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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롯데 신격호 첫 부인 노순화 ‘통한의 망부가’▶ 2017-12-25 09: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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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신격호 첫 부인 노순화 ‘통한의 망부가’


[월요신문 이정규 기자] 동북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간절곶. 이곳엔 신라 충신 박제상 부인의 망부석이 서 있다. 이 망부석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서기 420년 경 박제상은 눌지왕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간 후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후 박제상의 부인은 두 딸과 함께 지아비를 그리워하다 죽어서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그의 둘째 부인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왼쪽) 그리고 신 회장의 세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서미경씨.

간절곶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기장 바닷가가 나온다. 행정구역상으로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이곳에 또 하나의 망부석이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명예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망부석이다. 노순화 여사의 망부석은 그러나 박제상 부인 망부석과 형태가 다르다. 박제상 부인의 망부석은 우뚝 서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반면 노순화 여사의 망부석은 표지판 하나 없는 익명의 갯바위다.

고 노순화 여사는 한 여인으로서 철저히 버림받고 잊혀진 인물이다.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이라는 사실 외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남편 신격호와 어떤 사이였는지, 어떻게 해서 사망했는지, 임종은 누가 지켰는지 등등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신격호 동갑내기 부인 남겨두고 현해탄 건너

신격호 회장은 그동안 한국인 첫부인과 사별한 후 일본인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신격호가 일본 땅을 밟은 것은 해방 4년 전인 1941년, 약관 20세 때다. 당시 그는 결혼한 몸이었다. 요즘 같으면 결혼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였지만 당시만 해도 조혼 풍습이 남아 있어 부모님이 정해준 배필과 혼인을 올린 것. 그 배필이 노순화 여사다. 노 여사는 남편 신격호와 동갑내기로 전형적인 유교 집안의 여식이었다. 혼인 3년 뒤 신격호는 부인을 홀로 한국 땅에 남겨 두고 현해탄을 건넌다. 그의 수중엔 80엔이 전부였다.

그는 이 돈을 밑천으로 도쿄에서 거처를 마련한 후 신문 배달을 하며 와세대 대학 화공과를 다닌다. 신격호가 일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를 만난 것은 이 무렵이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신격호가 세 들어 살던 주인집 딸이 하쓰코였다는 설. 둘째는 신격호의 인물됨을 알아본 하쓰코의 부친이 그를 사위감으로 점찍고 딸과 교제를 허락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최근 롯데가 경영권 분쟁이 국민의 이목을 끌면서 시게미쓰 하쓰코 집안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중의 하나가 하쓰코 여사의 집안이 일본 외상을 지낸 시게미쓰 마모루 가문과 인척 관계라는 소문이다.

시게미쓰 마모루는 일본이 패망하자 A급 전범으로 체포돼 금고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석방된 후 일본 정계 막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 1957년 사망했다.

롯데그룹측은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와 시게미쓰 마모루 가문은 친인척 관계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 근거로 ​하츠코 여사의 결혼 전 성이 다케모리로, 시게미쓰라는 신격호 회장의 일본식 성에 따른 것뿐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롯데측의 이런 해명은 일제강점기를 겪은 한국민의 반일 정서를 의식한 측면이 있다. 롯데그룹은 시게미쓰 마모루와의 연관성은 부인하면서도 하쓰코 여사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시게미쓰 하쓰코 집안, 일본 정계 거물과 교유

그렇다면 하쓰코 여사의 집안은 일본 전범 가문과 전혀 무관한 것일까. 이 의문을 푸는 열쇠가 하나 있다. 신격호-하쓰코 부부의 결혼식이다. 이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의 면면을 살펴보면,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를 비롯해 아베 현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 등 일본 정계 거물들이 대거 모였다.

