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X파일‘로 유명한 손충무(孫忠武) ’인사이드 월드‘ 발행인이 향년 70세로 지난 19일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고인은 경향신문 기자로부터 워싱턴 한국신보 편집국장을 거쳐
1989년까지 주간지’인사이드더 월드‘발행인으로 정치비화를 폭로한
국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16년간 끈질긴 추적의 김대중 파일
고인은 2010년 8월, ‘20세기 현장증언’ 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비화 등을 거침없이 폭로한
‘김일성의 꿈은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드는것’ 이라는 제목의 저서를 마지막으로 남겼다.
고인은 DJ와 가깝게 접촉이 많았던 언론인으로 우리네가 미처 모르고 있는 내용을 많이 실었다.
‘DJ는 애국자인가, 반역자인가’ 에서부터 ‘DJ는 무슨 색깔이었나’, ‘DJ는 전향하지 않은 공산주의자’,
‘전두환과 DJ의 대결’, ‘김일성은 김대중을 가장 믿었다’, ‘김대중을 미국이나 일본으로 보내달라’ 등
실로 DJ정치의 내막을 샅샅히 뒤져 폭로했다.
고인은 자신이 16년에 걸쳐 끈질긴 추적 끝에 김대중 X파일의 전모를
연속으로 X파일을 집필하겠다고 예고했다.
제1탄, ‘김일성의 꿈은..’ 에 이어 제2탄, ‘김대중, 김정일의 최후음모’,
제3탄, ‘김대중의 노벨상 개도 웃었다’,제4탄, ‘손충무는 김대중을 3번 살려줬다’를
연이어 발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심장마비로 떠났으니 후속편을 볼수 없게 됐다.
DJ측 고소로 2년형 복역
고인은 두려움없는 폭로기사로 구속과 징역형 등 온갖 수난을 겪었다.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숨겨놓은 딸이 미국에 살고있다.”는 기사로 구속됐었지만 나중에 공소기각으로 풀려났다. 1996년에는 문제의 ‘김대중 X파일’로 구속되어 끝내 2년형을 복역했다.
이 때문에 책속에는 YS와 DJ관련 비화가 많이 나오고 박정희, 전두환 시절이야기도 적지않다
. 또한 지난96년에는김일성과 일본 우스노미야 도쿠마 의원간 비밀회담 기록을 입수하여 자세히 보도했다. 이들 자료를 근거로 고인은 DJ의 정체를 여지없이 비판, 폭로했다.
“김대중을 일본으로 보내면 돕겠다”, “김일성 부탁받고 김대중 구출앞장” 등이 여기서 나왔다.
김일성의 환대를 받은 우스노미야 도쿠마 의원은 일제시 조선군 사령관을 지낸 우스노미야 타로장군의 아들로김일성 정권 후원자, 김일성의 로비스트 등으로 친목활동 했으며 DJ와도 가까웠다.
김일성으로부터 20만달러
DJ가 1971년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어 미국을 거쳐 도쿄 신주쿠 플라자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밤
김일성의 특사로 재일 조총련 국제부장 김병식이 가방을 들고 방문했다.
김병식은 당시 한덕수 조총련 의장의 사위로 조선신보 발행인을 겸직하고 있었다.
이날 김병식은 김일성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지금이야 말로조선에 민주정권이 들어서 북과남이 민족 주체적으로 통일의 길을 개혁해야 할때” 라며 20만달러의 가방을 놓고갔다.
그뒤 김병식은 평양으로 소환되어 부주석 및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으로 영전되고
1997년 12월 15대 대통령 선거때는DJ에게 승리를 기원하는 비밀편지를 보내왔다.
그의 편지는 베이징을 거쳐 장(莊)이라는 이름의 중국사업가로 위장한고정간첩에 의해
DJ에게 전달됐다.
그러나 당시 안기부는 이를 추적, 김포공항에서 별방으로 안내하여 가방조사를 통해
재빨리 편지내용을 복사한 후 풀어주었다.
손충무씨의 ‘인사이드 월드’가 이 비밀편지를 입수하여 보도했다.
이때 ‘김대중 선생귀하’의 편지에는 김병식이 “선생과 처음 상면때가 벌써 26년이 흘렀다”는 말과
“TV화면에서 선생의 모습을 볼때마다 1971년 도쿄 플라자호텔에서 뜨겁게 포옹하던 때가 생생히 떠오른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는 “약소하지만 선생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20만달러 밖에 보탬해 드리지 못한것을 지금도 괴롭게 생각한다.” 면서 “이번 대선에서 꼭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기부는 DJ가 이 편지를 끝내 자진신고 하지않자
월북한 천도교 교령 오익제의 편지등과 함께 묶어 검찰에 수사의뢰 했던것이다.
X-파일 중지시켜려 ‘큰봉투’
저자가 시사주간지 인사이드월드에 김대중 X-파일을 연재하다가 박지원 현 민주당 원내대표와 벌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