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다.
며느리로서 오늘도 나는 아침부터 시댁으로 향했다.
딸만 낳은 친정 부모님은 막내딸이 시집을 간 이후 30년간 명절 당일을 노부부 두분이 맞으신다.
시댁엔 어머님들이 세분, 며느리가 셋
명절 전날부터 모인 어른이 열둘에 아이들 여섯
벌써 열여덟명이 모였다.
난 30년 한번도 친정에 노부부만이 계신 친정에 명절 전날, 명절 당일날 가보질 못했다.
명절 날은 내게 슬프고 화가 나는 날이 아닐 수 없었다.
딸만 낳은 우리부모님은 늘 명절 다음날이 되어서야 사람이 모이는 그 화기를 느끼실 수 있다.
감히 '이번 명절엔 친정엘 먼저 다녀오고 명절 오후나 그 다음날 찾아뵐게요'를 입에 올려볼 수가 없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1. 조상님이 노하신다.
2. 시부모님이 노하신다.
3. 남편이 싫어한다.
4. 친정부모님이 불편해하신다.
5. 그 상황이 본인 나 자신도 자신이 없다.
농경사회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새해가 시작되는 날, 가족이나 부족 공동체의 축제로 시작된 설 명절은 가부장적 가족 사회 제도의 산물이다.
사냥, 농경은 남성의 근육의 힘을 필요로 했고 따라서 생산수단의 우위를 남성이 점하게 되었으니 남성위주의 문화가 정착되었고 유교의 효, 예의 의식과 맞물려 우리는 지금의 명절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재 농경사회가 무너졌고 산업 사회도 지났고 정보사회로 들어서면서 여성도 생산의 주체가 되었다.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농경사회의 풍습을 그대로 따르려 하니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지만 유교의 풍습이 익숙해져버린 세대는 그것을 거부하는 세대에게 양보를 해 주기가 힘들다.
그로 인해 얻었던 수혜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반가울리가 없지 않은가.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그렇다면 주는 사람, 즉 며느리들이 파업을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사회가 질서를 잃고 나라가 혼란에 빠질까?
가족이 해체되고 가족이 모이는 즐거운 명절이 파괴가 될까?
그럴리가.
가족은 더욱 화목해지고 명절은 더욱 즐거워 질 것이다.
사회 전체의 큰 틀에서 말이다.
사회적 합의가 있어준다면
쓸쓸했던 노부부는 당당하게 행복해 하실것이며
명절 이후 급 상승한다는 이혼율은 당연히 급하강할 것이다.
조상님이 과연 노하실까?
여성의 조상님은 조상님이 아닌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여성의 조상님도 조상님
수혜자 분들이시여
꼭 집어 말하면 남편과 시부모님들이시여
양심적으로 봉사받으세요
며느리는 며느리이기 이전에 딸이었습니다.
저는 누가 뭐래도 딸 반 며느리 반입니다.
두번의 명절 중 한번은 딸, 한번은 며느리
이걸 해보고 죽는 것이 내 소망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