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모든 일에는 찬성과 반대가 있기 마련이지만 김영란법 시행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반대를 하는 편의 주장은 어딘지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억지스럽고 뻔뻔스런 논리의 전개가 아닌가 싶다. 다른 문제에서는 다소 엄정한 모습을 보여주었거나 주장했다고 여겼던 분들이(그래서 김영란법 제정에 한 몫을 담당하셨을) 분들이 자꾸만 서민들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내세우며 시행해보기도 전에 개정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어 당혹스럽다.
개정을 주장하는 분들의 속마음이 적용을 배제하고 있는 국회의원까지를 포함하도록 하는 개정을 원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아무리 대한민국이 물자가 풍부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잘 산다고 하더라도 현재 시중에서 한 사람당 3만원이 넘는 밥상의 차림은 사치라고 본다. 친구를 위해서건,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동료거나 사업 파트너를 위한 정(情)을 나누는 자리인데 부족해서 좋을 건 뭐냐고 하겠지만 이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또 이런 사치쯤은 자기 능력으로도 누릴 수 있어야 사는 즐거움도, 일하는 기쁨도 있을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일단 김영란법은 시행되었으면 한다. 시행하면서 우리 사회 실정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를 검토해 가기를 원한다. 10만 원이 넘는 소고기 상품이 선물로 팔려야만 서민 경제가 활성화 되는 것 보다는, 법 시행으로 ‘정(情)으로 포장된 공짜’를 기대하지 않는, 국민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하여 대한민국 국민 누구든 등심을 먹고 싶을 때 10만 원 쯤 들고 정육점에 갈 수 있었으면 한다. 가끔 명절 때면 술 한 병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 한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스스로 자기가 마시기 위해 그 액수의 돈을 지불하는 대한민국 부자도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해 보았지만 글쎄다.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한 국가가 가야할 방향과 목적을 두고, 어느 민족은 생각한 다음에 뛰어가고, 어느 민족은 뛰어간 다음에 생각하며, 어느 민족은 걸어가면서 생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입장에서도 어느 민족이 더 합리적이고 덜 이성적인지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논제이면서 막상 당하면 기준이 모호해 지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남은 규제하고 자기는 그 규제에서 제외되기를 원하고, 또 그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우리는 항상 그 분들에게 매달리고 이끌려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