기시 노부스케만 해도 일본의 대표적 전범이다. ‘쇼와시대의 요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대동아공영을 주창한 일본 군국주의에 적극 동참해 아시아, 나아가 세계 패권을 꿈꾼 인물이다. 그는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살아남아 일본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일본 정계 보수파의 거두다. 후쿠다 다케오도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이런 거물들이 신격호-하쓰코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은 신랑 집안보다 신부 집안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쓰코와 결혼할 당시 신격호의 나이는 29세로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일본에 연고가 없는 젊은 재일한국인이 내로라 하는 정계 실력자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을까. 이것이 부인인 하쓰코 여사의 집안이 부각되는 이유다. 물론 일본 전범이 몇 명이 하객으로 참석했다고 해서 하쓰코 여사의 집안이 일본 전범 세력과 연관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참석한 거물들의 면면을 볼 때 하쓰코 여사의 집안이 당시 일본 정계 실력자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신격호는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도 장인어른을 비롯해 처가의 도움을 적잖이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격호가 처음 설립한 회사는 히카리 화학연구소다. 이곳에서 비누와 화장품 등을 생산하다 풍선껌으로 대히트를 쳤다. 주식회사 롯데도 이때 탄생한다. 이후 1959년 롯데 상사, 1961년 롯데 부동산, 1967년 롯데아도, 1968년 롯데 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사업을 확장해나간 끝에 일본의 10대 재벌에 랭크된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큰딸이자 노순화 여사가 남긴 유일한 혈육인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

혜광사 스님이 전한 노순화 여사의 기구한 사연

신격호가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아내 노순화 여사는 깊은 슬픔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남편이 금의환향하리라고 굳게 믿었다. 해방이 되고 일본에 징용간 사람들, 돈 벌러 간 사람들이 속속 귀국하면서 이런 소망은 점점 커졌다. 신격호는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다. 다음은 당시 노순화 여사와 많은 대화를 나눈 스님의 이야기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 갯바위에 서서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바위 아래로 몸을 던질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죽고 싶어도 피붙이가 걱정돼 죽을 수가 없다며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이 말을 전한 스님은 혜광사 주지를 지낸 성윤스님이다. 혜광사는 기장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고찰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숱한 날을 갯바위에 망부석처럼 서서 멀리 일본 땅을 바라보는 그분의 모습을 보기가 하도 안쓰러워 절로 불러서 차를 대접했습니다. 그 뒤로 자주 절에 들렀습니다. 혼자 올 때도 있었고 갓난 딸 아이를 품에 안고 올 때고 있었어요. 한번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사나운 날씨에 갯바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분을 발견했어요. 집채만한 파도가 바위를 집어삼킬 듯 몰려오는데도 망연자실 갯바위 위에 서 있더군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돼 달려가서 말렸습니다. 뭍으로 올라가자고 했더니 그분 말씀이 ‘가슴이 답답해서 이렇게라도 일본 땅을 보고 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성윤스님이 말한 딸 아이는 신격호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씨(롯데장학재단 이사장)다. 갓난 딸을 품에 안고 오지 않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홀로 갯바위에 서서 절망의 눈물을 흘렸을 노순화 여사. 그녀는 그렇게 남편 신격호를 기다리다 한 맺힌 삶을 마감했다.

노순화 여사 임종 때 신격호 회장이 곁을 지켰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노 여사가 사망한 날짜도 분명치 않다. 다수 국내 언론은 “노순화 여사가 1960년 사망했다”고 보도하고 있으나 신격호 회장의 일대기를 다룬 저서 등에서는 “노순화 여사가 1951년 별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성윤스님은 “노순화 보살은 전쟁(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우리 절을 찾아왔다.”고 증언했다. 노순화 여사의 사망날짜는 신격호 회장이 하쓰코 여사와 재혼한 해가 1952년이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별에 따른 재혼인지 아니면 부인을 두고 도둑장가(?)를 들었는지 도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순화 여사의 삶과 죽음은 어쩌면 운명일 수 있다. 하지만 한 걸출한 인물을 지아비로 둔 여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이었다.

이정규 기자  ikmens@hanmail.net

https://www.wolyo.co.kr:446/news/articleView.html?idxno=34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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