, 등등
대한민국의 정보통신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대한민국은 마침내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강국이 된다...
박정희의 특명에 의해
1970 년 까지 키스트 전산연구소는 몇명의 귀국 컴퓨터 과학자로 하여금
전국 각 분야에서 인재 2 만명을 속성선발, 속성교육시키고
다시 복귀한 전산 인력들은
컴퓨터 인력이 전무했던 대한민국을
모든 분야에서 천지개벽 시키는 역할을 백프로 수행한다
이 2 만명이 바로 대한민국 1 세대 컴퓨터 전문가들이다... )
박정희가 창조한 박정희의 절대 분신인 키스트의 결정적 공헌으로
대한민국은 폭발적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 기록을 세우고
키스트가 도전해서 다져놓고 발전시킨
원자력과 정보통신, 반도체 등등등등 의 최첨단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박정희가 도전했던 여러 산업분야의 집중 육성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은 최첨단 하이테크 강국으로 올라서게 된다
.....
" 키스트가 완공되자마자
박대통령은 키스트 연구원들에게 자신의 월급보다 많은 월급을 주라고 명령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대통령은 막무가내였다....
대통령의 마음을 깨달은 연구원들은 최소한의 잠자는 시간외에 모든 시간을 연구에 매달렸고
대통령이 도전하는 여러 산업의 기반기술을 축적할수 있었다.."
- 전길남 (키스트부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