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날의 홀아비와 젖퉁이 덮개=
오늘 오전 장에서 겪었던 일이다.
시골 장터의 가게들이 그렇듯, 문도 없이 개방된 단골 속옷가게에 들렸는데, 아무리 못해도 나이 70십은 넘었을 늙은 여인이 상의를 훌러덩 벗고 브래지어와 속옷을 번갈아 입어보며 맞춰보고 있었다.
정확히 설명하면, 그 여인은 속옷을 고르는 내 등 뒤에서 아무렇지 않는 듯 상의를 벗은 반라의 상태로 브래지어와 속옷들을 입어보고 있었고, 무심코 돌아선 나는 눈길조차 피할 공간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순간적으로 맞닥트린 상황이 당혹스러워서, 얼른 다시 돌아서 있는 그런 상태였다.
밖으로 나갈 상황도 못되고......돌아서 있는 내 등 뒤에서, 어느 게 더 좋으냐며 이것저것 입었다 벗었다 하고 있는 여인에게, 주인아주머니가 “아저씨도 있는데 망측하다”며 빨리 고르라는 재촉에, 정작 당사자는 이 나이에 가릴 게 뭐있느냐며, 영감인지 아저씬지는 몰라도 봐도 괜찮다며 하하 호호다.
나 역시 태연히 반라의 여인을 바라보며, 참 잘 가꾸어놓은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찬사라도 해주면서, 맞장구라도 쳐주고 싶었지만, 세월이 세월이다 보니, 괜한 오해를 받는 것이 싫어 돌아서 있는데, 상황이 좀 거시기 하고 머쓱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괜찮으니 천천히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라며, 민망한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잘 맞는 “젖퉁이 덮개”를 찾는다며, 서있는 나를 비켜 세우는 바람에, 다시 한 번 그 여인의 반라를 정면으로 보게 되었는데......
몇 살인지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늙은 여인이지만, 세월에 봉분이 조금 무너진 무덤처럼, 적당히 무너지고 흘러내린 젖무덤은 여전히 봉긋했고, 무엇보다도 놀라울 정도로 탄력 있는 피부와 균형 잡힌 몸매는 보는 홀아비의 눈이 휘둥그레지기에 충분했다.
“젖퉁이 덮개”가 뭐냐고 묻는 나에게, 늙은 여인이 브래지어를 들어 보이며 웃는데, 순간 아차 싶었다.
여성들이 유방을 가리고 유방이 쳐지는 것을 받쳐, 원상태를 유지하는 속옷인 프랑스어 브래지어보다는 순수한 우리말인 “젖퉁이 덮개”를 편하게 사용하는 그 여인에게서 우리가 잊고 살았던 뭔가를 다시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젖퉁이 덮개”가 그거였느냐고, 계면쩍은 웃음을 남기고 가게를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버스 유리창을 화면으로 재생되어 비쳐오는, 거리낌이 없는 그녀의 어투와 생긴 그대로의 미모는 천박하지 않았고,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탄력 있는 몸매는 한평생을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그녀만의 자신감이었다.
한마디로 오늘 내가 본 그녀는, 어디 사는 누구이고 나이가 몇인지, 굳이 물을 필요 없고 수작도 필요 없이, 할 수만 있다면 그냥 밤새며 술이라도 마셔보고 싶은,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당당한 여인이었다.
바라건대 세상의 늙어가는 모든 여인들이, 오늘 오전 내가 장에서 본 아름다운 그 여인처럼,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고 당당하게 늙어가기를 바라면서, 삼복의 여름날 뜨거운 햇볕을 아름다운 꽃으로 피운 봉선화를 여기에 놓는다.
부정부패 없는 참 맑은 세상을 위하여
2017년 8월 13일 섬진강에서 박혜범 씀
사진설명 : 지난 초여름 섬진강 인문학교 뜰에 심어놓고 가꾸어온 봉선화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