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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배님 조직에 가입하시죠.↓☞ 2017-10-14 17: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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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1     추천:0
<선배 시인의 조직 가입을 희망함>

나보다 백배는 글을 잘 쓰고
나보다 백배는 성실하고 진지하며
나보다 백배는 철저하게 역사와 현실을 성찰하는
내가 좋아하는 선배 한분이
스스로 블랙리스트에 끼지 못한 것을
불명예스럽다고 고백하는 글을 읽는다.

나는 블랙리스트에 끼여서 명예스럽기도 하지만
좀 불명예스럽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허위의식이 작동하고 이래저래 기분이 개운하지 못하다.
글을 잘 못쓴다는 자괴감과 시인으로 살고 싶다는 거대욕망에 시달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에 끼인 것이 무슨 대단한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거나
치열한 시대정신을 안고 살아온 것처럼 비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오류이다.
블랙리스트는 예술적 재능이나 치열함이 기준이 아니다.
문제는 조직이다.
현실의 권력은 조직과 조직이 싸우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조직과 싸워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사회 전체의 권력은 조직과 조직의 대립구도 바깥에 있는
흩어진 권력들을 주요 투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
조직 대 조직의 구도만 가지고도 충분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 줌도 안 되는 지배계급’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정한 권력과 싸우는 역량과 예술적 역량이 항상 일치하면 좋겠으나
그건 인간에 대한 오해다.
싸우는 예술가가 올바른 예술가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싸우는 예술가가 항상 더 나은 예술가라고 주장할 수 없고
싸우는 것을 노래하는 예술이 위대해질 수 있듯
싸우지 않는 것을 찬양하는 찬란한 예술도 존재하고
싸움 바깥에 있는 아름다운 예술도 수두룩닥닥하다.
차라리 대개의 예술가들은 부정한 권력과 싸우는데 무관심하거나
조직 바깥에서 혼자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경우도 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것을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도 그들이 부럽다.
그러나 언제나 문제는 조직이다.
조직화되지 않은 사자 백 마리를
조직화된 백 마리의 양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김대중이 ‘행동하는 양심’을 이야기한 것에서 나아가
노무현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을 이야기한 이유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직화되어 있지 않으면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것이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었으나 문학적 무능에 시달리며 끄적끄적 글을 썼고
작가회의에 이름을 올리고
전교조에 기웃거린 덕에 어지러운 이름을 친지와 몇 명의 벗들한테 퍼뜨리고 다녔다.
허명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늘 듣고 있다.
허명이라는 거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서 겸손을 위장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듣는다.
나는 조직과 비조직 사이에서 늘 갈등하며 전교조 안팎을 넘나들었다.
내가 발령 나던 해에 전교조가 출범하고
나도 조합원에 가입했지만 해직이 두려워 탈퇴했다.
그리고 현장에 있으면서 신경질적으로 관료들과 마찰을 일으켰다.
전교조는 조직이기에 때로는
내 개인의 싸움과 다른 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다.
내가 단독으로 보충수업을 거부할 때
전교조는 성명서 상으로는 보충수업을 반대한다고 했지만
조합원들에게 보충수업을 거부하라고 지시할 수는 없었다.
학부형들 가운데 상당수가 보충수업을 원하는 기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조직이 아니어도 2백만이 넘는 촛불이 광화문에 몰려들었다.
어쩌면 네트워크가 조직을 새롭게 짜는 에너지로 작동할지도 모르겠다.
약간은 그런 가능성이 보이기도 하고 기대가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조직되지 않은 사자’ 보다는
‘위협적인 사자’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만난 조직의 사람들은 부정부패에 물들어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들의 품성이 권력과 함께 작동될 때도 여전히
그렇게 깨끗하리라고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말하기 참 껄끄럽지만
인간의 유전적 진화는 그렇게 편차가 커 보이지 않는다.
내가 권력을 잡더라도 나 역시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내 속에 욕망이 부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
현재 상태에서 약간 덜 더러운 조직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괴로운 선택이다.
내가 어떤 권력을 가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내가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내 권력을 비판하는 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놓는 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현재의 싸움이다.
나는 선배께 조직에 가입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당 조직이든 작가 조직이든 시민조직이든
부정한 권력이 싫어하는 조직이면 어떤 것이든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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