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나바론 요새'의 마지막 장면. 연합군의 수송선을 독일군의 거포로부터 지키기 위한 특공대의 활약은 결국 성공을 거두고, 주인공이었던 그레고리 펙과 안소니 퀸이 그간의 구원을 화해하고 헤어지는 라스트 신에서, 그동안 영화 안에서 희생됐던 특공대원들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스쳐갑니다. 전쟁영화의 마지막 신들은 이런 식으로 감성적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두렵고 그 결과에 몸서리칠거라고 걱정했던 총선,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수도권의 더민주 압승. 심지어는 선거 결과만 놓고 보면 원내 1당.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감지한 국민들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여당의 잘못된 정치를 심판하기 위해서, 더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 심판'의 의미로 그들을 찍지 않았고 야당에 표를 몰아 주었을 것입니다. 한때 180석 이상, 혹은 2백석까지도 장악해 세상을 그들 마음대로 바꾸려고 했던 새누리당은 자기 오만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그리고, 뉴스를 본 저는 이상하게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김광진, 장하나, 정청래, 은수미, 김빈... 이런 얼굴들이 어렸을 적 봤던 영화의 장면에 겹쳐 명멸했습니다. 가슴에 제일 걸렸던 건 황창화... 다행인 건, 그들은 다시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것으로 일단 마음의 위안을 삼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건, 내부에 총질하고 나간 저 세력입니다. 안철수의 과반 득표 당선은 그의 당선을 음양으로 지원한 새누리당 덕분이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절반 이상의 득표율이 나왔던 것은 아마 그런 것이었을 터.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적지 않은 야권 지지자들의 마음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일단 중요한 전투 하나는 이겼고, 교두보는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입니다.
'참패'라고 할 수 있는 여당은 논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수도권에서의 이 선전을 만들어 낸 당사자는 우선은 박근혜 자신입니다. 그 오만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그러나 야당의 막판 선전을 만들어 낸 공로는 분명 문재인 전 대표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호남에서 국민의 당이 싹쓸이 하면서 이것이 분명히 걸림돌로 작용하겠지요. 원래 그 책임은 공천을 그런 식으로 해 놓은 김종인씨가 져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문재인 전 대표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지금 더민주의 당권을 쥐고 있는 자들은 말하겠지요.
지금부터입니다. 이제 앞으로 있을 전당대회부터 다시한번 이번 총선에 보여줬던 것처럼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지난번 권리당원으로 가입한 분들이 '진짜 민심'이 무언지 보여줘야 합니다. 국민의 뜻이 얼마나 무서운지, 권리를 가진 당원들이 어떻게 완전히 이길 수 있는 총선을 망쳐놓은 진짜 책임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소중한 자산 문재인을 지켜내고, 선거판 때문에 오른쪽으로 가 버린 당을 다시 원래 자리에 위치시켜 놓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흘러가는 그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문제는 권리를 갖고, 그 권리는 주장하고, 그것을 참여로서 보여준 사람들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총선이 끝났습니다. 이제 대선레이스입니다. 그리고 정권교체의 초석은 바로 이번 선거처럼 참여하고 감시하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라는 것이 다시 증명된 셈입니다. 그리고 이번 총선을 위해 희생된 이들을 부활시킬 수 있는 힘도, 바로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것이지요. 오늘 하루는 저녁에 와인이라도 한 잔 하면서 오랜만의 여소야대를 축하할까 합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