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은 일본군에 끌려가 강제로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내팽개쳐진 조선 여자들의 수절(守節)에 대한 수치심(羞恥心)의 발로(發露)와 짓밟힌 인권의 회복을 위해 만든 좌식 청동상(坐式 靑銅像)입니다.
1920 년~1940 년까지 이십 년 동안 ㅇㅣ 땅의 어린 조선 소녀들이 생활의 어둡고 궁핍한 처지에서 군국주의 일본군(軍國主義 日本軍)의 감언이설에 속거나 강제적으로 끌려가 소위 위대한 대일본국의 근로 호국 정신대(勤勞 護國 挺身隊)의 일원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것입니다. 그녀의 한결같은 단발머리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단발의지(斷髮 意志)로 보여지며, 표정은 조용하면서도 사뭇 깊은 사색에 묻혀 반의식 상태로 보여집니다. 일본 대사관을 처음으로 비롯하여 국내 여러 지방과 해외를 포함해서 30 곳을 설치하였으며 점차 그 수를 늘린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 소녀들은 십 오 세 정도로서
-일본군이 조선 소녀들을 끌어간 숫자는 20 만이 훨씬 넘는다고 하며, 돌아온 귀향자는 기 백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도 일본의 기본 정책 기조와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일본의 교과서에도 그 사실을 마찬가지로 기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소녀들은 하루 일 인당 무려 삼 십 명까지도 강요당하였고, 종전 무렵에는 증거 인멸(證據 湮滅)을 위해 여자들을 총살시켜 처리했습니다.
-매일 수 십 명의 일본군과 관계를 갖다 보니 임신 당하거나 성병에 걸려,부족한 당시 의술로 서투른 중절 수술을 짐작케 하고, 성병 치료 약이 없어 인체에 치명적인 수은(水銀-Hg)을 체내 삽입하여 몸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합니다.
-강간(强姦)에 가까운 억지행위를 하다 보니 ,당하는 쪽은 반항(反抗)이 필사적이었으며, 상대자는 쌓인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구타(毆打)나 갖은 신체 해악(害惡)이 뒤따랐겠습니다. 전쟁 막바지에는 배식량이 줄어 굶주림,영양 실조 및 건강 악화로 이중 삼중의 고난에 시달려 자살로 이어진 경우도 있겠습니다.
-소녀들의 이방(異邦)에서 난생 처음 당하는 강간행태(行態)는 극한의 정신 상태를 몰고 와 간질이나 정신분열의 조짐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같습니다.
-소녀들의 생활 주변은 수 많은 강간, 폭행, 굶주림,총살 위협, 주변 주검의 수시 목격, 신체 파손의 고통과 가쁜 신음이 있겠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군국 일본의 역사적 만행(蠻行) 사례를 일일이 조사 나열하여 비디오 와 기록물(記錄物-doc-umentary)로 남겨야 합니다.
현재의 정부는 대일 보상금으로 100억 원을 협상하였던 바, 이를 일 인 당 돌아가는 몫을 환산해 보면 오 억 원 정도이고 1 인.개월의 맨파워로는 30 만 원에도 미치지 않습니다.보상금(報償金)이라기보다 협상금(協相金)에 가까운게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