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것 같지 않았던 20대 총선이 드디어 시작되는군요. 정치판은 원래 생물이라 하니 그 천변무쌍한 민심이 어떻게 누구를 선택할 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저처럼 바다 건너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겐 어쩌면 가져봤자 소용없는 관심이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내가 태어나 자란 땅, 그 땅에서 살고 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사는 유일한 길이 결정되는 것이 바로 이 선거라서 말입니다.
나름 87체제가 만들어질 때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했다는 그런 자부심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거리에서 불붙었던 그 함성들. "직선제로! 독재타도!"의 함성이 아직도 내 귀를 때리고 매캐한 최루탄 내음이 깔린 거리에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 걸고 스크럼을 짜고 명동성당 주위에서 행진하던 때의 기억이 여직 생생한데, 그렇게 만들어진 그 체제가 허물어질 것인가의 여부가 바로 오늘 총선 결과로 판가름되기에, 제 마음은 더욱 착잡하고 심난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꿈꾸던 나라는 김구 선생이 꿈꾸던 그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노동이 존중받고,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고, 문화가 융성한 나라. 그러나 현실은 바로 분단과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치러진 내전의 아픔이 서로에 대한 증오로 고착되고, 언제든지 전쟁이 있을 수 있다는 그 위협 하나로 국가 구성원 대다수를 힘 가진 소수가 쥐어짜고, 그 힘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늘 분단 현실의 위협을 강화해 구성원들에게 전체주의적 사고를 강요하는 그 현실은, 그나마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쌓아 놓았던 민주적 유산들을 모조리 해체하고 형해화하는 데 이르르지 않았습니까.
이 선거가 끝나고 어떻게 될까요. 야권이 그나마 승리라도 한다면 모르거니와, 여권이 180석을 넘어 2백석까지 석권한다면 이대로 영구집권이 가능해질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누가 이야기했던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잡혀갈거고, 이승만 박정희는 건국과 산업화의 영웅으로 더욱 추앙될 것이며, 기존의 권력을 가진 이들은 더욱 편안하게 다른 구성원들을 갈취 협박할 수 있을 겁니다. 정치가 사라진 곳엔 압제가 아주 합법적인 광기를 구사하겠지요.
이 모든 두려움 때문에 저는 한번 더 여러분께, 특히 그 사회의 젊은 구성원들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이 살아갈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의 미래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게 될 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바로 이 선거' 입니다. 이 총선은 한 세대의 문을 닫는 의미 뿐 아니라, 여러분의 미래에 못질을 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미 망가질 만큼 망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다시 살아나올 수 있다는 희망 자체를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 못박아 버리는 것이 이번 선거의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 선거를 안철수라는 한 개인의 권력욕이 어떤 식으로 민의를 왜곡할 수 있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선거로 만들 것인가, 혹은 청년 여러분이 스스로 미래를 열 수 있도록 적어도 지금 사회를 가로지르고 있는 거대한 빗장 하나를 풀어낼 계기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는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젊은 분들, 제발 기적을 만들어 주십시오. 투표장으로 나가십시오. 표는 내 열망을 표출하는 무기임과 동시에 지금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자들에 대한 심판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바뀌는 것, 바로 여러분의 손에 달렸습니다. 호소합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투표장으로 달려나가 주십시오. 사회를 바꿔 주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들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바뀌고, 우리의 국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